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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중간사] 목자 비유 (스가랴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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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2026-06-29 07:53:34

본문

 

 

  • 레바논 심판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11:1-3)

 

 ‘레바논’은 히브리어 어원으로 '르바논(לְבָנוֹן)'으로 '희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산맥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정상에는 만년설이 덮여 있습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가 모두 단단하고 튼튼해서 재목으로 많이 쓰입니다. 가장 최상품은 백향목으로, 마치 편백나무처럼, 향이 좋고 해서 고급 가구나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열왕기서에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을 때 성전 재료로써 백향목을 두로 왕에게 부탁해서, 그것뿐 아니라 수많은 목재를 나른 기록이 있지요. 레바논 땅은 이스라엘의 왕이나 지도자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위기 때, 레바논 산맥에 몸을 피신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모두 심판을 받게 되니까, 요단 동편쪽의 이스라엘도 더 이상 희망이 사라집니다. 

 

 상수리나무는 지도층에서 주로 종교인들을 말합니다. 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주로 제사를 지냈고, 마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어쨌든 제아무리 제사를 지내고 다른 신들을 찾아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의 심판은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 끝날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온갖 잡신들을 부르고,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애원해도, 하나님 심판 앞에는 피할 길을 열어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십니다. 할렐루야! 

 

  • 목자 비유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11:4-7)

 

 여기서 ‘너’는 누구일까요? 일단, 다음부터 보겠습니다. 양떼가 나옵니다. 그 양떼를 사는 사람들이 있고 판 자들이 나옵니다. 양떼를 팔아서 두둑이 돈을 챙긴 목자들은 ‘우리가 부자가 되었다’면서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떼를 산 자들은 양들을 잡아 먹었습니다. 이들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양을 잡아 먹어도 잘못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양떼와 양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목자들 사이에 양을 두고 거래하는 모습은 이스라엘(혹은 유다) 백성을 두고 이득을 취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말씀에 그대로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 주민들이 양떼입니다. 그리고 사는 자, 파는 자는 임금과 그 신하들입니다. 그러면 누가 살까요? 이방 나라의 왕과 지도자들이지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나라를 팔아먹습니다. 그리고 이방 나라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잡아 끌고 가고 죽이거나 착취하거나 마음대로 인권을 유린합니다. 이런 모습이 에스겔 당시의 시대상이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역시 오늘날 우리 나라 상황과 비슷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이땅의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속여서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고 합니다. 똑똑한 기술자, 박사들은 나라의 핵심 지식과 기술들을 외국에 빼돌립니다. 정치인들은 자기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뒤로는 온갖 세금으로 착취할 생각만 합니다. 기만과 속임수는 남북한이 거의 비슷하지요. 그래도 우리가 나은 점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좋은 지도자들도 보내 주셔서, 좀 잘 살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 임금에게 넘겨 주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곁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너’라는 분은 이 이스라엘을 참 불쌍히 여기고 가련하게 여겨서 이스라엘을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쪽에는 ‘은총’이라 부르고, 다른 한쪽을 ‘연합’이라고 부르면서, 이 양떼를 먹였다고 하십니다.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8-10)

 

 화자인 목자 ‘나’는 한 달 동안 사고 팔고 했던 목자들을 물리칩니다. 세 목자라고 하셨는데, 한 목자는 양떼를 파는 목자, 또 한 목자는 사는 목자, 또 한 목자는 임시로 양떼를 맡아서 기르던 목자입니다. 아무튼 이 세 목자가 저마다 양떼를 잡아 자기 이득만 취하려 했기에 ‘나’라는 목자가 이 세 목자를 모두 없앴는데, 양떼들이 서로 분열되고, ‘나’란 목자를 따르지 않고 각자 제 갈 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총’의 그룹의 양떼를 ‘나’란 목자가 버리게 됩니다. 그 ‘은총’을 꺾어 버리고 양떼를 흩어버리는 이유가 ‘나’란 목자의 기분 탓이 아닙니다. 양떼가 그 목자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1:11-14)

 

 하루 아침에 목자와 양과 관계가 끝장이 납니다. 그래서 ‘나’란 목자가 그동안 양떼를 돌본 자기 삯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겨우 은 30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1 사람 노예값만 쳐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알아야 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이셔서, 수많은 사사시대를 지내고, 다윗 왕을 세워서 남쪽 유다는 다윗 왕조로 수백 년을 보살폈습니다. 약 1,000년을 보살피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북이스라엘도 약 800년을 이어가게 하셨는데, 그 수고와 희생의 값이 고작 한 사람 노예값 정도로 쳐준 것입니다. 그래서 ‘연합’이란 그룹의 양떼도 모두 버리게 됩니다. 

 

 ‘나’란 목자는 그 은 30개를 한 토기장이에 던져 주었다고 했는데, 이 놀라운 비유가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그 일파에게 겨우 은 30세겔에 제자인 유다가 팔아넘기고서, 훗날 예수님이 잡히셔서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 은 30세겔을 돌려 주어서 예수님을 다시 빼어낼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유다는 그 은30세겔을 다시 성전 헌금함에 던져 버리지요. 그리고 자살합니다. 성전의 제사장들이 그 은 30세겔의 돈으로 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공동묘지를 삼고, 유다를 그 땅에 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스가랴의 예언이 일부가 성취되었고, ‘너’와 ‘나’로 등장하는 목자에 대해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즉, 구약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은총’의 그룹은 남유다 왕국을 의미하고, ‘연합’은 ‘북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둘 다 통칭 이스라엘로 부를 수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거절하고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지 않고, 악한 나라에 넘겨 버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은 더 이상 12 지파로서의 의미가 상실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형제였던 것이지, 하나님이 없으면 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악한 목자의 등장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11:15-17)

 

 목자의 ‘기구’는 양떼를 돌볼 때 쓰는 지팡이 같은 것들입니다.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그 지팡이를 이용하여 꺼내어 주기도 하고, 맹수가 나타나면, 목자의 지팡이는 몽둥이가 되기도 합니다. 양떼를 돌보는 목자에게 그런 도구들이 없으면, 목자 역할을 감당하겠습니까? 못하게 되지요. 그렇게 이스라엘 양떼를 기르는 목자들이 무능력하게 되고, 그 뒤에 일어나는 악한 목자가 등장하는데,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목자’라고 합니다. 이 한 목자는 무자비하고 건강한 양이라도 자기 배를 위해서 잡아 먹습니다. 보통은 건강한 양들은 번식을 위해서 더 잘 관리할 텐데, 이 목자는 그렇지 않고, 양떼를 버리는 못된 목자입니다. 이 못된 목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이 악한 한 목자는 훗날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입니다.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악한 목자는 예수님처럼 추앙을 받고 떠받드는 악의 세력이 많을 것입니다. 속아서 많은 사람들이 참 그리스도인줄 알고 따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더 착취당하고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하나님께서 이 못된 목자를 제거하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돌보신 그 기나긴 세월의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하여서 감사치 않고, 오히려 그 사랑을 베푸신 주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은 우리들은 마음이 완악하게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베푸신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늘 감사하면서, 우리도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주의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감동시키시고, 참 회개와 순종의 결단을 하도록 인도하옵소서! 악한 날에 우리를 속이며, 생명을 노리는 어둠의 세력에서 건져 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분별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은총을 더해 주옵소서! 참 구주되시고 선한 목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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