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여로보암, Jean-Honore Fragonard(1732-1806)>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1)
솔로몬이 다윗으로부터 양위받을 때에는 예루살렘의 기혼에서 대제사장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르호보암(뜻 ‘백성이 많다’)이 제사장들과 기혼으로 가지 않고 세겜으로 갔습니다. 출발부터 삐끗합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맏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암몬 사람으로 나아마인데, 이스라엘 출신이 아닙니다. 이집트 공주와 솔로몬 사이에서도 아들이 없었을까요? 아무튼 아쉬운 점은 여러 왕비 중에 그래도 이스라엘 출신의 어머니가 낳은 아들이었다면 역사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 (2-3a)
충격적이지만 솔로몬을 피해 여로보암이 숨어 있던 곳이 이집트입니다. 솔로몬이 파라오의 사위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솔로몬이 수많은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이집트의 공주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튼 북쪽 지파 사람들은 여로보암을 불러서 르호보암에게 가서 자기들의 요구조건을 들어달라고 대표로 삼습니다. 그렇게 북쪽 지파들을 대변하는 자로서 여로보암이 서게 됩니다.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3b-5)
부역과 세금이 너무 과도해서 이런 것들을 좀 줄여주면 계속해서 다윗 가문을 지지하고 르호보암을 왕으로서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 요구조건을 듣고 르호보암은 즉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3일 간의 말미를 달라고 하지요. 그렇게 즉답을 피한 것은 르호보암이 잘 처신한 것인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깊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대의 관료들을 불러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을 합니다.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6-7)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정치를 했던 원로들이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그런 조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이 젊은 인재들에게도 동일하게 묻게 됩니다.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8-11)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장에 잡아서 왕의 위엄을 보여주라고 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조언이었습니다. 양쪽 말을 다 듣고, 르호보암이 내린 결론은 강력한 왕권을 보여줄 것이라고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조언과 이치에 합당한 이야기를 옆에서 해 주어도, 듣는 사람이 지혜로워야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르호보암이 많은 조언을 들었지만, 바르게 선택을 하지 못하고 정치를 잘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죄악 때문에 그의 아들이 집권할 때, 이스라엘 나라를 나눌 것이라고 하셨지만, 르호보암이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우상을 제거하면 또 유예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12-15)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꼭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그리고 이스라엘 지파들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나라가 갈라지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어느 한 사람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자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가르치는 사람도 없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불행해지고 잘 안 되고, 서서히 나라가 약해지고 힘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르호보암이 하나님께 묻고, 결과가 나쁘게 될지라도 아버지 솔로몬처럼 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시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지 않았을까요?
세상은 항상 힘있는 사람이나 민족이나 나라를 찾습니다. 그런데, 가장 위대하시고 강하시며, 모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은 찾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모든 주권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겸손히 그의 통치에 순종하고 따랐다면,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졌을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6-17)
북쪽의 10지파 사람들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새로운 나라를 만들게 됩니다. 역사가들은 이 열 지파를 북왕국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남쪽에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남쪽 나라를 남유다 왕국이라고 부르지요.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18-20)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가 나뉘었지만, 르호보암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은 것이 큰 패착(敗着)이지요. 왕이나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포학한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일단 부드럽게 말을 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말 속에도 권위가 드러나야 백성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잘 따르는데, 말을 거칠게 하면 거부감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지도자가 될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21-24)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10지파와 전쟁을 벌여서라도 왕국을 통일시키려고 합니다. 내전이 벌어질 뻔하지요. 그런데, 스마야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군대를 설득합니다. 전쟁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지요. 이 모든 분열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모든 책임은 솔로몬과 르호보암에게 있지만, 여러 가지 변명이나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돌립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하려고 하였다가 멈추었습니다. 일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아직 전쟁 준비가 되지 않아서 물러난 것처럼 볼 수도 있지만, 곧이어 이집트에서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게 되었기 때문에 외부의 적을 막느라 북쪽 지파와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한편, 북이스라엘은 빨리 군사 조직이나 행정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으므로, 전에 솔로몬 시대에 군지휘관이었던 여로보암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25-29)
세겜 지역을 수도권처럼 개발합니다. 그리고 왕궁은 부느엘에 만들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1년에 3차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갈 것을 걱정합니다. 로호보암을 떠났어도 자꾸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화려한 궁전과 멋진 솔로몬 성전을 보면서 다시 여로보암을 버리고 예전처럼 하나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까 염려합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 생각해 낸 것이 벧엘과 단에 다른 제단을 만듭니다. 여로보암이 한 동안 솔로몬을 피해서 이집트에 내려가 있었는데, 그때 본 것이 송아지 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송아지의 형상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소개하면서,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하게 합니다.
백성들은 어떻게 다시 우상으로 돌아갔는지, 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기게 됩니다. 분명 자기들은 여호와 앞에 제사를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명백하게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니까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제멋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하나님의 모습이 아마도 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고 우상을 만든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지만, 꼭 하는 짓은 미신을 섬기는 듯이 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정통적으로 장로교는 ‘말씀’을 강조했습니다. 여러 가지 예배형식보다는 먼저 하나님 말씀에 어떻게 하라고 되어 있는지 집중합니다. 반면, 세상의 문화를 가져와서 예배의 형식을 차용한 ‘경배와 찬양’ 같은 것은 젊은이들이 쉽게 교회문턱에 드나들기 쉽지요. 어떤 것이 옳고 그르냐는 지금까지 많은 논쟁이 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30-34)
큰 성전 두 개를 가장 북쪽인 단과 북왕국 기준으로 남쪽인 벧엘에 짓고 또 수많은 산당들을 짓게 했습니다. 율법에는 레위인 중에 아론의 자손만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일반 사람들을 누구든지 제사장이 되게 했습니다. 시쳇말로 ‘개’나 ‘소’나 모두 제사장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율법에 정한 절기와 비슷한 시기에 북왕국의 절기를 정해서 지키도록 자기들만의 종교법을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데서 떠나 우상을 섬기게 만든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정치화하니 엉뚱한 짓을 벌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치는 마음대로 하되,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고 했는데, 여로보암은 하나님 섬기는 것까지도 마음대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본인도 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조심하고 경계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자기 정치의 도구화하면, 이런 사달이 나게 됩니다. 세상 죄보다 가장 크고 두렵고 무서운 죄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이집트의 ‘송아지’ 신으로 바꾸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소’의 모양으로 대치(代置) 시켰습니다. 우상숭배입니다. 10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 두 개를 어긴 것입니다. 본인도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백성들도 그런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가장 최악의 지도자입니다.
단순히 경제나 사회 문제나 안보 문제의 최악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만, 온 백성을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이끄는 것은 영원히 속죄받을 길이 없는 가장 극악무도한 지도자의 죄악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다른 것은 좀 못해도 온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지도자는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좀 힘들고 고난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끌었다는 것보다 영원히 찬사를 받을 업적은 없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 12: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솔로몬의 범죄함 때문에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하게 되었지만, 르호보암도 하나님을 모르고 예배하지도 않는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들을 귀가 없고, 깨닫는 지혜도 없었는데, 북왕국의 왕이 된 여로보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고, 백성들도 우상숭배하게 만든 최악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지도자들이 말씀을 읽고 반면교훈을 삼아, 하나님을 섬기고 바르게 예배하여 바른 정치와 올바른 국정운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주님! 우리들은 비록 부귀영화를 가지진 못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모시며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요.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거룩하고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지만, 우리 자신과 가정과 이웃들을 돌아보고,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경계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