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1-8)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다 아는 내용이고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믿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이 성도들의 믿음에 의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가장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 가장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속이는 말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질 하고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한다’ 라는 것입니다. 또, 그 뒤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기절했는데 죽은 줄 알고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회복하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부활했다고 속인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거짓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려는 시도들이 도처에서 나왔습니다. 이성적으로 이런 말들이 죽은 사람이 부활했다고 하는 것보다 더 믿을 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하지 않았다면,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어 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시신을 확인하고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아리마대 요셉에게 시신을 내어 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과 수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뵈었다고 증언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9-11)
만약에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째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다가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꾸어서,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다니겠습니까? 그 모든 부귀 영화와 권세를 포기하고서. 사도 바울의 삶은 그 자체로써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확실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2-13)
고린도 교회 성도 가운데 부활을 믿지 않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부활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두개파 사람들입니다. 유대인 중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중에 사두개파의 어떤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교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거꾸로 논증을 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4-15)
만약,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언하는 바울과 모든 사도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도 예수님을 다시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16-19)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이 없다면, 바울이나 모든 성도들이 거짓 복음을 믿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단 사이비에 빠진 불쌍하고 가련한 영혼이지요.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는 다 빼앗겼고, 세상에서는 매장당한 사람들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라든지,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이라든지, 야이로의 회당장의 딸이라든지 죽었다가 다시 살린 일이 없습니까?
구약의 성경에서도 사마리아 성에서 수넴 여인의 아들을 엘리사가 살린 일도 있고 시돈 땅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엘리야가 살린 일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이지요. 물론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산 것은 아니지만, 성경 안에 여러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두란노 서원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은 청년을 기도로 다시 살린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면 이 땅에서의 죽음도 깨뜨리고 다시 사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0-22)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다시 죽음이 없습니다. 앞에 구약성경 속에 있었던 부활은 다시 인생의 삶을 살다가 자연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얻으신 부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에게 동일한 약속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들도 부활하여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3-26)
영생 얻는 부활은 순서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예수님이고, 그 다음은 과거의 죽었던 구약의 성도들, 그리고 예수님 이후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내려 오실 때, 모든 통치자들과 권세자들, 예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세상과 나라와 민족을 심판하시고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온 나라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없애기 때문에 더 이상 성도들에게 죽음이 없게 됩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7-28)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위에 계신 분입니다. 참 어려운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별개의 신이 아닙니다. 한 분입니다. 그런데, 위치가 있습니다. 어려운 신학용어가 등장하지요. 성삼위 하나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세 분인 듯하지만, 위치만 있을 뿐, 한 분입니다. 삼위일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이 전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29-34)
바울 시대에는 세례를 금방 베풀 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교제하며 배움 주엥 있는 성도들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질병이나 사건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된 성도들이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을 믿음 안에 죽었으니 세례를 베풀었던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마치 병상에서 죽기 전에 세례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 이 땅에서의 세례를 받지 못해서 혹시나 하는 염려 때문인데, 그 세례 주는 일을 금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물세례를 받았고 받지 않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령의 인침을 받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 세례가 아주 중요한 의식이지요. 구원은 물세례를 받았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세례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튼 성도가 잘못된 사상에 흔들려서, 믿음을 배도하고 복음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과 성령 안에서 바르게 하나님을 배워가고 알아가야 합니다. 아름다운 삶과 행실로 복음을 증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의 몸은 어떻게 되는가?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5-38)
어떤 성도들이 그렇다면 죽은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변화되는 지 질문합니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그런 궁금증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우리 모두는 일종의 알맹이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땅에 뿌려진 씨앗만 보았지, 어떤 열매로 자라는지 알지 못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씨앗은 땅 속에서 썪어져서 발아해서 뿌리가 나고 줄기와 잎이 자라고 그 다음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변화될 지 모릅니다. 아이의 모습일지, 청년의 모습일지, 노인의 모습일지. 솔직히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 아실 뿐이지요.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39-44)
육의 몸이 있듯이, 영의 몸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육신의 몸의 모습은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몸이 썪고 새로운 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지요. 너의 모습도 나의 모습도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몸일 것입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45-49)
우리가 부활하여 받게 될 몸은 아마도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모습으로 영광스러운 하늘의 형상일 것입니다. 할렐루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50-58)
그래서, 바울 사도의 권면은 쓸데없이 복음을 훼손하는 어리석은 사상에 휘둘리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을 부분적으로 알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많고, 혹시 누가 더 다른 새로운 것을 알려 줄까 싶어 이런 저런 말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말씀에 더욱 집중해야지, 엉뚱한 잘못된 사상에 빠지면, 믿음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먼저 주신 신구약의 말씀에 마음을 두고, 열심히 배우고, 확실한 것에 열과 성을 다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부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어떻게 부활이 다가올지 어떻게 우리의 몸이 변화할 지 참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영광의 광체로 빛나듯 우리도 하늘의 형상을 갖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교묘하게 들어와 우리를 이간질 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잘못된 이단들과 사이비를 걸러 낼 수 있는 참 지식과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 나라가 저희들을 통해 이 땅에서 이뤄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오해없이 순전함으로 받아 아름다운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의 소망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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