1차 포로 귀환 (1-2장) : 느부갓네살(주전 605~562년)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했던 바벨론 제국은 한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지나 이집트 국경까지 영토를 넓혔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BC605년 갈그미스 전투는 이집트에 대해서 바벨론 제국이 우위를 차지합니다. (렘 46:2) 그러나 시대를 읽지 못하고 바벨론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유다 왕국은 멸망 당했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고레스)가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립니다. 제국의 소수 민족에 관대한 정책을 펼친 고레스는 바벨론에 억류된 포로들이 본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당시 유다 백성의 지도자는 ‘세스바살’(페르시아식)이었습니다. 그가 스룹바벨 총독일 가능성이 큽니다. 소수 민족도 바벨론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총독이고(스 5:14; 학1:1; 2:2) 성전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스 5:16; 학 1:14-15; 슥 4:6-10)
에스라 2장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목록은 느헤미야(6:6-73)에 나오는 목록과 거의 일치합니다. 조상의 기원이 모호한 사람들과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기록된 것이 특이합니다. 수많은 종도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에스라에 적힌 43,360명이라는 전체 귀환자 숫자는 어떻게 계산이 되었을까요? 나와 있는 각 자손의 인원을 더하면 30,000명 미만에 불과합니다. 느헤미야도 31,000명 정도로 이야기합니다. 두 책에서 차이를 보이는 약 12,000명은 여자와 어린아이들, 부정하게 여겨진 제사장일 수 있습니다(스2:62-63). 그러나 이 차이는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숫자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단순 오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성전 재건 (3~6장) : 제사장 예수아와 지도자 스룹바벨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 재건이라는 대역사를 시작합니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단을 재건해 번제를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의 기초를 놓습니다. 그러나 공사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공사를 방해하는 사건이 몇 왕조에 걸쳐 일어났는데, 그 내용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첫 번째는 고레스 왕 통치기(주전 559-530년)에 일어났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대적이 '도움'을 제안하며, 일의 진척을 방해하려고 합니다(4:1-3). 이스라엘이 그들의 위험한 제안을 거절하자 그들은 선전 선동합니다. 일꾼들을 낙심시키고 거짓 정보를 유포한 것입니다(4:4). 이 때문에 다리오 왕(BC521~486년)이 다시 성전 재건을 허락하기까지 공사가 중단됩니다(4:5).
연대순으로 보면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다리오 왕이 재건을 명령하는 5장이어야 하는데, 에스라는 성전 완공 후의 일,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4:6, 주전 485~465년)과 아닥사스다 왕(주전 464~424년) 치하에서 벌어진 방해 사건을 삽입합니다. 여기서 대적들은 예루살렘 성의 방어벽 공사를 방해합니다. 대적들은 아닥사스다 1세에게 전령을 보내 유대인들이 방어벽을 재건하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에 반역하기 위해서라고 고소합니다(4:7~16). 왕은 그 내용을 조사한 후 성벽 공사를 중단시킵니다. 유대인이 예로부터 "반역"을 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4:17-21)
에스라 5장은 주전 520년에 성전 건축이 재개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고하며 예언합니다(스5:1-2;학1:1-11;슥 1장) 이를 막으려는 관리들은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창고를 조사하다가 유대인에게 성전과 성을 재건하라고 허락하는 내용의 고레스 칙령을 발견한 다리오 왕은 성전 재건을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비용까지 제공합니다(5:1-6:12). 성전은 파괴된 지 70년 만에 완공되고(6:15), 한 달 뒤 이 성전에서 유월절을 기념합니다. 새 성전은 솔로몬 성전을 따르고 있지만 지성소는 비어 있었습니다. 언약궤가 분실되어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 성전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새 성전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두 번째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오래 유지되었습니다.
에스라의 귀환(7~10장) : 대적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편지를 쓰고 나서 BC 458년부터 다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이때 에스라는 왕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합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 자손이며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로 유대인에게 율법을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 바벨론에 사는 유대인은 아직 많았습니다. 에스라는 더 많은 사람을 유대로 돌려보내 도성 공사를 재개하고 치안을 확립하려 한 것입니다.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유대인을 모아 금식하며 기도한 후 예루살렘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보니 앞서 귀환한 사람들이 이방 족속의 딸들과 결혼하고 그들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이 거룩해지기는커녕 우상 숭배와 가나안의 거짓 신앙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9:1-4)
에스라는 오랫동안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여호와를 떠났던 자들이 회개하며, 백성은 에스라가 권면한 일을 행하겠다고 서약합니다. 이방 아내들을 다 내보내기로 서약한 사람들의 긴 명단으로 책의 마지막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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