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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데살로니가전서] 짧은 만남, 긴 신앙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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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26-06-03 20:36:42

본문

 

 

 

  •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1)

 

 AD 51년 즘,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만 급히 피신하여 베뢰아 그리고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서 선교했다는 것을 지난 번에 말씀드렸습니다. 고린도에 디모데와 실루아노가 도착하여 바울에게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의 어려움과 말씀에 대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전해 줍니다. 바울이 직접 다시 데살로니가에 갈 수가 없으니까 편지를 써서 권면하고 신앙생활에 대한 지침을 전달합니다. 아마 이 편지를 다시 디모데 편으로 보낸 것으로 보이는데, 3주간의 짧은 가르침과 배움을 가지고는 박해와 환난 속에서 믿음이 바로 설 수 없기에 추가적인 말씀을 전해 줍니다. 

 

 우리 성도들도 생각해 보면, 신앙 년수는 오래 되었지만, 막상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거나 설명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핵심적인 가르침을 이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통해서 다시 한번 점검하고, 복음을 전할 때에 확실한 우리의 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1:2-4)

 

 비록 3주간의 회당 예배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이지만, 경건한 헬라인들이 회심했습니다. 그들에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역사를 언급합니다. 믿음의 이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언제는 믿었다가 좀 쉬었다가 들쑥날쑥한 것이 아니라 참 믿음에는 꾸준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 신앙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신앙은 거짓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이 있으면 ‘인내’합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과 현실 세계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1:5-7)

 

 복음은 단순히 말에만 있지 않습니다. 큰 확신이 따릅니다. 또한 성령께서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 현실 속에 어려움이나 고통이 다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는 것도 똑같이 당하고 한 가지 더 해서 박해와 환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셔서, 이기게 하십니다. 또한, 참 성도는 복음을 전해 준 사도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습니다. 사도적 삶은 기본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나누는 삶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섬기과 희생과 나눔의 삶이지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비록 짧은 시간 복음을 듣고, 사도 바울과 만남을 가졌지만, 바울의 삶을 본받아서 그들도 실천했고 그럼으로써 많은 주위의 성도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8-10)

 

 참 성도는 우상에게서 돌아서서,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깁니다. 양쪽에 다 발을 걸쳐 놓는 것은 아직 바른 믿음과 신앙이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참 복음은 능력으로 모든 거짓과 우상숭배를 버리게 합니다. 그리고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면서. 

 

  • 데살로니가 선교 회상 (2:1-16)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2:1-4)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기 전에 빌립보에서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루디아를 만나 여러 교회를 세웠을 때, 어느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준 이유로 감옥에서 고생도 했고, 유대인들이 바울 선교팀을 쫓아와서 방해하고 심한 핍박으로 인해서 더 빌립보에 머물지 못하고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 항상 잘못된 사상이 들어와서 복음을 듣지 못하게 했는데, 영적으로 보면 사탄의 방해공작입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에도 복음을 전하자, 사탄의 음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변론합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2:5-8)

 

 악한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이 복음 전하는 이유를 무슨 헌금이나 받아서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고 사람들이 불신하게 만듭니다. 사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워서 특별히 구제헌금을 요청하기도 했었지요. 1차 전도 여행 중에. 그러나 바울이나 전도팀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헌금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연히 받아야 할 사례비를 받지 않고,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이단과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입니다. 선교를 무슨 이익이나 어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십자가 은혜를 증거하여 사람들이 멸망받지 않도록 사랑하고 섬기는 것 뿐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2:9-12)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마치 아버지처럼 대했다고 합니다. 무슨 자녀를 통해 무언가 효도를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가르치고, 교훈했다고 합니다. 가족 밖 이웃에 대해서 우리들이 사도 바울처럼은 못 해도, 최소한 자기 가정에서 자녀들은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잘 전하고 본을 보이고 교훈해야 하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2:13-16)

 

 바울이 전한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믿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칭찬과 위로를 합니다. 바울이 동족 유대인들에게 고난과 박해를 받듯이, 데살로니가 인들이 동족 헬라인들에게 동일한 박해와 고난을 받게 되었는데, 믿음으로 극복하고 견디고 있습니다. 참 대견스럽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겠지요. 그래서, 대적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갚으실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 바울의 심정과 편지를 쓴 목적 (2:17-3:13)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2:17-20)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자신이 직접 가서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지만,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이 참 많습니다. 바울이 바쁘기도 하고, 아직도 바울을 잡아서 죽이고자 하는 원수들이 기회를 노리기 때문에 지금은 갈 수 없지만, 가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잘 표현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3:1-3)

 

 바울이 아마도 아테네에 가면서,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파송한 것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3주 밖에 복음을 듣지 못했는데, 그곳의 성도들이 믿음이 세워지기도 전에 무너질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초신자인데, 박해가 너무 일찍 닥치면, 감당할 만한 믿음이 아니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쉽게 배도하고 다시는 기독교로 돌아올 수 없게 될까 염려합니다. 그래서 박해를 이길 수 있는 말씀을 디모데를 통해 전달합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3:4-7)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반드시 핍박과 환란이 닥친하는 내용이었고, 그렇게 진짜 환란이 닥쳤을 때, 믿음으로 견디어 낸 것을 디모데가 바울에게 와서 보고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감사함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담아 편지로 보내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3:8-10)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말씀으로 굳게 섰습니다. 이제는 환란이나 박해가 다가와도 견디고 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역시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3주만에 예수님을 영접한 새신자가 무슨 성경에 대해서 잘 알겠습니까?

 

  • 바울의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1-13)

 

 바울이 편지를 쓰다가 갑자기 기도를 올립니다. 감격해서, 주님께 기도를 올리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도 들으라고 기도를 씁니다. 점점 더 거룩해 지고, 하나님 앞에서 아예 흠이 없는 성도가 되어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 바울의 권면 (4:1-5:2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4:1-8)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을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몇 가지인데, 성도의 거룩함입니다. 세상과 다르게 구별되게 사는 것이지요. 일부일처제로, 깨끗한 부부생활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해치지 말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4:9-12)

 

 형제 사랑과 우애, 그리고 섬김과 나눔이지요. 그리고 성실하게 일해서, 가난함을 벗어나야 합니다. 게을러서 가족 간에도 짐이 되면 안 됩니다. 장애가 있거나 병들었으면 할 수 없지만, 일할 수 있으면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왜곡되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이것이 단정한 삶입니다. 어느 서신에는 사도 바울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 죽음 후의 일어날 사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4:13-18)

 

 믿는 성도가 죽었을 때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바울 사도에게 물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 지침을 주는데, 옛날에는 슬프지 않아도 울어야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울음꾼을 사서라도 장례를 치르곤 했는데, 억지로 슬퍼하거나, 또 너무 진실로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시 부활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 때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입니다. 먼저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그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성도들도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서 주님을 영접케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주님의 재림 시기

 

 그렇다면, 연관된 질문으로 주님은 언제 오시냐고 반문할 수 있지요? 주님은 우리가 모를 때 온다고 합니다. 그러니 항상 깨어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해야 하지요. 그렇다고 잠도 자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주님 오신다고 모든 일을 내팽개치지 말고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성실히 복음을 증거하며 예배 모임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5:1-11)

 

  • 마지막 권면과 끝인사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5:12-28)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지침들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야할 것이 마지막에 있는 27절 말씀입니다. 이 편지를 읽어 주어야 합니다. 초신자든, 좀 오래 믿은 신자든, 늘 주님의 명령을 되새기며, 간직하고 실행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신앙생활을 다시 돌아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게 하옵소서!
주님과 친밀하도록 기도의 생활에 힘쓰게 하시고, 말씀을 경외하고 따르게 하옵소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조명하셔서, 고쳐야 할 부분들을 보게 하시고,

스스로 끊고 버릴 수 있게 인도하옵소서! 복음을 들은 지 얼마되지 않은 이들에게 이 데살로니가서를

읽어 주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해야할 지 모를

때마다 이 편지를 되새기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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