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기도회

[데살로니가후서] 참 종말론적 신앙 권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026-06-10 13:45:41

본문

 

 

  •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1-2)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디모데를 통해서 보냈습니다. 디모데가 갔다 돌아온 뒤, 여러 가지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은 바울은 재차 편지를 써서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요.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사이는 대략 6개월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보내고 나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중에 일부는 예수님의 재림이 수개월 내로 올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임박한 종말론으로 일상 생활을 쉽게 내려놓고, 마냥 기다리면서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를 바로 잡을 권면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바울 사도는 편지를 써서 단정하고, 규칙적이며 바른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합니다.  

 

 1990년 대 초, 대한민국에도 이른 바, 이장림이라고 하는 사람이 성도들을 유혹하여서 다미선교회를 만들었고, 시한부 종말론을 가르쳤습니다. 재림하는 예수님은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온다고 떠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사람에게 갖다 바치고, 직장을 다니던 사람은 회사를 나오고, 학생들은 학교를 무단 결석하는 사태가 벌어졌었습니다. 수많은 방송 미디어 기자들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 가서 지켜 보기도 했습니다. 이때, 어떤 교회도 이단 사이비라고 문제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완전히 기독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분명, 데살로니가전서에도 도둑이 오듯이 예수님의 재림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른다고 했는데, 말씀을 왜곡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성도들은 예수님을 맞을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1:3-5)

 

 그렇다면, 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런 임박한 종말론에 빠지게 될까요? 그것은 현실 생활에서의 고난과 박해가 극심해서 그렇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서, 마음으로나 육체적으로 무너지면, 차라리 빨리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환란 속에서 건져주시기만을 바라게 되지 않겠습니까?

 

 북한 동포들이 노동당에서는 배급을 끊었고, 농사 짓는 것은 다 빼앗가 가고, 밀수할 수 있는 중국 국경이 막히면, 가만히 앉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차라리 남한과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맨날 전쟁의 공포로 김일성 일가가 북한 사람들을 다스렸는데, 그냥 앉아서 죽느니, 남한과 미국과 싸우다 죽겠다고 합니다. 오히려 전쟁을 두려워 한 것은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의 당원들이지요. 전쟁이 나면, 모든 기득권과 속임수로 빼앗아 갔던 모든 재산과 물자가 하루 아침이 다 사라질테니 말입니다. 

 

 지금도 사이비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국민들을 속이고, 이득을 취합니다. 솔직하게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하늘 나라가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좀 없이 살고, 고통이 있다고 해도 잠시 뿐인 것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생기면, 가장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지요. 심판과 영원한 멸망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6-9)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를 억울해 하고, 미움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무슨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닌 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습니까?  사탄에게 속한 자는 당연히 우리를 미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참으로 불쌍한 것은 왜 미운 지도 모르고 미워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악에 매여 있고, 귀신의 영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사슬을 끊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박해를 당해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이런 것은 끊지 못합니다. 

 

 어쨌든, 억울하게 박해를 당하고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는 다 아시고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시고 형벌을 내리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히려 안식을 누리고, 더 이상의 박해와 환난이 없는 곳에서 참 평안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의 결말은 영원한 지옥이며, 한 번 떨어진 지옥불에서 다시 회복될 길은 전혀 없습니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1:10-12)

 

 우리들도 예수님이 아직 재림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필요하고, 서로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더욱 협력하고, 위로하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낙심하지 않고, 박해를 견디며 믿음을 지키고, 바르고 단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종말에 관한 권면 (2:1-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2:1-2)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를 흔들기 위해서 악한 영들과 그들에게 조종을 당하는 사람들이 쓰는 방법은 말과 말씀(편지)과 기도(영)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와 동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의 말이나 성경의 말씀을 부분 부분 편집을 해서 악한 자들의 뜻과 계획대로 사용합니다. 마치 매스컴에서 인터뷰한 내용 중에 편집(어떤 사람들은 악마의 편집이라고 함)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파괴시키는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두려워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멀리하고 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해야 하지만, 지킬 선은 잘 지켜야 하지요. 마음이 흔들리면, 엉뚱한 짓을 하게 됩니다. 전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에 우리가 이용될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2:3-4)

 

 주님께서 오실 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이 주님 곁을 떠날 것입니다.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우리 나라 기독교 인구가 약 400만 명이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떠날 지 모릅니다. 그중에는 천주교로 넘어간 사람들이 한 200만 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배교(背敎)입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같은 신앙을 영위(營爲)하고 있지 않습니다. 거기는 딴집입니다.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 중에 마리아도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모’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냥 마리아입니다. 교황도 신이 아니고, 무슨 성자라고 칭송을 받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악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도나 감독이나 목회자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람 자체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어 보십시오. 완전 쓰레기 같은 구제불능의 한 인간을 위대한 목회자로 회심하게 한 것은 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꾸 사람을 높이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모세도 데려가셨겠습니까? 땅에 모세의 무덤이 남아 있으면 유대인들이 모세의 동상을 세우고, 신처럼 떠받들지 않겠습니까? 우리 개신교도 사도 바울을 너무 치켜 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훌륭한 사도가 맞지만,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예수님이 만나주시고,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높이기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하겠습니다. 

 

 결정적으로 ‘멸망의 아들’, ‘불법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자리를 차지할만큼 아주 위대한 신으로 자신을 포장할 것입니다. 거짓 평화와 거짓 번영을 가져와서 많은 사람들이 속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이 사람에게 넘어가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이것을 ‘미혹’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똑바르게 신앙생활하지 않으면, 이 적그리스도에게 속아서 함께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 자는 그런 역할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2:5-8)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주 급박하게 불법의 세력이 전 세계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악의 세력이 커지고 공고히 되다가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온 세상이 그를 따르기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그 적그리스도를 죽이시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제압하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직 우리 눈 앞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 인간이 그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제거하실 수 있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2:9-12)

 

 적그리스도가 마치 예수님처럼 수많은 기적을 일으킬 것인데, 거짓입니다. 속임수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거기에 다 넘어갑니다. 그 거짓 기적을 믿는 신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배교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런데, 그 배교자들의 특징은 진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말씀은 불순종하는 그런 자들이 결국에는 적그리스도 편에 넘어가서 결국에는 그와 함께 멸망을 당합니다.  

 

  • 주님의 말씀(가르침과 전통)을 따르라 (2:13-17)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13-17)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면서 동시에 편지 속에 기도를 남깁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따라야 할 가르침은 데살로니가 전서에 이미 소개가 되었습니다. 더 잘 지키고 따르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잘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초신자에게는 복음서와 데살로니가 전후서에 나온 내용도 충분합니다.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다른 사람을 세우고, 복음을 더 잘 전하고 선교하기 위해서 신.구약의 말씀들이 모두 유익합니다. 

 

  • 부탁과 당부 (3:1-15)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5)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비록 신앙의 연륜이 짧지만, 바울 사도는 자신과 선교팀을 위해 기도를 요청합니다. 우리들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관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 생활은 공동체 생활입니다. 누구도 홀로 설 수 없기에 성령님께 우리 자신과 교회를 의탁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3:6-9)

 

 교회 안에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면서 일하지 않는 성도들을 책망하고 거리를 두라고 합니다. 바울은 일하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 사례를 받지 않고 일하면서, 자기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일해서 선교비를 마련했습니다. 참 대단한 능력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모든 교역자가 자비량으로 일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하는 본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도 폐를 안 끼치면 좋겠는데, 그럴 능력이 없네요.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3:10-15)

 

 우리 성도들은 남의 짐이 되면 안 됩니다. 나눠주고 베풀 수 있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시고,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드리고 섬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축복기도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3:16-18)

 

 앞에서 바울의 편지를 부분 인용하여서 이상하게 적용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시에 아예 바울의 이름을 도용하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를 막기 위해 데살로니가후서부터는 편지 끝에 친필 싸인을 넣습니다. 또한, 바울의 편지를 인정하지 않고,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확인시키고 권면하는 용도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공동체와 선교사님들과 온 세계 교회에도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종말의 일들을 가르쳐 주시고,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고 기다리지만, 성도로서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성도나 세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하시고, 성실하게 맡은 일을 감당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도움을 받는 교회에서 도움을 주는 교회로 서게 하옵소서! 저희들이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잘 받고, 순종케 하옵소서!     진리를 거스려, 악의 무리에 미혹되지 않게 하소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서로 기도하며, 살피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로그인 회원가입

방문자 집계

  • 오늘 1,206
  • 어제 1,274
  • 최대 6,849
  • 전체 824,769

Copyright © metabible.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