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도피여정>
다윗이 처음에는 홀로 블레셋까지 도망했다가 큰 봉변을 당할 위기를 겪었고,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유다 지파이기 때문에 자기가 살던 고향까지는 못 가더라도 유다 지경 내에 있는 곳에서 피신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우선, 가족들이 다윗에게 오는 것이지요. 이 때 아마도 요나단이 기별을 해서, 그 가족들이 피신할 수 있도록 돕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다윗 때문에 온 가족이 몰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울은 다윗을 반역자로 몰아서 그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데, 어떤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윗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사울 왕의 어떤 정치보복이 있지 않았겠나 생각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다윗이 막내이므로 형들)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1-2)
사울의 통치 하에서 원통하고 힘든 사람들이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꾸역꾸역 모여듭니다. 400명씩이나. 우리 교회는 40명만 되어도 꽉 차는데, 400명이 모여 보세요. 여기 쌍학 1~4리까지 주민들을 다 모아도 그 정도가 아마 안 될 것입니다. 아둘람 굴에서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요? 굴에서 밥이 나옵니까? 다윗 같은 사람이 약탈이나 도둑질도 못할 것 아닙니까? 시간이 좀더 흘러가면, 600명으로 늘어납니다.
이 사람들을 다윗이 어떻게 해서든지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다윗이 10년 이상 합니다. 다윗은 이런 생활 10년 해봤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정치보복을 하지 않고, 정치보상을 합니다. 윗사람들 정치놀음에 이래저래 불이익 당한 사람이 없는지 살피고, 그런 사람을 찾아 보상하려고 합니다.
다윗은 정말 정치에 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3000년 전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참 멋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다윗의 이야기를 사무엘 16장부터 시작했는데, 이 다윗이야기는 계시록까지 연결됩니다. 다윗의 이야기가 다윗의 자손, 예수님 이야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부차적인 이야기고 다윗 이야기와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로 마지막 성경책인 요한계시록까지 갑니다.
그래서 이제 정신을 집중해서 다윗이 정치하는 것을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정치를 해야 되는가! 그것은 일반 정치도 그렇고 교회정치도 그렇습니다. 우리 목회자가 제일 잘 배워야 하겠지만, 장로님들도 배워야 되고 권사님들이나 집사님, 그리고 성도들도 배워서 의식이 깨어야 합니다. 다윗이 어떻게 정치를 하는지 정말 배울만 한 것입니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3-4)
여기 모압 미스베에 밑줄을 긋고 5번째 피난처라고 각주를 달으세요. 성경에 나오는 지명 순으로 보면, 라마, 놉, 가드, 아둘람, 그리고 모압 미스베입니다. 다윗이 모압으로 가서 망명 신청을 합니다. 다윗의 증조모 되는 사람이 모압 여자입니다. 누구일까요? 룻. 혈연관계가 있어서 그리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모압 땅에 갔습니다. 지리적으로 모압 땅에 가려면 ‘아르논 계곡’이라는 큰 계곡을 지나야 됩니다. 그것 때문에 거기를 건너서 가서 모압 땅에 도피한다면, 도피처로서는 괜찮은 곳입니다. 사울 왕의 군사들의 손이 미치지 못할 만한 곳까지 갔다고 보면 됩니다.
다윗이 그 어려운 중에도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실 만한 곳을 찾는 것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참 효성이 지극한 사람입니다.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려운데, 부모부터 살리겠다고 모압 땅에 모셔 놓습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5)
다윗이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십시오. 다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니까 다시 갑니다.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헤렛 수풀이 여섯 번째 도피한 지역이지요.
지금도 보면, 이슬람 나라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신분을 위장하고 들어갑니다. 대체로 학원의 교사나 아니면 사업가로 위장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친밀해지면서 복음을 아주 조심스럽게 전하지요. 사업한다고 하면서, 돈 되는 일보다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습니다. 자선사업을 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 분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십니다.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6-8)
다윗이 이렇게 도망치면서 다닐 때, 한 편 사울의 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화로 치면 화면이 바뀌는 것이지요.
사울이 자기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자신의 관리로 많이 등용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기 위해서 계략을 씁니다. 다윗이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장수라도 유다 지파 사람이기 때문에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되면, 베냐민 출신 관리들은 그 기득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이간질을 합니다.
지도자들이 나라를 통합하고 하나되게 만들어야 하는데,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지금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옛날에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사이가 괜찮았다고 합니다. 서로 혼례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잘못된 정치인들이 지역 갈등을 일으켜서, 자기 편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도 나라가 통합이 잘 안 됩니다.
사울이 다윗을 찾도록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면서, 아들 요나단이 자기를 반역하고 있고, 왕자에게 잘 보이려고 왕에게 충성하는 사람도 없다면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 때, 사울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서 놉 땅에 있던 목자장 도엑이란 사람이 다윗을 도운 제사장 아히멜렉을 고발합니다.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9-10)
다윗이 거짓말로 아히멜렉을 속여서 골리앗의 칼을 얻어가는 장면이 목격되었지요. 이 사실로 인해서 다윗이 사울 왕을 반역한 정황적 증거가 됩니다. 다윗이 그냥 음식만 얻어서 도망했더라면 아히멜렉은 목숨을 부지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히멜렉은 좋은 뜻으로 준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1-12)
아히멜렉과 그의 아들들 제사장들이 모두 사로잡혀서 국문(鞫問)을 받게 되지요.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13)
사울 왕이 다윗에게 향한 분노를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쏟아 붓습니다.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과 공모해서 왕을 시해(弑害)하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도와 주고, 갑자기 긴급체포되어 궁으로 압송되어서 죄를 뒤집어 쓰게 됩니다.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14-15)
아히멜렉은 조리있게 자신의 누명을 벗겨 보려고 합니다. 아히멜렉의 말이 다 맞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배신한 적이 없고, 왕의 사위이지 군대의 지휘관이고 누구나 존경하고 따르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를 위해서 필요한 것을 조금 챙겨주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 준 것이 죄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아히멜렉의 반론은 다 무시되고, 사울의 주장만 관철됩니다.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6-17)
아무리 호소하고 논리적으로 반론을 펼쳐도 사울은 아히멜렉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증거 재판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형식적으로 재판을 하고 판결은 사형선고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셨지요.
사형을 집행해야 할 군사들이 다 들어보니까, 아히멜렉의 말이 맞습니다. 아무리 왕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아히멜렉과 그 아들들, 제사장들을 죽이는 악한 명령에는 주저합니다. 똑같이 죄를 범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높은 자리에 있다고 다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이런 악한 상관에게 악한 일을 행하라고 명령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비밀 공작들을 실행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가 양심 고백을 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책으로 출간되기도 하고 영화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악한 일에 동참하지 않으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그 명령 하달 받은 사람을 뒤에서 감시하다가 죽이는 일도 합니다.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18-19)
사울은 자기 곁의 군사가 아히멜렉을 죽이지 않으니, 그를 고발했던 도엑을 시켜서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을 죽이게 합니다. 도엑은 사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울은 제사장들을 죽이는 명령을 내렸고 도엑은 그 명령을 실행했습니다. 이 살인교사(殺人敎唆)한 사울이나 살인을 한 도엑이나 동일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죽이는 일을 한 사람은 사울 왕이 처음입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85명을 죽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 어떻게 사울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겠습니까? 이제 사울은 끝난 것입니다. 그것 뿐 아니라 놉 땅의 사람들, 아마도 제사장들이 가족들과 레위 사람들이겠지요. 그들까지 모두 죽일 정도로 큰 죄를 짓습니다.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0-22)
사울이 도엑을 시켜서 놉의 제사장들을 몰살합니다. 사무엘서 시작할 때에 엘리 가문이 하나님 앞에 심판의 메시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에 엘리도 막지 않고, 거역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이 젊어서 죽게 될 것이고 노인이 없을 것이라고 했던 저주의 말씀. 이 저주가 사울과 도엑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이런 것을 보면, 참 두렵고 떨립니다.
지금 다윗은 자신이 아히멜렉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이렇게 아히멜렉 가문이 큰 화를 입었다고 자책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아들 중에 아비아달이란 사람이 살아 남아서 다윗에게 피신하고 함께 도피생활을 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23)
다윗이 아비아달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잘못이라기보다는 살려고 하얀 거짓말을 했지만, 도움을 받은 그 은혜에 대해서 갚으려고 보상하려고 하는 이 모습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크게 평가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도피생활, 망명생활을 우리는 글로 읽으니까 30분도 채 되지 않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충을 우리가 느끼는 100분의 1도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피난생활, 망명생활한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
열 번을 넘어 이렇게 옮겨 다니면서, 10년 가까이 이런 고난의 시간을 겪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신앙의 연단기, 수련 기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이 당시에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젊은 날에 이런저런 수련과 연단과 고난을 받은 사람들만이 나중에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장차 왕이 될 사람이지만, 10년이 넘도록 여러 곳을 도망다니며, 망명 생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의 고난을 우리는 잠깐 보지만, 우리도 젊은 날에 이런 저런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 고난 후에, 연단을 받은 후 나중에는 크고 어려운 일도 감당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젊은 날에 당하는 시험과 고난을 잘 겪어 넘기는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연단을 받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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