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일찍이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우거함이더라.” (2-3)
이스보셋 곁에서 그를 돕던 군 지휘관이 두 사람이 있었지만, 이 가까운 사람들이(같은 지파나 브에롯은 여호수아 시대에 히위 사람들이 화평조약을 맺고 베냐민 지파에 속하게 되었음) 자신을 배반하고 죽일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레갑과 바아나, 이들은 이스보셋에게 권력이 있고,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니까 따르다가 군대장관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바뀝니다. 이스보셋 곁에 있다가는 자신들도 ‘아브넬’처럼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럴 바에야 자신들이 먼저 움직여서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 바치면, 혹시 다윗에게 지휘관 자리를 보장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4)
그런데, 갑자기 4절에 ‘므비보셋’이 등장합니다. 5장에 나와도 되는데, 아무튼 싸울 능력이나 지도자로서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후에 다윗이 어떻게 요나단과 언약을 지키는 지 설명하기 위함이지요.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5-6)
어떤 설교가는 대낮부터 침상에서 잠을 자니까 이스보셋이 암살을 당하지 않느냐면서 이스보셋의 게으름을 탓합니다. 그러나, 이 중동 지방은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거나 이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주로 해가 넘어갈 때와 새벽에, 집안 일을 하거나 나랏일을 하기 때문에 낮에 부족한 잠을 자는 것은 그 당시 사회 관습이었습니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이 암살자들이 배반을 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왕의 일을 도와서 늘상 하던 일처럼,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의 집에 들어가서 자고 있는 이스보셋의 배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살해현장을 급히 떠나는데, 또 사무엘하 기자는 다른 기사를 덧붙입니다.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7)
쳐죽였다는 것이 배를 칼로 찌른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베어서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해서 다윗이 있는 헤브론에 가져옵니다.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8)
레갑과 바아나는 다윗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갖다 바치면, 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원수 사울의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원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 주변에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까 다윗에게 사울은 원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설사 다윗에게 ‘사울’이 원수일지라도, 레갑과 바아나에게는 주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 했지만, 이스라엘 왕으로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고 자신이 직접 복수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중에는 사울을 ‘원수’처럼 여겼을지 모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사울을 원수라고 부른 일이 없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늘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남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믿으면 안 됩니다. 대화를 해 보면, 전혀 생각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9-10)
다윗은 사울을 원수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자신을 죽음 가운데에서 건지신 것은 ‘여호와’시다라고 고백하면서, 사울의 죽음에 대해서 다윗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던 아말렉 청년을 죽인 일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사울을 죽이고 그의 왕관과 팔찌를 다윗에게 바치면 무슨 상을 줄 것으로 생각했던 그 이방인도 죽였는데, 하물며 자신의 주군을 배반한 악한 자들을 어찌 죽이지 않겠느냐 하면서 레갑과 바아나를 제거합니다.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 (11-12)
다윗은 이스보셋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 의인을 죽인 자들-레갑과 바아나-은 악인들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악인들을 심판합니다. 그들이 죄를 지적하며 일반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손과 발을 잘라서 헤브론 못에 매답니다. 이렇게 손과 발로 죄를 짓는 자는 수족을 베어 버릴 것이란 의미지요.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무덤에 함께 매장합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옆에서 보필했으니까 죽어서도 잘 모시라는 의미가 있겠지요. 아무튼 이제 11지파는 자기가 따랐던 왕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서열로 따지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지만 당시 장애를 가진 이 므비보셋에게 왕위를 계승해 줄 리가 만무하지요.
5장에서 드디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는 청을 합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5:1)
이스라엘 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왔겠지요. 그리고 다윗과 인척관계임을 강조합니다. 사울이 있을 동안에는 다윗에 대해서 두둔하고 보호해 주지 못하다가 그에게 사람이 모이고, 권세가 있으니 다윗에게 줄을 서려고 합니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5:2-3)
다윗이 드디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이지요. 참 순탄치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이뤄집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것을 잘 보아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사울이 끝까지 다윗을 죽이려고 했고 왕좌를 지키려고 했지만, 인간의 계획과 생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도도하게 진행됩니다.
이 다윗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다시 오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이 일이 금방 이뤄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불순종과 지금 권세를 가진 어둠의 세력들과 그의 하수인들이 반항을 하고 방해를 하고 끝까지 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모든 왕권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5:4-5)
다윗이 서른 살에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서 7년 반을 다스렸고,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32년 정도 다스려서 대체로 약 40년을 다스리게 됩니다.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5:6-7)
다윗은 왕에게 걸맞는 성을 얻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인데, 다윗 시대에 점령해서 ‘다윗 성’으로 불리게 되지요. 원래 여부스라는 강한 민족이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이 다윗을 얕잡아 보고, 여부스의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라도 다윗은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큰 소리 쳤다가 그들은 다윗의 군사들에게 완전히 도륙을 당하게 됩니다.
나중에 여호와의 법궤가 이곳에 들어오게 됨으로 ‘시온 성’으로 또 명칭이 바뀝니다. 사무엘서는 다윗 시대 이후에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시온 산성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 나온 것이지요.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5:9-10)
여부스 성을 다윗이 차지하면서, 그 성을 확장시킵니다. 그래서 규모가 더 커지고, 여부스 족속보다도 많은 유다 지파 사람들과 먼저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 왕을 섬기던 신하들 중에 선별이 되어서 왕도에 살게 된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물론, 다윗과 동고동락했던 측근들과 가족들도 함께 이 다윗 성에 와서 살게 되지요.
앞에서 다윗이 점점 강성해 진다고 할 때, 자녀들이 헤브론에서 계속 태어난 것을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다윗의 영토가 넓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강성해 지는 것은 사람이 늘어나고, 땅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 다음에 언급되는 것은 외교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5:11-12)
생각지도 않았던 두로 왕이 다윗과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합니다. 이 두로 왕 히람이 국제 정세에 밝은 사람입니다. 그 전까지 다윗과 어떤 연결도 없었는데,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여부스 족속을 멸망시키는 것을 보더니, 다윗 왕을 위해서 기술자들을 보내 주어 왕궁을 짓게 합니다. 아주 영리하고 명석한 사람입니다. 히람 왕이 다윗을 왕답게 대우합니다. 그리고 그가 실리를 어떻게 챙겼을까요? 왕궁을 지어 주었으면 그 왕궁을 아름답게 꾸밀 인테리어 자재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두로는 무역에 아주 능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금은 보석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목재와 재료들을 사고 파는 일에 능숙한 자들입니다.
다윗 왕궁을 꾸며 주었으니까 그 왕궁에 들어가는 금은 보석을 매매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이 평생 들이나 광야 같은 곳에서 살다가 세련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궐에 살게 되었습니다. 참 격세지감(隔世之感)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5:13-16)
다윗이 헤브론에서 6명의 왕자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몇 명을 더 낳습니까? 11명입니다. 그러니까 도합 17명의 왕자들이 다윗에게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솔로몬이 앞으로 다윗의 왕위를 잇게 되는데, 솔로몬은 몇 째입니까? 여기 예루살렘에서는 넷째니까 헤브론부터 따지면, 10째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아들을 낳으려면 적어도 10명은 낳아봐야 합니다. 하하하.
19세기 영국을 회심시키고 큰 부흥을 이룬 요한 웨슬리 같은 경우에는 19명 중에 15번째 였다고 합니다. 아들로서는 둘째입니다. 위로 대부분이 누나들이지요. 그 쯤 낳아야 한 나라를 회심시킬만큼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는대로 많이 낳아야 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까,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왕으로서 전쟁을 또 감당해야 합니다. 블레셋은 이 다윗과 전쟁을 통해서 온 이스라엘을 식민지화 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5:17)
다윗이 아기스 왕 곁에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에 대해서 잘 알지만, 경거망동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먼저 무릎을 꿇지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잘 알고 내부에 있었음에도 나랏일이나 중대한 일을 할 때에는 항상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사실 사소한 일부터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어려운 일을 당해도 먼저 기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5:18-20)
여기에서 지명이 중요합니다. ‘르바임’은 ‘강하다, 거대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르바임’ 족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른 바, ‘거인’ 족인데,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강한 적군들을 파괴하여서 흩으셨다는 의미로 ‘바알 브라심’으로 지명이 바뀌게 됩니다. ‘바알’은 ‘주인’ 이란 뜻인데, 다윗에게 있어서 바알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수 있도록 다윗에게 능력을 주셔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21-25)
블레셋이 아무리 재정비를 하고 다시 준비를 해도 하나님의 지략을 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대로 다윗은 전쟁을 수행했고, 승리했습니다. 다시는 블레셋이 이스라엘 땅을 침범할 수 없도록 완전히 쳐부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강한 대적들도 물리치고 승리할 줄 믿습니다. 언제나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하게 물으며,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보셋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고향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배반하고 뒤통수를 칠 수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음을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이뤄지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을 봅니다. 다윗은 주님과 함께 할 때 강해지고 나라도 강하게 섰습니다. 우리들도 늘 주님만을 믿고 따르게 하시고, 우리 가정과 교회와 민족과 나라도 주님을 섬김으로 강해지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위정자들도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며,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묻고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들은 그리하지 않을 지라도 우리 성도들만큼은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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