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 유니게 (www.unice.kr)>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1-2)
여러분은 평안할 때에 무슨 생각을 합니까? 저는 컴퓨터를 가지고 조립도 하고 소프트웨어를 유투브를 통해서 배운다든지,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관심을 쏟읍니다. 대게 비슷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즐거움을 찾는 것에 마음을 두는데,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천막 가운데 계시니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지, 하나님을 높일 생각은 잘 안 하는데, 다윗은 자신보다 하나님이 더 좋고 화려한 성전에 계셔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했다는 것이죠.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3)
다윗이 이 일을 누구와 상의합니까? 나단이라는 선지자입니다. 이 나단은 앞으로 보겠지만, 왕 곁에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일을 하면, 왕이라도 책망을 하고 바르게 조언을 합니다. 대게는 왕 곁에 있는 종교인들은 왕의 권위를 높이고, 신에게 왕이 잘 되도록 기도하고 제사하는 일만 합니다. 쓴 소리를 잘 하지 않지요.
나단은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이제 왕이 되셨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가 있지요. 마음에 원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조언을 했습니다. 그 대화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왕궁에서든 저작거리에서든 우리들의 대화를 다 듣고 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4-7)
다윗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셨을 때부터, “나(하나님을)를 위해서 궁전을 지어라” 라고 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노예로 살던 히브리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는데도, 어떤 사람이든지 지도자든지 우리가 여호와를 위해서 성전을 짓자 하고 말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아 누리면서, 다 자기 살 집을 마련하고 자기 밭을 가꾸고 자기 살림살이에 신경을 썼지 하나님께 집을 지어 드리자는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세월이 거의 400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기는 커녕 우상 숭배는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각 산지마다 산당을 짓고 우상 숭배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혹 그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도 했지만, 동일한 장소에서 다른 우상도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한 성전은 다윗 이전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그저 휘장이라는 성막을 치고 그 안에 여호와의 궤를 모신 정도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이나 레위인들도 역시 그런 제안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사사였던 사무엘조차도 그런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초대 이스라엘 왕 사울도 자기 기념비를 세울지언정 성전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생각한 단 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기특하게 보셨는지, 하나님께서 오히려 다윗의 집을 지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8-9)
다윗은 목동 출신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을 기르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입니까?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존경하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직업이나 직종이 아닌데, 그렇게 천한 사람을 한 나라에 왕이 되게 하신 분이 여호와십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다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든지 승리해서 다윗 때에 이스라엘 영토가 상당히 넓어졌습니다. 왕들은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들을 다스려야 이름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그렇게 되게 해 주겠다고 여호와께서 언약을 하십니다.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0-12)
다윗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복을 받는데, 전쟁이 나면 여기 저기 피난가기 바쁘지 않습니까? 지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2년 반이 넘도록 하고 있는데,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다른 영토를 빼앗으면 빼앗았지 빼앗기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왕이 아니라 사사들이 통치하던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고 그러면 이웃 나라들을 통해서 식민지를 삼고 그 침략국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했는데, 다윗 때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오히려 많은 나라들로부터 다윗은 조공을 받게 되지요.
또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 주시겠다고 하는데, 계속 읽어보면, 단순히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 바 ‘다윗 왕조’를 이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으면서 이뤄지지요. 다윗이 이런 복을 받은 것이 단순히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생각만 있어서 그랬을까요?
우리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다윗의 인생 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며 찬양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들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뭔가 보답을 하려는 마음은 다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고, 한 평생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교류를 하면서 지내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겠다고 마음을 먹고 자신이 준비한 것이 어마어마합니다. 대략 다윗의 전 재산의 절반을 미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사실 다윗이 지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 비용과 설계와 모든 것을 구비시켜 놓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하고 성전을 안 지을 수 없게 그 신하들에게도 주지시켜 놓았습니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3-15)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런데 여기 번역이 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영원히’ 그 왕위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동안(long time)’이 맞습니다. 솔로몬이 영원히 살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사는 동안, 상당히 오랜 시일을 왕권을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지요. 그리고 사울은 범죄하여서 왕위를 아들(요나단)에게 물려 주지 못하고 왕조를 이루지 못했지만, 솔로몬은 잘못을 해도 왕위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언약을 하십니다.
실제로 솔로몬이 잘 나가니까, 여러 이방 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집니다. 나라의 살림이 거덜이 날 정도로 사치하고 방종하게 되는데, 솔로몬 당대에 이스라엘 나라가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 대에서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잘못한 것만 생각하면, 당장 왕위를 빼앗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다윗을 생각해서 솔로몬을 내치지 않으신 것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6)
앞에서 다윗의 아들의 왕위를 이야기한 것과 여기 다윗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한 곳에서 ‘영원히(욜람)’ 란 단어가 의미가 다릅니다. 앞에는 오랜 시간으로 번역한 것이 맞고, 뒤에는 정말로 영원히(forever)가 맞습니다. 그래서 이 다윗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선지자들 통해서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다윗의 자손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실 것이고, 그 분이 바로 메시야가 되어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고 모든 나라와 권세 위에 왕이 되실 것이라고 합니다. 신약의 ‘예수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때 다윗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게 됩니다.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17-18)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너무 너무 황송하고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해서 어안이 벙벙하지만,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저 같은 것이 무어라고 이렇게 사랑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하는 것이지요.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19-22)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주님은 위대하십니다.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주님만이 신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19절 후반부에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하는 것보다 ‘이것이 사람을 위한 법입니다.’ 랍비 성경에는 번역이 되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이것이 어찌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일상적인 방법이겠습니까?” 하면서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정말 특별하고 파격적인 대우, 은총임을 반문하는 형식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이런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23-26)
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약속하신 대로 이뤄 주옵소서!’ 입니다. 물론, 앞 뒤에 ‘하나님 같은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여호와의 만군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는 찬송과 찬양이 들어 있지만 감사하면서도 약속을 꼭 지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나쁘게 보면, 다윗이 참 집요하게 조른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에 기반한 기도와 간구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는데도, 영 믿지 못하는 태도나 아니면 자신이 무엇을 간구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27-2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지만, 늘 기도로 그 복을 확인하고, 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 자녀를 길러 보니까, 무얼 사주겠다고 약속하면, 그것을 자꾸 되새기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기대하고 기뻐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들은 때로 잊어버리기도 하고 약속을 어기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잊지도 않으시고 약속을 저버리는 분도 아닌 신실하신 분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기뻐하면서, 주신 복을 누리고, 자랑하고 증거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에게 언약을 주신 것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은혜를 입었지만,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마음을 쓰고 자신의 귀한 것을 드리는 데는 인색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을 사랑함으로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보시고 오히려 주님께서 다윗에게 ‘왕가(王家)’를 세워 주시고 다윗의 후손으로 영원히 다스릴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도 약속하십니다. 분에 넘치는 은총이 다윗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임했음을 고백합니다. 다윗처럼 주님을 더 사랑하고, 늘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증거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윗은 더 기도하고 더 아버지와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날마다 감사하며 기뻐하면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 속에 있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기쁨이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기 원하며, 우리의 주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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