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 (1)
하눈이 다윗 왕과 이스라엘에게 모욕을 주었고, 아람나라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했기 때문에 다윗은 암몬을 정벌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일을 군대 장관 요압에게 맡깁니다. 당연히 다윗이 이 전쟁에 출정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냥 요압에게 맡긴 것은 어쩌면 직무유기인지 모릅니다. 이제 다윗은 편안해 져서 더 이상은 직접 나서서 피를 보기가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직접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내정에 힘쓰고,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낮잠을 자고 왕궁을 거니는 것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2)
이 부분을 어떤 주석가들은 왕궁 근처에 사는 이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을 유혹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다윗이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보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지요. 자기 아내들도 있고, 왕궁에 후궁들도 많은데, 왜 왕궁 밖의 여인들에게 또 관심을 갖습니까?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3)
다윗이 이 여인에게 눈길이 가서, 자기 신하를 시켜서 알아보게 합니다.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지요. ‘그냥 좋은 구경했다!’ 하고 넘길 수 있는데, 다윗이 그 여인을 한 번 품어 보겠다는 생각이지요.
신하가 알아보고 대답하는 것이 그냥 “밧세바입니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남편과 부모와 어느 민족인지 호구조사를 자세하게 알아옵니다. 그런데, 끝이 이상합니다.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이 말은 다윗도 잘 아는 여자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엘리암, 우리아는 다윗의 삼십 인 용사에 들만큼 뛰어난 장수이며, 다윗의 부하들입니다. 더 문제는 밧세바에게 남편이 있는데, 다윗이 왜 남의 아내에게 관심을 둘까요?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4)
우리는 다윗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대단히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신실하고 율법을 묵상하며,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요나단과의 언약도 지켰던 다윗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가 있는가? 어떻게 간음을 할 수 있습니까? 다윗에게는 몇 명의 아내가 있고 최소한 후궁이 10명이 넘는데? 그러나 이후에 벌어지는 다윗의 행동들은 더욱 우리에게 충격을 줍니다.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5)
이 밧세바가 ‘임신’을 합니다. 이 임신은 다윗의 간음함을 드러냅니다. 만약, 밧세바가 임신을 하지 않았으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조용히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갔던 우리야가 돌아와 아내가 임신한 것을 알면, 분명히 밧세바를 추궁하겠지요. 그러면 밧세바는 간음죄로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밧세바는 다윗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다윗은 꾀를 냅니다. 우리아를 전장에서 잠시 집으로 보내서 아내와 잠자리를 갖게 하면, 밧세바가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 판단합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6-8)
마치 다윗이 우리아에게 암몬과의 전투에서 공로를 인정하고 성은(聖恩)을 베푸는 것처럼 음식을 주고, 휴가를 줍니다. 그런데 이 우리아는 자기만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집 근처 들에서 야영을 합니다. 마치 자신도 전쟁터에서 있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9-11)
다윗이 부하에게 우리아가 집에 잘 들어갔는지, 음식과 술은 먹었는지 살피라고 했겠지요. 그런데 다윗의 생각대로 우리아가 하지 않고 왕궁 곁에서 야영을 합니다. 이 우리아라고 하는 장수는 정말 의리가 있고, 생각이 아주 곧은 사람입니다. 자기 상관과 부하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자기만 이렇게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다윗은 다시 왕궁으로 우리아를 불러서 술을 마시고 취하게 해서 집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12-13)
이 우리아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절제력이 끝내 줍니다. 어지간 하면, 술 취해서 자기 본능대로 할 텐데, 왕이 내리는 술을 안 마실 수는 없고 해서 모두 받아 마시고 취했지만, 집으로 들어가서 자기 욕정대로 행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다윗과 우리아가 대조됩니다. 다윗도 그랬어야 했습니다. 남의 아내와 왜 잠자리를 갖습니까? 자기 아내들도 많은데… 또, 다윗은 부하들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수많은 병사들이 다치거나 죽고 있는 판에 어떻게 자기만 먹고 마시고 즐길 수가 있습니까?
다윗은 자기의 죄를 감추려고 여러 가지 꾀를 부렸지만, 해결이 되지 않자 아주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려고 요압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잔인하게 이 편지를 우리아의 손에 보냅니다. 또, 우리아가 이 편지를 보지 않도록 비밀리에 전달하라고 했겠지요. 보나마나, 충신이었던 우리아는 이 밀서를 읽어 보지 않고 요압에게 전달합니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4-15)
이 밀서의 내용이 전부 공개되지는 않았겠지만, 핵심은 우리아를 전사하도록 꾸미라는 것입니다. 요압도 다윗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요압이 다윗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전횡(專橫)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다윗과 요압만 알게 일을 꾸미고, 암몬 군사가 우리아를 죽이도록 차도살인(借刀殺人)합니다.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16-17)
그리고 요압은 다윗에게 우리아가 전사했음을 보고하게 합니다. 병사들이나 장수의 죽음에 대해서 원래는 책망받아야 할 일입니다. 전술의 실패는 지휘관의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을 하게 한 최종 지휘권자가 다윗이기 때문에 그냥 덮습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장수나 군인들이 죽으면, 보통 군대의 최고 지휘관이 그 죽음에 대해서 장례를 치러주면서, 위로하고 감사로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일절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18)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25)
다윗은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더 열심히 싸워서 그 성을 함락해라!” 합니다. 그리고 밧세바에게 남편의 죽음을 알리고 장례를 치르고 다윗 궁에 들어와서 살라고 합니다.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27)
자기의 충신을 적의 칼에 죽게 한 뒤에 그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는 다윗. 여호와의 율법으로 보면, 십계명 중에 3가지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6번째, 살인했고, 7번째, 간음했고, 10번째, 남의 아내를 탐내어 빼앗았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딘 러드웍과 클린턴 롱거네커, 두 교수가 1993년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논문을 써서 발표했습니다. “왜 성공한 리더들은 자주 윤리적인 문제에 넘어지게 될까?” 라는 논문에서 ‘밧세바 신드롬’이란 말을 썼는데, 권력을 가진 다윗과 같은 사회 지도층이 윤리적으로 타락에 빠지는 것에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현실 감각이 없어집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성공’으로 인한 교만과 특권의식으로 자신만큼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어!’ 다윗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자기의 간음죄를 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나는 왕인데, 이 정도도 못할까?’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 정도쯤은 잘못해도 괜찮지 않아?’ ‘나는 주일을 잘 지키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어! 세상 사람들에게 좀 함부로 해도 괜찮아!’ 하는 교만 때문에 죄를 짓는데 무디어집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이까짓 거 쯤이야, 나에겐 세상적인 도덕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하면서, 잘못된 특권의식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는데, ‘나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어’, 말씀을 읽지 않는데도, ‘난 말씀대로 살고 있어!’ 하면서, 잘못된 의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드리지 않고서도, 하나님 안에, 주님 안에 살고 있다고,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옳게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무너져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 그 생각은 참으로 버려야 합니다. 우리들도 조금만 부유하거나 편안해지면, 나태해지고 윤리적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나는 괜찮을거야’ , ‘나는 얼마든지 가정을 지킬 수 있어’, ‘얼마든지 세상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어.’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착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 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삼손은 사자를 죽일 수는 있었으나 자신의 정욕을 죽이지 못한 사람, 원수의 사슬은 쉽게 끊을 수 있었으나 자신의 정욕의 쇠사슬을 끊지 못하는 사람, 원수의 보리밭에 불을 지를 수 있었으나 한 여인이 지른 정욕의 불에 타 죽어버린 사람이다.”
- 초대 교부 암 브로스
우리들은 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윗 같은 위대한 신앙인도 넘어졌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날마다 죽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모든 육신의 정욕을 예수 그리스도로 못 박고, 날마다 주님 안에서 거듭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도 육신의 정욕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본능대로 행동했고, 악한 꾀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죄를 범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고, 고통속에 빠뜨렸습니다.
주님! 우리의 지도자들도 붙들어 주셔서, 그런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말씀을 통해 경고를 받은 우리도 나 자신을 믿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십자가로 육신의 정욕을 못 박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도와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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