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ESV 성경 지도>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1)
아합이 죽었고, 여호사밧 왕 17년째 해에 아하시아가 왕이 되었다가 침상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아하시야가 왕위가 햇수로는 고작 2년이고 만 2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왕상 22:1) 아합의 또다른 아들 여호람이 여호사밧 왕 18년에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람이 왕이 되자 마자 처음 한 일은 아버지 아합 때에 북이스라엘을 섬겼던 모압의 배신에 대해서 징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옛날처럼 조공받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모압에게 얼마만큼의 조공을 받았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4)
새끼 양털 10만 마리, 숫양 털10만 마리입니다. 굉장히 많은 옷감을 모압에게로부터 받았는데, 아합 왕이 죽고 모압이 배반하였으니 다시 모압을 정벌해서 북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고 싶겠지요. 그래서 아버지 때에 결혼 동맹을 했던, 남유다에게 함께 하겠느냐고 사신을 보냅니다.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6-7)
이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을 도우려고 합니다. 남유다에게 아무 이득도 없는데, 왜 이럴까요? 모압을 다시 차지한다고 한들, 그것이 남유다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이익이 없는 일에 위험을 감수합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지요? 여호사밧 홀로 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남유다의 군사들을 참전시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수많은 전사자들이 생길 수 있는데, 도대체 여호사밧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합니까?
여호사밧은 모압을 정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대의도 없어요. 북이스라엘이 외적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상황도 아니고, 북이스라엘의 이득을 위해서 자기 백성들을 희생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8)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서로 작전계획을 세웠고, 어느 루트를 통해서 모압을 침략할 지 논의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 논의가 참 어이가 없는 것이 군대는 ‘보급’이 생명입니다. 자국 방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충분하게 준비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지, 더 심도 깊이 연구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상대를 얕잡아 본 것입니다. 남북이 힘을 합쳐 위아래로 침공하면, 쉽게 모압을 정복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가더니 길을 둘러 간 지 칠 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9-10)
여호람이 남유다만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에돔까지 끌어들였지요. 고작 7일 만에 준비했던 식수가 바닥이 났습니다. 얼마만큼의 식량과 물이 필요한 지도 지금 제대로 계산도 안 해 보고서 모압을 치러 간 여호람입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하신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언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압을 정벌하라고 하셨습니까? 자기가 준비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들이고서 일이 시작부터 잘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죽이려고 한다고 망발을 짓거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혹시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아파트 투기 하거나 주식이나 코인 같은 것을 하면서, 잘 안 되고 망하면,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모습을 여호람이 보여 주고 있지요. ‘지가 잘못하고서 하나님을 왜 원망해?’ 제 3자의 눈으로 보니까는 잘 보이시죠? 우리들의 모습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가 도박을 해서 재산을 탕진하고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상 탓하고, 다른 사람 탓하고, 심지어 부모와 가족을 탓하면서 자기 때문에 남도 망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조심해야 합니다.
이 일에 어설프게 껴 들어간 사람이 ‘여호사밧’입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짝짝꿍하다가 얼마 전에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범하는 오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아합은 죽었지만, 여호사밧은 그래도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경험이 있지요. 그래서 여호사밧이 경험이 없는 여호람에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혹시 있는지 묻고 그의 도움을 받자고 합니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는지라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11-12)
다행히도 여호람의 부하 중에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를 생각해 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 이름없이 등장하는 이 한 사람 때문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심지어 에돔의 군사들까지 목숨을 구합니다. 어쩌면, 저와 여러분들이 이름없이 등장하는 군사 중에 한 명일지 모릅니다. 위기에 처한 순간,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라고 소리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사밧이 좀 아둔하긴 해도, ‘엘리사’라는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있다 하면서 모두를 이끌고 그에게 갑니다. 참고로 ‘엘리사’라는 이름을 풀이하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3)
엘리사는 여호람이 도와 달라고 하지만, 단 번에 거절합니다. 그가 아합의 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라고 하지요. 그런데, 여호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3 왕들을 전쟁을 통해서 죽이려고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하나님의 종이니까, 우리들을 대신해서 여호와께 간구하여 생명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지요.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4)
엘리사는 여호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사밧’ 때문에 도움을 준다고 하지요. 이 장면을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간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도가 참 중요합니다.
믿는 우리가 많이 부족하지만, ‘여호사밧’처럼,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고 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무 연고도 없지만, 주님을 섬기는 우리 때문에 믿는 않는 사람들을 도우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참 귀한 것입니다. 물론 인도를 받은 비그리스도인도 결국에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이끌고 도와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본분입니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5-16)
참,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방식이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의 스승 엘리야는 무슨 음악가를 불러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나님과 소통했다는 말이 없는데, 엘리사는 찬양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요. 그래서 산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예배 가운데 찬양의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 열린 예배라고 하면서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을 예배에 초대하기 위해서 대중적인 음악에 신앙적 가사를 덧입혀 CCM이란 것을 만들어 노래부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기도 했지요. 어떤 목사님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 어떤 보수적인 목사님들은 사탄적이라면서 배척하기도 합니다.
어째든,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엘리사를 보면, 이 찬양도 곡조가 있는 기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찬양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 왕들과 군사들에게 전달하지요.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17-19)
여호람은 군대와 가축들에게 먹일 물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문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모압 정벌까지 도와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여호람을 통해서 유다는 물론 온 북이스라엘 백성들과 또한 에돔 땅(에서의 자손들)의 백성들에게까지 이제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비도 없고 바람도 없는데, 정말 하나님은 군사들이 판 골짜기마다 물을 넘치게 채우십니다. 아마 땅 속에서 지하수를 퍼올려 물을 채워 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엘리사를 통해 전달하신 말씀에 ‘모압의 견고한 성읍이라고 해도, 3 연합군의 군대가 그 성읍들을 침략해서 차지하고 나무들을 베고, 샘과 우물을 메우도록 허락하신다’고 합니다.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0)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 임합니까? 여기 말씀에는 ‘아침 소제 드릴 때’라고 나옵니다. 보통 아침 소제가 아침 6시 경에 이뤄집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새벽기도 드릴 시간 때입니다. 예수님도 항상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를 드리셨는데, 비슷하게 아침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올릴 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부분을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지만, 그 약속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이 참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나아와 찬양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1-23)
골짜기에 물이 가득차게 되면서, 아침해가 돋는데,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모압의 백성들에게 환영(幻影)이 보입니다. 붉게 비친 해가 골짜기 물을 피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것을 본 모압 사람들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에돔까지 서로 싸움이 벌여져서, 수많은 피를 흘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잔당들을 죽이고, 모든 가축이나 전쟁 물품들을 전리품으로 챙기자고 이스라엘 군대 앞에 나오게 되지요. 성에 숨어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수비를 하고 있던 모압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와 손쉽게 전리품을 챙기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4-25)
세 왕과 그 군사들은 모압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손쉽게 모압 땅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압 성읍의 좋은 나무들을 베고, 샘들을 막고 우물물을 못 쓰게 만들어서 성 안에 숨어서 계속 수비를 하지 못하게 만들지요. 정말,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뤄졌습니다.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26-27)
모압 왕도 처음에는 노략하러 왔다가 모압 땅이 노략을 당하자, 자기 근위대를 가지고 그 지역에서 빠져 나옵니다. 그리고 맏아들을 자기들의 우상에게 번제로 바칩니다. 참 어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여호람이 계속해서 모압 왕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면 할 수 있었을 텐데, 모압의 신을 위해 자기 맏아들까지 바치는 모압 왕의 결의를 보고, 놀라서 전쟁을 멈추게 됩니다.
이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지만, 모압의 신을 부르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왕과 다른 왕들이 보고 두려워해서, 더 적극적으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을 본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 승리하도록 돕지 않으시고, 크게 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기적과 이적을 보여 주셨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지 않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세상의 악의 세력과 싸우지 않고 두려워 떠는 모습을 보인다면, 주님께서 더 이상의 도음과 은혜는 베푸시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고, 악과 사탄의 세력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감하고, 씩씩한 주님의 군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여호람의 모압 정벌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준비되지 않고, 자기가 벌인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책임을 돌리는 어리석은 여호람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 지 돌아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자기 나라에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 뛰어든 여호사밧의 이해할 수 없는 전쟁참여를 봅니다. 우리들도 남의 일에 엉뚱하게 끼어들어 위기를 자초하고 있지 않은 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은 은혜의 주님이시요,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여호사밧을 위해서 여호람과 에돔의 군사들까지 살 길을 열어 주시고, 능력의 주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구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비록 우리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더라도, 이름없는 왕의 신하처럼,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외치며 선포하게 하옵소서! 여호와는 구원이십니다. 늘 새기며, 어떠한 불행이나 사건이 우리에게 덮쳐도, 포기하거나 낙심치 말고, 주님을 붙잡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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