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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열왕기하] 6장 계속되는 엘리사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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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2025-07-13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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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eterwampler.blog/2015/01/07/floating-axe-heads/>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1-2)

 

 엘리사를 따르는 제자들이 100명이 넘어가니까 장소가 비좁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장소를 좀더 넓은 곳으로 옮겨 새로운 건물도 짓고, 좋은 배움의 장을 마련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엘리사도 흔쾌히 동의를 하지요. 보통 교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소위 말하는 부흥이 되어서 예배 드릴 공간이 부족하면, 예배당을 이전하여서 새 건물을 임대하거나 새로 건축을 하는 일이 일어나지요. 나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는 일이 좋습니다. 

 

 교인도 없는데 무리하게 빚을 내어서 예배당을 짓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여기 엘리사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나무를 베어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엘리사와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일을 처리해 가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좋은 일이고, 유익한 일이고, 해야되는 일에도 항상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3-5)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나무 도끼를 가져왔는데, 도끼질을 하다가 그만 호수에 빠뜨리게 되었습니다. 그 제자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오늘날 무슨 도끼 한 자루를 잃어버린 것을 가지고 무슨 호들갑을 떠냐고 할지 모르나 당시에는 쇠붙이가 매우 귀했습니다. 특히 나무를 벨 만큼 강철로 만든 도끼는 매우 고가입니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포크레인 같은 장비값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빌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상당히 고가의 장비를 가져와서 학교를 지으려고 나무를 베는데, 장비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했겠지요. 하필이면 깊은 호수에 빠뜨리게 됩니까? 

 

 그 도끼를 빠뜨린 엘리사의 제자가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되지요. 머릿 속에는 저 비싼 장비를 어떻게 물어주어야 하는지 큰 충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6-7)

 

 엘리사가 도끼가 떨어진 쪽으로 나뭇가지를 넣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무거워서 가라앉아 있던 쇠도끼가 물 위로 떠오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물보다 밀도가 높은 쇠붙이는 가라앉는 것이 맞는데… 이 세상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도끼를 찾게 되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8-9)

 

 얼마 전에 나아만 장군을 고쳐 준 일이 있음에도 아람 나라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람 나라의 왕이나 나아만이나 염치도 없고, 국가 간의 일은 또 개인적인 일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아무튼 엘리사는 여호람을 도와서 미리 침략에 대비하게 합니다. 여호람은 엘리사 때문에 큰 위기를 잘 넘깁니다. 여호람은 엘리사를 겪으면서, 한 가지 깨달아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온 백성과 관리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엘리사가 뛰어난 군사 전략가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도움을 받기만 바랍니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0)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엘리사가 북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한두 번이 아니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민감하지 않으면 잘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까지 사고 없이, 아픈 것 없이 잘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이지 않게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평상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11-13)

 

 아람 왕이 생각할 때, 아무래도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 꽤 넓은 지역인데, 침투하는 곳마다 이스라엘 군대가 나와서 막을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아마 가장 의심이 되는 사람이 나아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아만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조사하고 결론을 내린 것이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이스라엘 군대에게 정보를 주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엘리사만 제거하면 이스라엘을 침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도단’에 있는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특수부대를 급파하는 것이지요.  

 

 현대 전쟁에서 지휘관이나 핵심적인 장군이나 과학자나 요인을 제거하면 나머지 군대는 힘을 못 쓰는 것을 알고, 암살 작전을 자주 합니다. 중동의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쟁하는 양상을 보면, 과연 그렇지 않습니까? 제 아무리 숫자가 많은 군대라도 핵심적인 지휘관만 제거하면 군대가 제대로 싸우지 못합니다. 금방 전쟁이 끝나는 것을 봅니다. 

 

 앞으로 군대를 이끌 장군이나 고위층 인사들은 반드시 성경을 연구하고 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전에 일어나는 일도 수천 년 전에 이미 있었던 일입니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보아야 합니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4-15)

 

 하루 만에 특수부대가 그 도단 성읍을 에워싸고 엘리사를 잡든지, 제거하든지 하려고 합니다. 아침 일찍 엘리사의 종이 문 밖을 나서자 적군이 가득한 것을 보고, 어쩌면 좋냐고 엘리사에게 말을 하지요. 종은 두려워서 떨고 있는데, 엘리사는 천하태평입니다. 왜 그럴까요?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6-17)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자기 종이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정말 사환의 눈이 열리자, 그 아람 군사들 뒤에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됩니다. 아람 군사들의 숫자는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입니다. 

 

 우리도 영안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니까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지키시면 그 어떤 위험이 닥쳐도 안전합니다. 엘리사는 또 기도하지요. 저 같으면 이 아람놈들 싹다 전염병으로 쳐서 다시는 이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할 텐데, 엘리사는 다릅니다.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8)

 

 단지 아람 군대의 눈이 멀어서 엘리사의 도움을 받도록 요청합니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되니, 아람 군대가 엘리사의 손에 이끌려 이스라엘의 수도로 가게 됩니다. 예전에 엘리사가 처음 엘리야와 같은 권능을 받았을 때는 자기를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하여 죽게 했는데, 자신을 죽이려고 온 군대를 해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엘리사가 많이 변했습니다. 성품도 하나님을 닮아가지요.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19)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 때문에 하루 아침에 수많은 아람의 군대를 포로로 사로잡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을 죽이려고 하지요. 엘리사에게 그런 의향을 비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20-23)

 

 전쟁 포로는 노예를 삼던 시절인데, 무기만 빼앗고 아람 나라에 돌려 보냅니다.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주고 인간적으로 대우를 해 주는 것입니다. 아마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전쟁 포로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전쟁법이 생긴 것 같습니다. 유명한 제네바 협정 같은 것 말이지요. 아람의 정예 병력일 텐데, 이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으니 다시 전쟁을 하자고 하면 양심상 쉽게 나설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하나님은 적이라도 생명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별명이 ‘전쟁의 신’이라고 해도 인자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입니다. 온 세계가 평화로우려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와 백성이 되면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텐데, 그 때에는 군대가 필요없고, 전쟁 무기가 필요없습니다.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4-27)

 

 엘리사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아람 군대를 용서하고 먹을 것을 주어 돌려 보냈지만, 여호람은 굉장히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돌아가서 다시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아람 왕의 마음과 생각이 귀환하는 군인들의 마음과 같을까요? 아무튼 벤하닷은 자신이 직접 온 군사들을 이끌고 사마리아 수도를 침공합니다. 아람 나라로 돌아갔던 일부의 병사들이 이스라엘의 지리를 돌아가면서 익혔겠지요? 그들의 도움을 받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아람의 첩자들이 활약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군사들을 대동하고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점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의 백성들은 꼼짝없이 성 안에 갇히게 됩니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연락해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성 안의 물자들이 귀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식량난이 발생하지요. 평상시에는 부정해서 잘 먹지도 않던 나귀 머리 하나가 은 80세겔로 엄청나게 값이 폭등합니다. 연료로 쓰는 짐승의 똥도 매우 비싸지는데, 비둘기 똥이 얼마나 무게가 나가겠습니까마는 그 사분의 일이 은 5세겔입니다. 정확히 갑이란 단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로 치면 됫박 정도 되는 부피가 아니겠습니까?

 

 사마리아 성 안에 백성들이 요람 왕에게 나와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경질이 났는지 여호와께서 돕지 않는데,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느냐고 무시하지요. 그래서 성 안에서는 참극일 벌어집니다. 배고픔으로 인해서 어린 자녀를 부모가 잡아 먹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지요.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28-31)

 

 두 여인이 서로 다툼이 일어나서 왕에게 송사했는데, 이 여인들이 직접 자식을 죽이는 것이 안 되니까, 서로 아들들을 바꿔서 오늘은 니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 먹자고 했는데, 남의 아들을 잡아 먹고, 내 아들을 내놓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 아들도 내놓으라고 왕 앞에서 소송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요람이 자기 옷을 찢으며 슬픔과 울분을 드러내지요. 그 엘리사의 말을 듣고 순순히 아람 군대를 보내주어서 이런 사달이 난 것이라고 자책하지요. 그리고 그 책임을 엘리사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장로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무리와 말을 할 때에 그 사자가 그에게 이르니라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32-33)

 

 사실,  여호람이 자기 부하를 보낼 때는 엘리사를 암살하려고 한 것입니다. 여호람은 이 모든 일은 엘리사와 여호와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아람의 군대가 사마리아 성으로 향할 때, 전에 하던 대로 엘리사를 통해서 방비하면 될 것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여호람의 잘못입니다. 

 

 혹시 우리도 항상 평안한 상태에 머물다가 정작 내가 해야할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게을러서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 여호람이 바로 그렇게 국방와 안보를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은 것입니다. 엘리사만 믿고, 그냥 평안히 지낸 것이지요. 

 

 어떤 일이든지 늘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들이 해야할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군대는 잠재적인 전쟁에 대비하고 위험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것은 왕과 지휘관의 무능이지요. 유비무환(有備無患) 의 태도를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이후에 엘리사는 어떻게 했을까요? 다음 주에 하나님 말씀을 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계획과 일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늘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람 왕은 나아만 장군의 병고침을 보고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애씁니다. 인간사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신의 욕심과 이득을 위해서 쉽게 은혜를 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주님! 어리석은 우리들이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은혜받은 자 답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그 은혜의 보답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다시오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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