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기도회

[고린도전서] 14장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방언과 예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026-07-22 14:45:30

본문

 

 <이미지 출처 https://brunch.co.kr/@smileman/2340>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4:1)

 

 여기서 ‘예언’은 미래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설교’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목회자가 있지만,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성도들이 목사 노릇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열심히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위한 것도 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함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2)

 

 바울은 예언과 방언을 비교하고 있는데, 방언은 ‘영’의 대화로써 하나님만 알아 듣습니다. 그런데, 방언하는 본인도 모르고, 방언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무슨 내용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방언 통역의 은사도 필요합니다. 아무튼 방언은 방언하는 사람의 영에게 속해서 본인에게 이롭습니다. 방언의 내용자체는 영과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에 비밀이지요.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3-5)

 

 방언은 통역이 가능한 언어이지만, 외국어처럼 대부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무익합니다. 그러나 통역하는 사람이 해석해 주면 놀라운 영적인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있어 최고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성경을 잘 알아서, 대중들에게 잘 설명해 주면, 혹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은 그 말씀을 듣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그리고 동일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도, 더 믿음을 공고히 하고, 몰랐던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6-12)

 

 방언이나 예언(설교)이나 알아 듣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시 제 설교가 어렵습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예배 후에나 교제 시간에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르고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방언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언도 좋지만, 방언이 교회에 유익이 되려면 함께 통역의 은사도 간구하여 받으라고 권합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3-19)

 

 사도 바울도 방언을 했다고 여기 고백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예언(설교)을 했지, 방언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방언도 유익하고 예언도 유익하지만,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방언보다는 예언이 필요합니다. 통역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방언을 하고 옆에서 통역을 하면 됩니다. 그때는 방언도 함께 듣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요. 알아 듣게 되니까, 하나님께 감사한 일에는 함께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20-25)

 

 교회 모임에 성도들이 모두 방언으로 떠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들이 모두 미쳤나?’ 하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방언도 표적 중 하나입니다. 성령 받았다는. 그런데, 방언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합니다. 관주를 찾아보면, 이사야서 28장 11절에 하나님께서 다른 방언(외국어)을 하는 외국 사람들을 보내도,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못 알아 들으니까. 못 알아 듣는데, 어떻게 깨닫고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잘 알아 듣도록 예언(설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에게도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교회가 있고 수많은 목회자가 있지 않습니까? 유투브나 소셜미디어에서 얼마나 많은 목회자, 신학생들이 활약(?)하는 지 모릅니다. 물론, 이단들도 활용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설교와 강의와 찬양과 예배가 인터넷을 통해서 퍼지는 것도 더 많은 복음의 통로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26-30)

 

 하나님의 말씀도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통로가 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이나 주관이 들어갈 염려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도 들어보면, 예화와 개인적인 체험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서 잘못이나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 교사들의 말씀의 왜곡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분별해야 합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31-33a)

 

 오늘날에는 노회와 총회가 있어서 각각 치리하고 재판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단 연구소도 있지요. 그래서 지교회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하면, 노회나 총회에 고발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사상이나 이론을 제시하면, 당연히 제재를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항상 말씀을 넘어서는 설교를 하면 안 됩니다.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3b-36)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한동안 한국교회에서는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허락합니다. 이 고린도전서 14장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주로 방언을 말하며, 스스로 신령하다고 생각하고 교만에 빠진 사람들이 여성이 많았습니다. 방언도 하고, 주님께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첫째, 성경을 무시합니다. 둘째, 교회의 가르침보다 자신이 받은 계시가 더 우월하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귀신의 계시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성도들이 예언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교회 안에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의 은사를 받은 목회자의 가르침 안에서 설교를 듣는 입장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당시 여성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문맹이 높은데, 성경에도 없는 말을 입으로 내뱉으면서 주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잠잠하고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고, 또 성경을 아는 남편의 도움도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정규적인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았다면, 여성도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구약에도 수많은 여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단지 성차별적인 이유가 아니라, 당시 사회 문화적 관습이 있기 때문에 사회 질서를 위해서라도 교회가 너무 파격적으로 앞서 나가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러한 의미로 했던 말씀이지, 여성이 지적이나 영적으로 하등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37-40)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은사를 세상에서처럼 계급을 나누는 어떤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은사는 모두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에게도 유익하고 새로온 초신자나 태신자에게도 유익하며, 기존 성도들에게도 유익합니다. 서로의 약점을 덮어주고, 서로의 짐을 지어주는 사랑의 수단이 되고, 위로와 격려의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약한 성도를 위해서 더 중보적 기도하고,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도울 수 있습니다. 항상 공동체를 생각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만약,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방언도 구하고 통변의 은사도 구하십시오. 예언의 은사는 먼저 가르침을 잘 받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누구에게나 예언의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이 은사를 가지고 가정과 사회와 이웃을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신실하고 거룩한 주님의 종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은사를 주셨던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도 은사를 주옵소서!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시되, 기본적으로 사랑의 은사를 더하시고, 방언의 은사도 주셔서, 항상 영으로 주님과 교제하고 소통하게 하옵소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통변의 은사도 허락하시고, 누구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예언의 은사도 주옵소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말씀을 읽을 때마다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말씀을 우리의 형제자매와 이웃에게 전하게 하시고, 모두의 유익을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합니다. 주신 은사로 능력을 행하게 하시고, 항상 겸손히 주님을 높이며,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교회로 소문나며 부흥과 성장을 이루게 하옵소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로그인 회원가입

방문자 집계

  • 오늘 1,720
  • 어제 1,588
  • 최대 6,849
  • 전체 887,372

Copyright © metabible.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