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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8장 (1) 히스기야의 등극(登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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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025-12-07 19: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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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theosnlogos.tistory.com/791>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5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1-2)

 

악한 왕이자 분별력이 없는 아하스 왕에게 히스기야 같은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히스기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 아하스는 여호와도 섬겼지만, 큰 오점은 하나님보다 다른 신을 섬겼고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잘못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여호와를 찾았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는 점입니다. 물론, 그것은 아버지의 영향보다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3-4)

 

그가 다른 선대 왕들보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산당(山堂)’을 제거했다는 점입니다. 산당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보다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많았기에 강력한 종교개혁을 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뤄지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 시대가 기원전 1400년대인데, 히스기야는 기원전 716년 정도에 즉위했으니까 약 700년 동안 놋뱀을 우상으로 섬기던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을 보내셔서 많은 사람이 물려 죽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뱀에 물렸던 사람들이 놋으로 만든 뱀을 보고, 독으로 인한 질병이 낫는데, 그 놋뱀 자체가 무슨 치료의 능력이 있는 줄 알고 수백 년간 그 놋뱀 앞에 제사드리는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그 놋뱀을 산산조각 내어 없애 버렸습니다. 그래서 ‘느후스단’이라 번역하면 ‘놋 조각’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참 기뻐하시고 그에게 많은 능력과 권세를 주셔서, 주변의 적들을 제거할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7-8)

 

유다 왕국은 옆구리의 가시처럼 블레셋 사람들이 종종 침략을 해서, 어려움을 당했는데, 히스기야가 다윗 시대처럼, 블레셋의 가사를 침공하여 접수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하스 시절에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신하국을 자처했는데, 앗수르에 대해서도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 모든 것을 열왕기 기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처럼 해석을 했는데, 실제로는 히스기야 왕도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먼저, 히스기야가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메시야처럼, 떠받들게 된 원인은 다윗처럼 여호와의 신앙을 대중들에게 선전했기 때문이고, 주변의 작은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대중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제사장 그룹과 선지자 그룹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신앙이 좋은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열왕기 기자에게도 아주 호평받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5-6)

 

열왕기 기자는 신앙적으로 분열왕국 시대 이후, 최고의 모범적이고 신앙적인 왕으로 히스기야를 평가합니다. 왜 이런 평가를 할 수 있었을까요? 단지 유다 땅에 산당을 제거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좀 더 그 시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예언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는 왕의 행적을 기록한 왕실 관리로서, 웃시야 시대부터 왕 곁에서 신앙적 조언을 했던 사람입니다. 이사야 9장에는 마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가 히스기야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 9:1-2)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가 아직 앗수르 왕에게 사로잡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즉위합니다. 그리고 그의 재위 기간에 북이스라엘은 멸망당합니다. 사마리아 땅, 요단 동편 땅, 북이스라엘 지역이 앗수르의 군사들에 의해서 짓밟힘을 당합니다. 그때 수많은 피난 행렬이 남유다를 향했습니다. 이들을 받아주고, 거두어서 살 곳을 마련한 왕이 히스기야입니다. 그야말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자가 된 것이지요.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사 9:3-5)

 

 

수많은 북이스라엘 난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토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유대 땅에도 난민들을 받아들이지만, 새롭게 영토를 넓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좋지 못한 블레셋 영토를 빼앗아 난민들을 유입시켰던 것입니다. 난민들은 자기들의 땅은 빼앗겼지만, 새로운 영토를 받아 숨통이 트인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6-7)

 

위 말씀은 우리 기독교인들이라면,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연상시키지 않지만, 히스기야 당대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종, 메시야가 바로 히스기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왕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즉위했으며, 당대의 왕은 곧 모든 백성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님’은 아니지요. 그 부분만 빼면, 모든 것이 착각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맞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의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사 9:8-12)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앗수르 군대와 합세하여 공격했던 블레셋에 대한 복수를 히스기야가 이룬 것입니다. 북왕국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도구삼아 그들을 징벌했던 것이고, 아람 왕과 손을 잡았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북왕국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람 나라와 동맹도 깨어지고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였다가 결국 하나님을 찾지 않고 돌아오지 않아 멸망케 되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이 땅이 불타리니 백성은 불에 섶과 같을 것이라 사람이 자기의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오른쪽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왼쪽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사 9:19-21)

 

남유다의 히스기야 시대에 결국 북왕국은 멸망하게 되는데, 아하스 때에 유다와도 전쟁이 있었지만, 마지막은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가까운 지파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서로를 죽이는 내분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런 혼란한 시기 히스기야는 남유다를 이방 나라 앗수르로부터 지켜내는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처음부터 한결같이 의지하고 믿고 신뢰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남쪽의 이집트의 군대를 끌어들여 동맹을 맺어 북쪽에서 내려오는 앗수르 군대를 막으려 했습니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몰래 이집트로 사신을 보내어 원군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8장 9절부터 12절까지의 내용은 17장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13절부터 계속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한 아하스 왕에게 믿음이 있는 히스기야를 태어나게 하시어 왕으로 세우신 사건을 봅니다. 북이스라엘에는 계속해서 악한 왕들이 반역을 일삼고 백성들은 우상과 이방 신에게 빠져, 결국은 멸망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남유다에는 좋은 왕을 세우시어 은혜를 베푸신 것을 봅니다.

 

다윗에게 약속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나 인간 왕은 언제나 허물과 죄가 있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고, 또 온전하지도 못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참 해방과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것을 늘 감사하며 기뻐합니다.

 

성탄절을 앞에 두고 대림절 둘째 주간을 보내고 있는데, 저희들은 다시 오실 주님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기다리며, 주님의 말씀과 언약을 기억하고 주님 뜻대로 살게 인도하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복된 삶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우리의 참 구주되시는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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