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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마태복음] 7장 비판, 황금률, 좁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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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608회 작성일 2024-07-18 11: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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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탄이나 그의 하수인들이 사람을 종으로 삼는 것은 ‘죄’의 권세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남의 약점을 가지고 권세를 행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죄’의 결과로 죽음이 오는데, 사탄은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듭니다. 물론, 여러 가지 재물이나 권력이나 쾌락을 이용해서 사람을 넘어뜨리기도 하지만, 사탄의 가장 큰 무기는 ‘죄’입니다. ‘죄’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자기말을 듣도록 만듭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어떻게 종교 권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자기들의 성경 해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율법을 어겼노라’ 하면서, 비판과 정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조종했습니다. 예를 들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성은 붙들려서 왔는데, 함께 간음했던 남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남성은 어떻게 이 심판의 자리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많은 사두개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면, 일반 백성들이 가져온 양과 소는 흠이 있다고 돌려 보내고, 자신들과 결탁했던 장사치들의 양과 소를 3~4배 비싼 값을 주고 사서 하나님께 제사드리게 했습니다. 

 

 모든 선과 악의 프레임을 씌우는데, 종교 권력자들이 탁월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저들의 죄악을 드러내시면서, 누구나 자기만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죄’로 빠진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렇게 교만하게 심판의 자리에 앉는 것을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종교 권력으로 프레임을 씌우지 않지만, 윤리와 도덕, 인권과 같은 것으로 프레임을 씌워서 자기들의 쫓게 만드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잘못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항상 비판하는 자들이 자기는 ‘선’이고 자기와 다른 주장이나 말을 하면 ‘악’으로 규정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바르게 분별을 하되 우리가 심판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우리도 똑같이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1-2)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어떠한 잘못도 비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행했던 그런 모습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 대로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깊이 살펴야 합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3-5)

 

 유대의 장로의 전통에는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으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 자체는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청결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건강을 위해서도 손을 씻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보다 정말 음식이 필요한 자, 이를 테면, 구걸하는 거지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죄가 아닙니까? 씻지 않았으니까 줄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고 해 보세요. 이웃 사랑하라신 하나님의 명령은 어기면서, 사람들의 계명은 절대적으로 따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씻지 않는 문제는 작은 티에 불과한 것이고, 이웃 사랑하지 않는 마음은 큰 들보 같은 문제임을 지적하십니다. 우리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자기는 거의 죄가 없고 잘못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은 그렇게도 잘 봅니다. 또 많은 부분 그렇게 비판하는 것이 실제로 맞기도 합니다. 그렇게 남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도덕적 우위에 선 사람처럼 교만하면, 그 교만이 우리 자신을 파멸로 이끕니다. 

 

 예수님은 통칭해서 ‘외식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속 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지적질하기 전에 내 행동과 말을 조심해서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6)

 

 예수님 당시에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사실은 옳은 사람들이 아니고, 물고 뜯는 이리처럼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아무리 설명하고 가르치려고 해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실 더 위험한 사람들이 목회자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지, 자신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가르치려고만 듭니다. 그래서 옆에서 누가 아무리 이야기 해도 자기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적용할 수 있는 사람처럼 판단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단들이나 사이비들이 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성도들은 복음을 바르게 알고 적용하고 실천하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목회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성경도 잘 모르면서. 목회자의 설교가 자꾸 틀렸다고 하면서 가르치려고 드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단 사이비에게 어떤 말을 들었다든지, 자기 혼자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았다고 주제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언하는 자는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도 강단에서 헛소리를 하면, 목회 자격을 정지시켜야 합니다. 제가 설교문을 홈페이지에 계속 개제하는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제가 이제까지 받은 말씀이 혹시 잘못되었거나 수정해야 되는 것이 있는지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지요. 그래서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올립니다. 혹시 노회나 다른 선배 목사님들이 제가 어떻게 목회를 하고 어떻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바르게 하고 있는지 살펴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빼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과 바른 복음만 선포되어야 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

 

 먼저는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 골방은 예시로 든 것이고, 예수님은 한적한 산에 오르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꼭 산이 아니라도 골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좋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나 믿음의 선배들은 새벽 시간을 택하였습니다. 장소 보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한 것이지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7-11)

 

 이 말씀은 보통 ‘간구’할 때,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7-8절의 말씀을. 그러나 누가복음에 보면, ‘좋은 것’을 ‘성령’으로 풀어 놓았습니다. 즉, 우리가 간구하고 구하고 찾는 것이 먼저는 ‘하나님 나라’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핵심은 ‘성령’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에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실 외인이요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놀랍게도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긴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지만, 그냥 믿었다고 하는 껍데기에 안주하면 안 됩니다. 

 

 우리 나라는 혼인 신고만 하면, 법적으로 부부입니다. 그런데, 부부간에 사랑하고 진실로 한몸이 되는 것은 금방 이뤄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껍데기는 성도인데, 진짜 성도답게 되는 것은 우리가 ‘성화’되어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기도생활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부어 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도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집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버지를 닮도록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2)

 

 이 한 구절을 따로 떼어내서 보통은 신약의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데로 너도 상대를 대접하라고 이해합니다. 사실 앞부분의 간구에서 이어져 온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까? ‘네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어떻게 대접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지만, 당시에 많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심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제사장들과 그들에게 속한 사두개인들조차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붙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이고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비비 꼬아서 해석하는 자들은 진리를 외면할 뿐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간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에 상달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한 길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 또는 좁은 길이라고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3-15)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의 비유를 하십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밖에서 돌로 임시 우리를 만들고 양들을 우리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목자는 그 입구에서 스스로 문이 되어 다른 맹수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목자가 인정한 자기 양만을 이 우리 안으로 들여 보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의 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는 ‘좁은 문’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3절과 14절에는 예수님과 대비되는 거짓 선지자들을 나타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나 사이비들은 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서기관들과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이 거짓 선지자였고, 백성들을 잡아 먹는 사나운 이리와 같은 자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이끄시는 참 목자요 진리입니다. 

 

 다른 사상이나 다른 복음은 모두 조심하고 배척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메시야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16-20)

 

 예수님께 속한 일군과 악한 사탄에게 속한 자들을 어떻게 우리가 구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보라고 하십니다. 참 포도나무에서 참 포도열매가 맺히듯이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생명의 열매, 진실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맺힙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탐욕으로 빼앗고 속이고 해서 결국은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가 목회자만 자꾸 부유해 지고, 성도들은 점점 망하고 가난해 지고 악해지면 그 교회를 한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목회자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이 윤택해지고, 비록 재산이 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하고, 이웃 사랑할 줄 알고, 하나님을 섬기듯이 교회를 섬기고 예배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면 그곳에 좋은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점점 거룩해지고, 선한 사역에 힘쓰고, 자기 영광을 구하기 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 그러한 교회는 바른 목회자가 있는 것입니다. 

 

 꼭 목회자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냥 평범해도 성도들이 항상 말씀 안에 살려고 애쓰고 희생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면, 그 교회 공동체 안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목회자와 거룩하게 성화되는 교우들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 세상의 교회는 온전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허물이 있고,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기도와 말씀에 힘쓰고, 성도를 돌아보고 살피며, 전도하고 봉사하는 그런 교회. 발전하고 자라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1-23)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나 세상 끝날에 우리 모두가 예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이 때, 나는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전혀 모르겠다 하시며, 천국 밖으로 쫓아낼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은사를 받은 자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주님의 일을 했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허락되지 않은 주님의 능력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판결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고, 불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불법 때문에 예수님께 버림을 받고, 쫓겨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슨 일들을 했다고 자랑하기 보다,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주님께서 시키지도 않은 불법을 행한 일은 없는지 늘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4-27) 

 

 예수님의 결론적 비유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모두 자기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디에 집을 지을 것입니까? 이 세상 멸망하는 땅에, 영원히 거할 줄로 모든 인생을 건 사람은 무너지는 집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에는 이 땅이 마지막에는 불로 심판을 받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집을 짓는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에 집을 짓는 사람은 영원히 거할 처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하신 아버지를 닮아가야 할 텐데, 우리는 욕심과 탐욕에 젖어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먼저 성령님의 충만함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고, 내 뜻과 계획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속여 취하고 빼앗고 노략하려는 거짓 선지자들과 선생들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을 취하는 자들을 따르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우리 교회가 주님을 잘 따르므로 우리가 점점 거룩해 지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들을 거두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모든 인생길의 기초와 기둥을 삼게 하시고, 세상의 욕심과 정욕을 따라 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 향락문화에 젖어 음란과 탐욕에 떠내려 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드시고, 바르게 인도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주님의 음성만을 듣고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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