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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0장 어리석은 암몬 왕 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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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84회 작성일 2024-09-19 06: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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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과 문상은 어떻게 다릅니까? 한자로, 상(喪)은 '없어진다, 죽다'의 뜻이고, 조(弔)는 '슬퍼한다'는 뜻인데, 조상은 슬퍼하며 죽은 이에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문상(問喪)은 '죽음을 묻는다'는 뜻으로 상을 당한 '상주를 위문하는 것'입니다. 또, 조문(弔問)은 조상과 문상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상주와 고인에게 예를 표하고 위로의 인사를 하는 것이지요.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 ” (1-2a)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대상19:1-2a)

 

  사무엘하 10장은 이후에 역대상 19장에도 반복됩니다. 아마 에스라가 유다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 돌아온 유다 백성들에게 역사 교훈을 하면서, 다윗 시대와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다윗 시대의 역사를 인용한 듯 보입니다. 아무튼, 우리 나라 신학자들이 번역을 조금 차이나게 했는데, 이런 부분을 들여다 보는 것도 성경을 연구하는 즐거움이지요. 

 

 우리가 사무엘상을 읽어 보면, 다윗이 언제 암몬 왕 나하스에게 은혜를 입었는지 기록에 없습니다. 제 견해인데, 아마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 다윗의 일가도 함께 피난길에 오릅니다. 가족을 볼모로 다윗을 잡아 죽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윗이 부모님을 모시고 피난을 다니지만, 이렇게 광야에서 부모님을 모실 수 없기 때문에 모압 왕에게 가서 자기 부모를 의탁했다고 나옵니다. 이 부분이 좀 오기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즉, 모압이 아니라 암몬이고, 만약에 사무엘하 10장이 잘못되었다면, 여기 이 암몬 부분이 모압이 되어야 하겠지요. 

 

 모압이나 암몬의 역사 기록이 없기 때문에 교차 검증을 할 수 없는데,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암몬 왕과 다윗 간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다윗이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 하눈이 왕이 되자, 신하들을 시켜서 문상을 보냅니다. 그런데, 다윗이 주변 나라와 계속 전쟁을 하면서 점령을 하게 되자, 암몬의 신하들은 다윗이 곧 암몬을 쳐들어와서 자기 나라들도 점령하려고 할 것이라고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암몬 왕이 된 ‘하눈’도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다윗은 그러한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다윗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니까 할 수 없이 암몬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옵니다.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3-4)

 

  암몬의 신하들이 왕에게 다윗이 암몬을 엿보기 위해서 첩자를 보낸 것이라고 다윗의 조문단을 평가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암몬 왕 하눈은 다윗의 사절단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모욕적으로 대우합니다. 이스라엘의 조문사절의 수염을 절반을 깎고, 옷을 하체가 드러나도록 자릅니다. 당시, 문화에서 남자에게 있어서 수염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실질적으로 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드러내게 합니다. 오늘날로 보아도 큰 외교적 결례(缺禮)입니다. 

 

 암몬 족속 입장에서는 자기의 주변 나라가 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되고, 전쟁에 패해서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니까 긴장이 되겠지요. 하눈이 다윗을 의식해서 조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면 어떻게 합니까? 다윗 왕이 자신의 민족을 정탐하는지 주의 깊게 보고, 관찰하고 조심하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사신들을 굴욕을 주면, 이스라엘과 한 번 해보자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5)

 

 그 조문단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다윗 왕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사절단을 생각해서, ‘여리고’에 머물면서, 수염이 자라면 예루살렘으로 와서 보고하도록 합니다. 수염이 자라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대략 6개월 정도가 흐르지 않았을까요?

 

 암몬의 하눈은 자신이 이런 일을 저질러 놓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준비합니다. 암몬의 군사력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전쟁해서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나라의 무기를 수입하고 용병을 고용합니다.   

 

 “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암몬 자손들이 사람을 보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사람 천 명과 돕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한지라.” (6)

 

 아람 군사 3만 3천 명을 용병으로 구합니다. (20,000 + 1,000 + 12,000) 사무엘하에는 군사의 인원만 나오는데, 역대하19장에는 용병을 구할 때 든 비용과 병거까지 대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대상19:6-7)

 

 고대 기마병 1사람(군마 포함)의 군사력은 일반 보병의 5명에서 15명의 군사력과 맞먹습니다. 평균적으로 10명의 보병이라고 치면, 이 암몬이 약 32만 명의 군대를 동원한 것과 같은 실로 엄청난 전쟁을 준비한 것입니다.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매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소바와 르홉 아람 사람과 돕과 마아가 사람들은 따로 들에 있더라.” (7-8)

 

 다윗은 전쟁할 생각이 없었는데, 암몬 왕 하눈이 조문사절에게 모욕을 주고, 수많은 병거와 용병들을 준비해서 이스라엘과 싸우자고 하니, 앉아서 그냥 당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에게 이스라엘을 방어하라고 명령했지요. 

 

 “요압이 자기와 맞서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선발한 자 중에서 또 엄선하여 아람 사람과 싸우려고 진 치고, 그 백성의 남은 자를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진 치게 하고” (9-10)

 

 이스라엘은 암몬과 전쟁할 생각이 없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하눈이 자기가 실수한 것도 있고 해서 다윗과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역전의 용사이자 군대장관 요압이 군대를 둘로 나누어서 한 쪽은 수비(방어)하도록 하고 자신은 최강의 용사들을 꾸려서 선봉에 섭니다.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1-12)

 

 요압 장군이 아브넬을 죽이고 했지만, 싸울 때는 정말 용맹합니다. 그리고 아람이든지 암몬이든지 서로 힘을 합해서 물리치자고 통솔력도 있고 지도력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아주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도 믿음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은혜를 베풀려고 했는데, 암몬이 저렇게 나오니 하나님께서 옳은 데가 전쟁에서 이기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요압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아람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13-14)

 

 이 아람 군대가 돈 때문에 와서 싸우지만, 이스라엘은 지금 목숨을 바쳐서 싸우려고 하니까, ‘이러다가 돈도 못 써보고 죽겠구나!’ 하면서 줄행랑을 칩니다. 모든 전쟁은 돈이 연관이 되어 있지만, 돈 때문에 싸우는 사람과 내 조국, 내 나라를 지키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과 벌써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암몬은 자기들의 숫자만 믿고 까불다가 아람이 도망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도망을 칩니다. 헛 돈을 쓴 것이지요. 괜히 은 천 달란트만 날린 것 아닙니까! 요압도 암몬을 쳐들어가고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다시 다윗에게로 돌아옵니다.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 모이매, 하닷에셀이 사람을 보내 강 건너쪽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 내매 그들이 헬람에 이르니 하닷에셀의 군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15-16)

 암몬을 도와서 이스라엘을 한 번 이겨보겠다고 했다가, 이제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와 다시 전쟁에 휩쓸리게 됩니다. 아람 나라도 자신의 연합 국가들을 모아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과 싸울 준비를 합니다. 괜히 아람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해서 피해를 보고, 다윗은 더 넓은 영토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매 그가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헬람에 이르매 아람 사람들이 다윗을 향하여 진을 치고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백 대와 마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그 군사령관 소박을 치매 거기서 죽으니라.” (17-18)

 

 아람의 군사령관 소박이 이스라엘과 전투에서 패하여 죽게 됩니다. 아람 나라는 많은 병사들과 군마들 뿐만 아니라 유능한 지휘관을 잃게 되지요. 그래서 쓸데없이 남의 나라 전쟁에 끼어들면 안 됩니다.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 (19) 

 

 아람 나라가 이제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고, 다윗 왕을 두려워하게 되지요. 7장에 나온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됩니다. 오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무엘하 10장에서 한 가지는 영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다윗이 하눈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려고 자기 종들을 보내지 않습니까? 하눈이 다윗에게 잘한 것이 없어요. 그 윗대에서 잘한 것 때문에 그러한 은혜를 받을 뻔했는데, 하눈은 어리석게도 호의를 원수로 갚다가 개인도 힘들고 나라도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를 베푸시려고 그 종들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심지어 우리 조상들이 잘한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고 자비하신 성품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의 호의와 은혜입니까? 외아들을 죽여서 온 인류를 살리시려고 하는 은총입니다. 보통 은총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 종들에게 굴욕을 주고 배척을 하고 하나님과 등지고 싸우려고 한다(?)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 암몬 왕 하눈이 참 바보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그분을 증거하는 전도자들을, 선교사들을 배척하는 것도 역시 심히 미련한 짓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싸워서 암몬이 이겼습니까? 완전히 패배하였지요. 세상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화친하고 영접하는 것이 유일하게 사는 길입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추석인데,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대사가 되어서 우리 친척들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때로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모욕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그 때 이 사무엘하 10장의 말씀이 그렇게 어리석게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도 부모는 신앙생활을 잘하는데, 자녀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눈이 다윗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면, 그도 그의 나라도 평안했을텐데,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실 때에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제 아무리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나하스의 아들이라도 다윗과 대적이 되어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 각자의 자녀에게 이 말씀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은 부모의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함을 알려 주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믿음의 가정에서 그 자녀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많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은혜들을 볼 가능성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미련하고 완악하게 되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추석 명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정마다 전해지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만 섬기는 복된 가정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하스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고 다윗이 그 아들 하눈에게 조문 사절을 보냈지만, 하눈이 어리석어서 오해하고 오히려 모욕을 주고, 다윗과 전쟁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도 그런 일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내려 주셨건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복음을 배척하는 일들이 우리들의 가정과 친지들과 이웃들에게서도 봅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고,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돌이키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친지와 이웃들이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추석 명절이 가족 구원 친지 구원의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은혜를 내려 주신 주님께 영광의 찬송과 감사의 예배가 올려 지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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