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후가 바알 추종자들을 처벌하다', Rombout van Troyen, 1632>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1)
옛말에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지요.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세벨이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이스르엘 장로들에게 보내지요. 아주 교활한 방법을 써서, 그 장로들이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나봇이 왕과 여호와를 저주했다는 고발을 하고 불의한 재판을 통해서 나봇과 그의 아들들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밭을 아합 왕이 소유하게 되었지요.
예후가 이 극비 사항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일하게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아합의 아들들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사마리아 성의 장로와 귀족들과 왕자들의 교육하는 교사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2-3)
예후의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후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아합의 70명의 아들들 중에 가장 싸움을 잘하고 똑똑하고 전쟁 지휘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왕으로 세운다음에 자신과 한 번 전투를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아합의 가문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충성할 사람들이 있을까요? 항상 불의하고 폭력과 억압으로 다스렸던 통치자에게 충성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아합 곁에서 아첨하여 권력을 얻고 재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옆에 붙어 있는 것이지, 이득이 없고 손해가 막심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배반합니다. 이런 자들이 간신의 특징이지요. 항상 힘 있는 자 옆에 붙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 왕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와 그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4-5)
여호람도, 남유다의 아하시야도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자기들이 싸운다고 한들 모두 죽게될 것이라고 판단한 사마리아성의 귀족들은 비밀리에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을 예후에게 전합니다. 그리고 예후가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하지요.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6-7)
예후는 아합의 왕자들 70명의 목숨을 거두라고 합니다. 그들의 머리를 바치라고 하지요. 사마리아 성의 귀족들은 아합의 왕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고 그 머리를 예후에게 바칩니다. 예후는 전투나 전쟁 없이 손쉽게 편지 몇 번 주고 받은 것으로 반역에 성공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왕위를 빼앗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후가 이스라엘 왕이 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계략을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언서에 자주 ‘만군의 여호와’라는 수식어가 등장하지요.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전하여 이르되 그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이르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 어귀에 두라 하고, 이튿날 아침에 그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8-9)
이스르엘 성에 아합의 아들들의 머리가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하루 종일 성 문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그 얼굴들을 볼 것입니다. 끔찍하지요. 아합과 그 가문에 대해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예언들이 성취되었습니다. 이 일을 실행한 예후는 한편으로 자신의 후손들도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후는 자기도 옳은 사람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자기의 주인을 배반하고 여호람을 죽였지요. 자신을 장군으로 세우고 신뢰했던 왕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후는 다윗과 비교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라고 결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예후는 여호람을 죽이고, 사마리아 성의 귀족들과 신하들은 왕자들을 죽이고, 완전히 배신과 배반의 나라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런 나라가 정상적으로 굴러갈까요? 왕이 된다고 한들 그들을 믿고 정치를 바르게 할 수 있을까요? 항상 자기 부하들이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깊은 불신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겠습니까?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10-11)
그래서 예후는 아합의 신하들과 그들과 함께 짝짝꿍이 되어서 악을 행했던 모든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왕자들의 목숨을 거두었던 그자들도 역시 반역의 뿌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제거합니다. 한 번 주군을 배신한 사람이 또 배신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언제든지 등에 칼을 꽂을 자들이지요. 뿐만 아니라 아합과 이세벨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던 바알의 제사장들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예후가 일어나서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2-14)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사마리아 성으로 가는 중에 남유다 아하시아의 형제들이 외할머니인 이세벨과 외숙이 여호람과 외사촌들을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이 맞는지, 예후는 남유다의 왕족들도 모두 잡아 죽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과 이세벨과 연관된 사람들이 거의 모두 제거가 됩니다. 이들이 남유다에서 살아있다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항상 전시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후가 여호람을 죽였기 때문에 복수를 위해서 항상 군대를 준비해 놓겠지요. 예후는 잠재적인 적대세력을 쉽게 제거합니다. 이 왕족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후는 어쩌면 수천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사마리아 성을 접수하러 가는데, 큰 전투없이 남유다의 적들을 제거한 것이지요.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5-17)
아합과 관련된 모든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예후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역자를 한 사람 더 찾아내는데,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입니다. 아합의 세력은 바알 숭배자들과 관련이 깊습니다. 주로 이세벨에 의해서 들어온 시돈의 바알의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사회에 뿌리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고, 정치적으로 아합 가문에 협조하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여호와 신앙을 간직하고 유목생활을 하던 여호나답은 사회 깊이 뿌리 내린 이 바알의 제사장들을 제거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18절부터는 29절까지 어떻게 바알의 제사장들을 이스라엘 무리에서 구별하여서 모이게 만들고 제거했는지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예후가 꾀를 내어서 바알을 위한 큰 제사를 거행하겠으니, 모든 바알의 제사장들은 사마리아 성으로 모이도록 이스라엘 각지에 왕의 명령으로 방(榜)을 붙입니다.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18-20)
바알의 제사장들은 예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모여듭니다. 정말 바알을 잘 섬기는 제사장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왕가에 붙어서 무슨 이득을 얻으려고 생각하는 그런 자들도 있었겠지요. 아니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나 어떤 우상과 다른 신들을 섬기면, 무언가 내게 이득이 될 것 같지요? 사탄의 계략입니다. 그러다가 망합니다. 심판받고 영원히 멸망받습니다. 오직 우리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우리 인간된 도리이고 삶의 목적입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도 예수님을 섬기는 척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예수님보다는 큰 무리 가운데서 자신의 사업이나 인맥을 위해 들어온 가짜 신자도 많습니다. 오히려 진짜는 아무도 없고, 손해만 날 것 같은 곳에 참 성도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같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농촌 교회에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오는 사람 있습니까? 별로 없어요. 이런 데는 정말 하나님만 보고 오는 분들입니다. 손해보겠다고 오는 분들이에요.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옛날에는 이런 데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런 분들이 사라지고 모두 큰 데 가서 편안하게 예배 보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정으로 주님께 예배 드리는 자를 지금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21-24)
바알의 제사장들이 산당에 모였고, 예후가 이들에게 예복을 입힙니다. 그리고 만약에 여호와의 제사장이 있다면 내보내게 하고, 바알의 제사장만 예복을 입혀서 구별하게 합니다. 이들만 제거하려는 것이지요. 종말의 마지막 때에도 이렇게 구별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고 섬기는 자들만 거룩한 예복을 입혀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고, 다른 예복을 입은 사람은 쫓겨나는 것이지요. 예후 시대의 상황과 조금은 다르지만 아무튼 정확하게 구별해서 바알의 제사장 만 산당에 있게 하는데, 출입문에 자기 병사들을 세워서 이들을 한 사람도 살려 두지 못하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예후가 자기 군인들에게 바알 제사장 한 사람이라도 놓치면 그 사람을 대신해서 죽을 것이라고 엄중한 명령을 하지요.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5-27)
바알의 제사장들이 바알에게 번제를 드린 후에, 이 제사장들 모두 목숨을 거둡니다. 이렇게 한 것은 예후가 하나님께 이들을 바치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헤렘 명령을 수행한 것이지요. 완전한 파괴와 파멸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것입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8-31)
예후가 바알의 제사장들은 제거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하지 않았지만, 금송아지 우상은 계속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우상숭배의 죄는 계속되었다는 뜻입니다.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에게 절하는 짓은 계속 했습니다. 그것은 예후가 신앙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로보암1세처럼 종교를 자기의 정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그가 잘한 것이란 아합 가문을 멸망시키는 일을 완벽하게 잘 수행했기 때문에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어서 예후 후손 4대까지 왕위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나서 왕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못나서 하나님께서 그나마 제일 죄가 덜한 사람을 통치자로 세우신 것이지요.
어떤 면에서 정치가들이 대체로 악한 사람들인데, 그중에 가장 그나마 덜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가 선거철에 보면, 찍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다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들인데, 보니까 가장 죄가 없는 사람이 주소지 옮겨서 부동산 투기나 자녀들 학군 좋은 곳으로 위장전입시키는 사람들이더군요. 참 씁쓸합니다. 정말 다윗처럼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실하게 자라는 그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들 가정에서 정말 인재를 잘 길러내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며,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실력을 키워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하고 어리석은 아합의 후손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을 받는 것을 봅니다. 남유다의 아하시야의 형제들까지도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것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보며,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알게 하시고, 죄를 버리고 의를 따르게 하옵소서!
아합과 그의 백성들을 타락시킨 것은 바알의 제사장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거짓 종교와 이단과 사이비들이 많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결국 철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자들과 섞이지 않게 하시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좇아 살아가게 인도하옵소서! 거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많은 생명을 살리고 구원하는 성도가 되게 인도하옵소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이 이 말씀을 경고 삼아 항상 주님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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