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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 나아만을 구원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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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025-07-06 11: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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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단 강에 들어간 나아만 (Charles Foster , 1897)>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1)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 시대에, 아람 나라는 당대 강력한 제국이었던 앗시리아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장군으로 아람을 구한 사람이 나아만입니다. 개국공신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나아만’을 사용하셔서 아람을 구원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항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보는 좁은 시야가 있기 때문에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아무튼 이 장군이 나병에 걸렸으니, 온갖 부귀영화를 가졌지만 누리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2-3)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있어서, 약탈을 하는 중에 한 어린 소녀가 노예로 사로잡혀 갔는데, 이 나아만 장군의 집에서 가사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의 나병 발병을 알고 그의 여주인에게 자기 나라에 엘리사라는 선지자에게 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정보를 줍니다. 참, 순진한 것인지 착한 것인지 자기를 종으로 삼은 원수 나라의 장군을 위해서 한 마디 던지는데, 아주 단순하지만 고급정보입니다. 

 

 나아만 장군쯤 되면, 아람 나라나 인근의 온갖 의원들을 불러서 진찰을 받고 약을 지었을 텐데, 소용이 없었겠지요. 그의 아내도, 나아만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어린 소녀의 말을 믿고,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고자 합니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3-4)

 

 나아만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북이스라엘에 엘리사를 만나서 병을 고쳐 보겠다고  아람 왕에게 허락을 맡는데, 아람 왕은 친히 추천서(?)를 써 주면서, 나아만이 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아만 장군이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재물을 가져갑니다. 일단 은만 계산하면, 은 십 달란트는 약 340kg으로 약 6만 세겔입니다. 1세겔이 한 사람의 성인 하루 품삯이니 약 200년 치 연봉인 샘입니다. 2025년 대한민국 평균 성인 남성 연봉이 대략 5천 만원으로 계산하면, 약 100억 쯤 됩니다. 

 

 그리고 금이 6천 개라고 했는데, 단위가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서, 아마 작은 반지 정도되는 것 같은데, 은보다는 무게가 적어서 낱개로 표시한 것 같습니다. 대략 1돈이라고 치면, 6000돈, 2025년 금값을 대략 1돈에 50만원 정도 잡으면, 약 30억 안팎이겠네요. 거기에 옷 10벌은 아마 겉옷으로 잠잘 때는 이불 대용으로 쓰는 것으로, 값이 꽤 나갈 것입니다. 대충 130~140억 정도의 큰 재물을 가지고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러 떠납니다.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6-7)

 

 나아만이 먼저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람에게 가서 아람 나라 임금의 편지를 전달합니다. 이 글을 읽고 요람은 나아만을 핑계로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생각인 것으로 판단하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게 되지요. 왕쯤 되면, 자기 옷을 찢거나 할 일이 없을 텐데, 왕이 자기 겉옷을 찢고 슬픔과 근심을 보이니까, 그 소문이 신하들을 통해서 엘리사에게까지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8)

 

 엘리사가 소식을 듣고, 걱정하지 말고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왕의 신하에게 말을 전하지요. 이 땅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나아만과 아람 왕에게도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에게도 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적용해 보면, 우리 곁에 ‘예수님’이 계시면, 어떤 문제나 난관이 있어도 근심, 염려할 꺼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들도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내 곁에 예수님이 계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어떤 문제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9-10)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 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나와서 맞이하지 않습니다. 자기 종을 보내서, 그저 ‘요단 강에 가서 7번 몸을 씻으라’고 전하기만 합니다. 나아만이 처음으로 겪는 대우였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보면, 머리를 조아리고, 말도 조심스럽게, 행동거지도 조심하는데, 이방 나라, 그것도 왕도 아니고 자기와 같은 급의 왕의 신하도 아닌 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1-12)

 

 나아만 생각에는 엘리사가 나와서 무슨 무당 푸닥거리 라도 해 줄 줄 알았는데, 그저 몇 마디 던지고, 자신을 무례하게 대했다고 판단합니다. 아마도 아람 나라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나 우상의 제사장들이 하던 짓거리가 아닌가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생각이나 주변에서 행해지는 관습이나 습관과 같이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우리에게 시킬 것이라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것을 요구했다면 아마 나아만이 하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너무 쉬운 그것도 강물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하니 물로 몸을 문대기면 뭐가 낫을까 나아만이 스스로 판단하여 불쾌하게 여기고 불순종하려 합니다. 

 

 우리도 대체로 그렇습니다. 적게 먹고, 운동하고, 술.담배를 끊으라는 아주 사소한 지침을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해 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절대 순종 잘 안 합니다. 우리 현대인의 모든 질병이 거의 대사증후군에서 시작이 됩니다. 비유가 적절한 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쉬운 명령에 나아만은 불순종하려고 해요.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3-14)

 

 그래도 나아만 곁에는 참 괜찮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신하들이 “장군님! 선지자가 어려운 일을 시켜도 하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목욕 좀 하라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니, 목욕이나 해 보고, 병이 낫지 않으면 그때 가서 장군님을 모욕한 죄값을 치르면 됩니다.” 하고 설득합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한 번 씻어나 보자 하면서,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씻었더니 엘리사의 말대로 나아만의 나병이 깨끗이 낫습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이 나아만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굉장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하나님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하는 말씀이 우리를 살린다고 구원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슨 크게 어려운 일입니까? 너무나도 쉽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갑니다. 너무 쉬워요. 그러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온갖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서 다른 복음이 되게 만듭니다. 아닙니다. 너무 단순하고 너무 쉽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복음은 너무 단순한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 나아만이 자기 땅, 아람 나라의 강가에서 몸을 씻었다면 나병은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요단 강에서 7번 몸을 씻으라 했을 때, 정확하게 순종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음에 모시면,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너무나 단순한데, 믿지 못하고 다른 어려운 일들을 찾아 행하려고 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요.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5-16)

 

 나아만이 자기 몸이 낫고, 가져왔던 예물을 다시 엘리사에게 가져다 받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거절하지요. 왜 거절하겠습니까? 엘리사가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나아만이 강권하고 해도 엘리사는 받지 않습니다.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17-19)

 

 나아만이 이런 일을 통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즉,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땅의 흙을 조금 가져가서 그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람 왕이 자기 신을 신당에서 섬길 때에 그의 신하들이 함께 들어가 함께 절하는 때가 있는데, 그 일에 대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엘리사는 허락을 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천주교가 조선 시대에 들어올 때, 제사를 허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잠시 허용한 것뿐이지, 바른 믿음과 신앙이 생기면, 그리하면 안 됩니다. 

 

 한편, 떠나가는 나아만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다른 마음을 품지요. ‘너무 큰 재물인데, 왜 거절하는가? 이 물질이라면 풍족하게 쓰고,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을 텐데, 특히 내 몫도 생길 텐데…’ 하면서 너무너무 아쉬워서 자기 스승 몰래 나아만에게 나아가 거짓말로 일부의 재물을 자기가 갖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 (20-23)

 

 게하시는 엘리사의 제자 핑계를 대면서,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요구합니다. 나아만은 한 달란트보다 많은 두 달란트를 그에게 안겨 줍니다. 아마 게하시는 자기 손으로 가져갈 수 있는 최대의 무게를 요구한 것 같아요. 게하시는 나아만을 속이지만,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예물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게 넘겨 줍니다. 자기 종을 시켜서 게하시의 문 앞에까지 가져다 주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지요.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4-25)

 

 게하시가 몰래 예물을 빼돌리고 다시 엘리사에게 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까요?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어디에 다녀오는지 묻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요. 만약, 이때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이실직고(以實直告) 했다면, 나병이 발병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이려다가 게하시는 나아만의 나병을 얻게 되지요.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26-27)

 

  엘리사는 게하시를 책망할 때, 지금은 그런 예물을 받을 때가 아니라는 식으로 꾸짖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우선 나아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중요한 시기인데, 믿음이 자랄 수 있는 시기를 이 물질 때문에 어그려 뜨렸다는 이유로 책망한 것이지요. 나아만의 예물을 받으면 앞으로 하나님과 엘리사에게는 빚진 것이 없습니다. 그냥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을 잘 치렀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나아만이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물을 받지 않았다면, 나아만은 마음 한 켠에 항상 빚진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감사의 찬양과 제사를 드렸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의 해석은 지금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군사적인 긴장 관계가 높아져 있는 때라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를 전쟁 포로로 잡아 가서 나아만 집에 하녀로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북이스라엘과 전시 상황인 아람은 또다시 기회를 엿보아서 북이스라엘을 침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나아만이 아무런 댓가 없이 나병을 고쳤다면, 항상 빚진 심정이 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전면으로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아람 왕이 전쟁을 계획할지라도 엘리사의 핑계를 대거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라도 침공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나아만 장군의 치료비는 다 지불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짐은 사라지고,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아람의 장수로서 전쟁에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이용했던 이 게하시의 모습이 우리 성도들이 혹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득을 채우는 그런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만을 증거해야지, 또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게하시가 탐욕에 눈이 멀어, 자기 주인을 배반하고 거짓말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모습이 바로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방인이었고 적국의 장수지만, 어떻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 수가 있을까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구원이십니다.’

 

 너와 나,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을 높이며, 구원의 하나님을 함께 노래하고 찬양하며 경배드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아만의 구원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아람이 전쟁을 멈추고 평화롭게 지내며,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나라들이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이러한 제사장의 나라 역할을 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이 쓰시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람 나라를 나아만이라는 전쟁에 능한 장수를 통해 구원하시고 그의 질병을 고침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이신 것을 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그 일에 쓰임받은 이름 없는 어린 소녀의 믿음과 자비를 본받게 하시고, 게하시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어리석은 죄는 따르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시대를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허락하시고, 내 생각과 뜻과 판단대로 행동할 것이 아니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순종하는 자세를 우리가 갖게 해 주옵소서! 오늘날도 세계는 혼란스럽고 전쟁의 위기가 가득합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이 지혜롭게 행하게  하시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뜻과 길을 묻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옵소서! 다시오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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