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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9장 다윗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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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0회 작성일 2024-11-17 11: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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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귀환 >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3)

 

 다윗의 군대는 쿠데타를 진압하고 돌아왔지만, 다윗은 승리를 축하하고 기뻐하기보다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요압은 왕과 왕의 자녀들과 왕비 및 후궁들을 구원한 군대를 치하(致賀)하지 않으면, 다윗을 왕으로 섬기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4-7)

 

 지도자들은 개인적인 생활보다 공동체를 우선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을 죽인 요압을 어쩌지 못하고 요압의 말대로 성문에 나가서 이스라엘 군대를 맞이하여 들이고 정사(政事)를 논의하게 되지요. 요압이 다윗의 말을 들었다면 압살롬을 살려서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요압은 자신의 밭을 불태우고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온 공로에 대해서 어떠한 보답도 하지 않았기 개인적으로 압살롬에게 반감이 강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멋대로 왕의 뜻을 무시하고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8)

 

 이제 남은 일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에 압살롬이 없으니까 반란군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왕’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압살롬에게 붙었던 많은 지도자들, 군대 지휘관들도 다 흩어졌고, 이번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척하며, 죽은 듯이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9-10)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부자간의 전쟁을 가만히 지켜 보면서, 역시 하나님께서 모든 혼란을 잠재우시고 선한 뜻대로 이끄시리라 믿습니다. 사자성어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이들이 유대 사람들에게 왜 빨리 다윗 왕을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오지 않느냐고 권고합니다.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1-12)

 

 다윗도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정보를 제공했던 두 제사장에게 환궁할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도록 합니다. 아무래도 제사장들이 해야할 일이 하나님의 뜻을 살펴서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다 백성과 왕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일단, 압살롬을 분별없이 따랐던 사람들에 대해서 다윗 왕이 크게 징벌을 내리지 않겠다고 안심시켜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읍의 유다 백성들이 어차피 다윗 왕과 이제 원수가 되었으니, 다윗 왕이 환궁하면 삼족이 멸망될 것 아니냐, 다른 왕자나 아니면 사울 가의 다른 사람을 내세워서 끝까지 싸워보자 라고 판단하면 내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마치 영적 세계로 보면, 예수님의 재림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저버리고 왕으로 모시지 않았고, 하늘 나라로 올라가셨는데, 남은 제자들, 사도들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시 왕권을 회복하시고 곧 돌아오신다. 이전의 죄는 묻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주실 것이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으라.’ 이것이 복음이지요. 지금 그 역할을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이 담당합니다.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3-14)

 

 제사장들이 그 역할을 참 잘 감당했고,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도 설득했습니다. 사실, 압살롬 편에 선 아마사는 전범(戰犯)으로 제거 1순위인데, 다윗이 이런 자도 용서하고 받아줍니다. 아마사도 용서한다고 하면, 다른 군인들이나 장수들은 어떻겠습니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겠지요. 그래서 심리적으로 항복할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을 잘 했습니다. 모든 사전작업을 다 하고 다윗 왕에게 돌아오셔도 된다고 합니다.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15)

 

 이제 다시 모든 짐을 싸서 환궁하려고 길을 나섭니다. 요단 강 앞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이 다윗의 일행을 맞이합니다. 처음에 예루살렘 성을 떠나면서 요단 강을 건너가기 전까지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란 사람이 다윗 왕을 저주하고 돌멩이를 던지고 먼지를 날렸던 사람이 다시 다윗 앞에 와서 엎드립니다.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6-17)

 

 이 시므이란 사람이 자기 혼자 다윗 왕 앞에 나오면, 그 자리에서 죽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나마 다윗 왕이 압살롬의 난을 피할 때 도움을 약간 주었던 ‘시바’라는 사울의 종을 대동(帶同)하지요. 참 약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시바가 옆에 있어서 그를 용서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시므이가 왕을 저주했던 사건에 대해서 그 처벌을 자신의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맡깁니다. 그러니까 잠시 처벌이 유예(猶豫)가 된 것이지, 그 죄에 대해서 근신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은 없습니다. 당장 다윗 앞이니까 다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기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살려달라고 엎드리는 것 뿐이지요.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18-20)

 

 다윗의 장수 아비새가 이런 자는 살려 두면 안 된다고 당장에 자신이 죽이겠다고 나섭니다. 그러나 다윗이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21-23)

 

 다윗이 역시 정치 고수입니다. 만약 ‘시므이’를 죽였다면, 유다 백성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이 앞으로 대대적인 숙청을 할 것이라고 여기고 또 다른 반역을 모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을 저주했던 ‘시므이’를 용서하면, 어떻게 소문이 나겠습니까? 압살롬에게 붙었던 유다 백성들도 안심을 하고, 다윗의 말을 믿을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면 죽이고 싶고, 충분히 죽일 수도 있지만, 아비새가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막고, 공개적으로 ‘시므이’를 용서한다는 의미로 여호와 앞에 맹세를 합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4-27)

 

 이번에는 므비보셋이 다윗을 맞으러 나오지요. 이때는 시바가 므비보셋을 막지 못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왜 내가 예루살렘 떠날 때 함께 가지 않았는지 묻지요. 다윗은 므비보셋의 말을 듣고, 시바가 말한 바가 다 사실이 아닌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나간 뒤에 옷을 새로 입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다윗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은혜를 입어서 왕궁에서 대접을 받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고, 사울 가문이기 때문에 다윗이 보복을 하지 않고 살려주고 은혜를 베푼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28-30)

 

 이제 요단을 건너서 유대 땅으로 가려할 때, 처음 요단을 건너와서 맞이했던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다시 다윗을 환송합니다. 다윗은 그에게 함께 예루살렘 왕궁에 가서 살자고 제안을 하는데, 아마 그의 공로를 인정해서 벼슬을 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연세가 많아서 자신보다는 아들이 다윗 곁에서 섬길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31-40)

 

  이제 요단을 건너가니까 유다를 제외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다 지파를 나무라고 유다 사람들은 자기들이다윗을 왕궁으로  모시겠다고  옥신각신합니다. 유다 쪽의 사람들은 압살롬 편에 붙었다가 압살롬이 죽으니까 이제서야 다윗 왕을 챙기려고 하고, 10지파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만히 부자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다윗 편이 이기니까 이제와서 유다 지파를 욕하면서 다윗을 챙기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이렇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별수 없습니다. 다 자기 이익을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참 성도는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가 그리스도 편에서 항상 정직하고 진실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41-43)

 

 (기도) 하나님 아버지! 모든 난이 평정되고, 다시 다윗은 왕궁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비참한 말로를 겪지 않게 다윗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은혜를 입은 다윗은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모독했던 ‘시므이’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온 나라가 다시 화합하고 내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수습하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 우리의 지도자들도 개인의 감정이나 사사로운 원한을 갚기보다 나라의 안정과 평화와 번영을 위해 애쓰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이나 우리나 다 자기 이익을 계산해서 처신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주님 편에 서게 하시고,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항상 주님을 모시며,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교훈 삼아, 우리의 일생이 주 앞에서 항상 정직하게 행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우리의 소망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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