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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고린도전서] 8-11장 우상의 제물 섭취 문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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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26-07-09 04: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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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상의 제물에 연관된 지식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8:1-2)

 

 고린도는 로마의 아가야 주(州)에 주도(主都)로써, 굉징히 많은 이방 신전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고기는 우상의 제물이었던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가령, 제우스 신전에 받쳤던 양고기나 소고기를 시장에서 팝니다. 성도라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필요를 충족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고기들이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것을 어떤 사람은 모르고 먹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에 무슨 악령이 붙는 것도 아니고, 그것에 귀신이 있어서, 그 고기를 먹는 사람이 귀신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갓 믿은 신자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성도가 우상 숭배의 제의에 참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냥 시장에서 고기를 사먹는 것과 우상숭배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우상의 제물에 무언가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두려워하고 떨 수 있습니다. 마치 그 제물에 이방 신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할 소지가 있다면, 먼저 믿은 사람이 초신자들의 오해를 살 만한 행동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믿음이나 지식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고 그들에게 맞춰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덕’이지요. 내 행동이나 신앙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8:3-4)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절제하는 삶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참 신이 없습니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5-7)

 

 오늘날도 온갖 신이 있지요. 알라, 부처, 문선명, 공자, 마리아 등등.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 시대는 로마 황제들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로마 황제는 자신을 살아 있는 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헛소리지요. 우리 북쪽에도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참 지식은 성경 말씀에 기록되었듯,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8:8-10)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좋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아예 이방 신당에 가서 제의에 참여하여 우상숭배를 합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지요.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렇게 할 바에야 아예 고기를 먹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8:11-13)

 

 비단 음식 문제 뿐만 아니라, 신앙의 전통을 세워갈 때 우상숭배 요소가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방향을 고심해야 합니다. 초신자들이 기성 신자들의 행위를 볼 때, 시험에 들고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행동을 삼가해야 합니다. 

 

  • 사도의 권리 주장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바라보는 시각 문제)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9:1-2)

 

 9장은 이제까지 이어져 온 고린도 교회의 내부 문제와 여러 가지 신학적 질문에서 벗어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갑자기 바울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바울에 대해서 음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사례비’를 요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급한 신학을 가지고 교역자 노릇을 했으니, 실력이 없어 금방 고린도 교회를 떠나버렸다는 것이지요. 바울의 사도권을 놓고 바울이 입장을 표명한 데에는 바울의 대적이 바울의 신분이나 자격을 음해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것에 대해서 방어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음해할 때, 주인을 피해 도망 다니는 ‘종’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종종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잘못 들으면 어느 로마 사람의 가신인 듯이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고,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종(?)이었지요.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11제자와 같이 다녔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부분에 대해서 바울은 변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이 났기 때문에 실증적으로는 ‘사도’입니다.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9:3-12)

 

 바울은 자비량으로 일하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수고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사례를 받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척교회는 사례를 정당하게 받지 못하고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롱하거나 매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사례를 받는 목회자들을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적 통념 이상의 사례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나 교회 안밖에서 지탄을 받습니다. 최종 판단이나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겠지만, 복음을 전파하는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9:13-18)

 

 바울이 사례를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은 우선은 이방 사람들에게 ‘돈’ 때문에 이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큰 장애가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권리를 다 쓰지 않고 일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종말에 큰 상을 받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는 최고의 상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9:19-27)

 

 바울이 많은 사람에게 종처럼 굽신거리고, 받아주고 양보하고 용서하고 사랑한 것은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의 부탁을 하나 들어 주면, 그 사람도 미안해서라도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요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교회의 발의 내딛는 것이 전도한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입니다. 뭔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한 번 안 와 보면, 인간관계가 깨질 것 같으니까 마지못해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성도들의 자녀가 그렇습니다. 믿음도 없고 신앙도 없지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부모의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으니까 어릴 때는 따라와 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독립하면, 더 이상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지요. 참 믿음이 없으면. 

 

 

  • 우상숭배에 가담하지 말라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10:1-5)

 

 10장이 내용적으로는 8장 다음에 이어져야 합니다. 모세 시대의 사람들이 이집트로부터 구원을 받았지만, 끝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지금 구원받았다고 믿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경고합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교회의 성도가 천국까지 이르지 못한 예로 들고 있습니다. 다 세례를 받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지만, 우상 숭배하다가 망했습니다. 지금 성도라도 우상 숭배에 가담하면, 동일하게 멸망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0:6-12)

 

 모세 시대 사람들이 미디안의 꾐에 빠져 우상 숭배 했었다가 망했고, 함께 출애굽했던 이방 잡족이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서 상당히 많은 수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출애굽 1세대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 전부 광야에서 죽게 되었지요. 지척에 보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불순종과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그렇게 망했습니다. 우리 후배 세대에게 항상 이 이야기는 경종의 말씀이 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리고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도 역사에 남을 교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10:13-22)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연약한 우리가 넘어질 유혹과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큰 시험과 유혹은 어쩌면 숨겨진 복을 받기 위한 전단계일 수 있습니다. 그 시험을 이긴 자에게 큰 상급을 주십니다. 다니엘이 그랬고, 요셉도 그러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무언가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큰 시련과 시험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걸려 넘어질 것 같은 사람에게 그런 환란을 닥치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

 

  •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책임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0:23-11:1)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서 교제할 때, 식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혹 그들이 우상의 제물을 내놓고 접대를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을 선교하기 위해서 혹 문화적으로 좀 다르더라도 일단은 잘 수용하고, 함께 있는 동료의 믿음이 약할 때는 이방인의 선교보다 연약한 믿음을 세워주는 것이 우선이니까, 고기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게 잘 판단해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 머리에 쓰는 두건 문제 (교회 전통 문제)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1:2-16)

 

 천주교는 아직도 여성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는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사촌 형님의 결혼식 미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여성들은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쓰더군요. 최근에는 제가 미사에 참여해 본 일이 없어서 아직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런 전통이 사라져서, 여성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 지는 논란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성이 머리에 모자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제가 청년 때에는 모자를 벗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관련 구절이 11장 4절을 드는데, 일관성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실제 생활이나 예식에 적용할 때, 좋은 전통을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는 아직도 우상과 우상의 문화가 많습니다. 우리가 잘 분별하여서 우상숭배에는 빠지지 말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문화를 창조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잘 깨달아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의 진리를 잘 전하여, 주님의 복을 받게 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바울은 여러 이방인들과 동족 유대인들에게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어 여러 가지 음해를 당했습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전하다가 오해와 미움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고 진리로 무장하게 하시고, 착하고 아름다운 행실로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도 아름다운 전통이 계승되기를 원합니다. 혹시 잘못된 인습이 있다면, 주님의 말씀을 거울 삼아 고치게 하시고,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지키고 만들어 가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고, 점점 변화되어 거룩해 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명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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