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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열왕기하] 25장 (3) 하나님의 심경(心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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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26-03-15 14: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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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셨지만, 끝내 유다의 방백들과 시드기야 왕은 불순종했다가 본인도 그렇고 가족들도 망하고 나라와 민족까지 큰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남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심경은 어떻겠습니까?

 

  • 녹슨 가마의 비유 (겔 24:3-6)

 

 “너는 이 반역하는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가마 하나를 걸라 건 후에 물을 붓고 양 떼에서 한 마리를 골라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 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에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 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피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하나하나 꺼낼지어다.” (겔 24:3-6)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중에 녹슨 가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애워쌓아 파괴하였는데, 그것을 마치 녹슨 가마에 나무를 놓고 불을 피워 그 가마를 끓게 하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녹슨 가마솥은 예루살렘이요. 그 속에 넣은 고기는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주민들입니다. 녹이 슬었다는 것은 죄와 허물로 더러워진 유다를 상징합니다. 

 

 옛날에는 특수한 화학 약품이 없어, 녹을 제거하려고 숯불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달궈진 그릇들에 표면에 있던 녹이 제거되고 깨끗하게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 아무리 불을 달궈도 가마솥이 얼마나 심하게 녹슬었는지 제거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그러한 상황처럼, 하나님께서 아무리 유다의 죄와 허물을 여러 가지 시련과 환란으로 담금질을 하여도 ‘유다의 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완고함과 고집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권면해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유다입니다. 그것은 유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은 죄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버리시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영’을 새롭게 살리어 구원하시는 길을 열어 주시게 되는데, 바로 우리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워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되게 하라. 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피곤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겨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 너의 더러운 것들 중에 음란이 그 하나이니라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하나 네가 깨끗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깨끗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겔 24:10-13)


 

 

 이 비유에 담긴 진리는 인간 스스로가 ‘죄’를 없애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없애려고 계속해서 불을 달궈 봐야 국물만 줄어들고, 고기만 타서 재가 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죄의 문제는 해결이 안 됩니다. 배불러서 죄를 짓는 것 같아, 굶겨 버리면 죄를 안 지을까요?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고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싸우고 다투다가 전쟁까지 벌입니다. 그럼 질병이 생기면 죄를 안 지을까요? 담배 피우다가 암에 걸린 사람을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지켜보면, 항암치료도 받지만, 의사 몰래 담배를 피웁니다. 술 먹어서 알콜 중독자가 된 사람들 술을 끊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입에 술을 댑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더 골초이고 술고래가 된 사람도 많다는 것입니다. 자기 환자들을 보면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자기도 그런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로 멸망하는 유다, 동일하게 모든 인류도 죄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유다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루어질지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고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재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24:14)

 

  • 에스겔 선지자의 아내가 죽음 (겔 24:15-27)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또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굉장히 충격적이고 에스겔에게 있어서는 가슴 아픈 사건이 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겔 24:15-17)

 

 에스겔 선지자도 포로들 가운데 있어 바벨론으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이국 땅에서 의지할 사람이 누굽니까? 가족 아니겠어요? 에스겔에게 있어서 가장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즐거움은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서 아내를 데려가신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하나님 편에서 이스라엘이 바로 ‘아내’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사랑을 쏟고, 애정을 다 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또는 유다)이었는데, 더 이상 하나님이 사랑할 대상이 없어진 것입니다. 물론, 신실하지 못한 아내를 버리고 죽인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집트에서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믿고 따랐던 그 이스라엘은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참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잃고, 마음 껏 슬퍼하지도 못합니다. 장례를 잘 치러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스겔도 자유인의 신분이 아니라, 바벨론의 노예에 불과하니까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위문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슬픔을 삯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너는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겔 24:18-19) 

 

 에스겔은 아침에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받은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날 저녁에 갑자기 아내가 죽어 버립니다. 에스겔이 선지자 역할을 잘 감당했지만, 결국에 돌아온 일은 무엇입니까? 아내가 죽는 비참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아내가 죽게 될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가 함께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도,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듯한 반응입니다. 

 

 공감능력이 떨어진 유다백성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이 죽어나가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 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식을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 성도들이 죽어가는 이웃들, 영혼들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마치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인듯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경을 이렇게 체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내 형제가 죽어가는데, 나는 문제 없다고 평안히 살고 있지 않습니까? 에스겔은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너희가 에스겔이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지 아니하며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패망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겔 24:20-23)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무심하고 무관심한 살아남은 유다 백성들도 동일한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도 이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 없이 망하는 자를 보고도, 그냥 내버려두고 관심을 끄고 산다면, 에스겔의 당한 일을 보고서 아무런 느낌이 없는 주변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는 일은 ‘부득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살기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지만, 예수님처럼, 진실하게 생명을 사랑하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을 본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입니다. 세상은 자기 욕심만을 위해 살지라도, 우리 성도들만큼은 긍휼을 입은 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세워지기 위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 대로 너희가 다 행할지라 이 일이 이루어지면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 24:24)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에스겔이 당한 일처럼, 유다(이스라엘) 신부를 잃은 가슴 아픈 일을 겪으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너무나 사랑하여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거룩하고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끝내 죄와 허물로 타락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유다를 보면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점검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려 십자가를 지셨건만, 아직도 죄와 허물로 가득한 안타까운 모습이 바로 우리들은 아닌 지 생각합니다.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타락하고 망해가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워가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죽어져 가는 영혼들이 주님의 생명을 덧입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감사하며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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