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기도회

[마태복음] 16장 표적 논쟁과 베드로의 신앙고백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95회 작성일 2024-10-03 06:23:04

본문

 <베드로의 신앙고백>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1)

 

 예수님 시대에는 유대인들 사회에서 중요한 종교 종파가 3개가 있습니다. 둘은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바리새파는 ‘분리된 자’란 의미인데, 일반적인 유대교 신앙에서 더욱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경건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종파의 사람들은 모세오경 외에 예언서와 장로들의 유전까지 받아들여 율법을 확실하게 지키려고 했고, 초창기에는 많은 유대인들과 제사장들까지도 지지를 받고, 종교지도자로서 칭송을 받게 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 약 3만 명 정도가 살았는데, 약 6천 명이 이 무리에 들었을 정도입니다. 

 

 반면, 사두개파는 제사장 '사독의 사람들'이란 뜻으로 주로 제사장과 그 가족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제사장 가문과 집안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세오경만 인정했습니다. 이들은 성전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성전세와 환전 수익을 통한 막대한 부를 이용한 유대사회의 정치력을 장악합니다. 유대 자치회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구성원들이 대다수가 사두개파일 정도입니다. 일부의 바리새파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바리새파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를 달리해서 거의 반대적인 성향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여당 야당처럼 파벌을 이뤘지요.

 

 그런데, 이들에게 공공의 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함께 모의하여 유대 사회에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논쟁과 선동과 박해를 일삼게 됩니다. 

 

 1절에도, 이들이 예수님께 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증거를 내 놓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까지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수많은 사람을 먹이신 것을 듣고 보았음에도 또 다른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2)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언어로 다시 그들이 표적을 보면서, 또 다른 증거를 요구한다고 비판하십니다. 즉, 하늘의 해와 구름을 보면서 날씨의 맑을지, 비가 올지 예상을 하면서, 자기들의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일하시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함을 지적하십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온갖 과학적인 데이터들로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를 관찰하고 예상하는 것은 잘 하지만, 영적으로는 지금 우리들이 거의 맹인이 되다시피 되었습니다. 점점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거나 구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종말은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이 말세입니다. 이 말세의 끝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천 년 왕국시대가 있고 그 시대가 끝이나면, 지구의 완전한 종말과 하나님의 대심판이 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4)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한 마디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을 반대하고, 제거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지, 정말 예수님께 배우고자, 모르는 것을 알고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추구하는 맘몬신을 섬기는 자들이기에 음란하다고 하십니다. 

 

 어찌보면,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항상 돈욕심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고 그것을 구하는 모습이라면, 우리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우리가 기도하면서, 기적을 바라고 요구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마지막 표적을 보여 주시는데, 그것이 ‘요나의 표적’입니다. 이 요나의 표적은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요나의 선포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될 것을 말합니다. 여기 마태복음에는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니느웨로 가라고 했을 때, 불순종했다가 바다 물고기 밥이 되지 않습니까? 그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있다가 물고기가 토할 때, 밖으로 나와 살게 되었듯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을 비유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예수님이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적’입니다. 우리가 악할지라도 우리를 회개케 하시기 위해서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중동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수 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이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과거 2천 전에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예배드리는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귀한 시간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기도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벌써, 하나님의 분명한 표적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보지도 못했으면서, 성경의 말씀을 듣고 혹은 읽고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벌써 하나님의 기적이자 표적(sign)입니다.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5-7)

 

 예수님께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자들은 떡 광주리를 챙기지 못한 것을 두고 서로 의논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이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항상 이 땅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 삶의 문제만을 가지고 염려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염려하시고, 중보하시는 것은 본질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지 않고, 이런 저런 이단 사이비 사기꾼 목자의 음성에 우리가 귀를 기울일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8-10)

 

 예수님께서 누룩에 대해서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은 먹을 음식을 두고 말씀하시는 줄 오해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해석하면, 충분히 세속적인 뜻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태복음 7장 7절 같은 말씀이지요. 그저 무엇이든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다 열릴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상 사람들이나 믿음의 사람들조차도 그저 무조건 ‘할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이 땅의 문제에 그 말씀을 적용하려 합니다.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11-12)

 

 오늘날에도 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온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저 예레미야 같은 이스라엘의 예언자 중에 하나로 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이지요. 오늘날 이슬람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다른 종교도 동일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천주교에서 예수님께 직접 나아가면 거절을 받고,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하면 이뤄진다고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기도를 올리게끔 유도합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이지요. 

 

 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가 오늘날의 대표적인 누룩들입니다. 이미 신학교에도 만연되어 있고, 일부 대형교회 목사도 이 누룩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복음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이론과 사상이 바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입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3-14)

 

 예수님께서 거의 3년 동안 제자들과 지내시면서, 공생애의 사역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실 때에 제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십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인데, 가이사랴 빌립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 ‘바니아스’(Banius)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곳은 가나안 시대부터 바알 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로마시대에는 판 신(Pan God)을 섬겨서, ‘판의 땅’의 의미로 ‘파니야스’라고 불렀습니다. ‘바니아스’는 ‘파니야스’에서 ‘파’의 ‘P’ 발음을 못하는 아랍인들이 ‘B’로 발음하여 바니아스로 굳어진 것입니다. 이곳은 판 신뿐만 아니라 로마의 온갖 잡신들을 섬기는 '만신전(萬神傳)'인 있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은 주전 20년 아우구스투스 황제(Caesar Augustus)가 헤롯 빌립에게 주었고 빌립왕은 이곳에 흰 대리석으로 신전을 지어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쳤습니다. 헤롯 빌립은 자신이 황제에게 바치는 도시라는 뜻으로 도시명을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지었습니다. 예수 당시에 이 도시는 헤롯 빌립의 통치 수도였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5)

 

 이런 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신들을 아는 식으로 어떤 지식이나 교리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고백을 듣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존적인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성령 앞에, 그리고 교회 앞에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믿고 따르고 있는지 분명한 신앙고백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

 

 이제 곧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잡히시고 고난과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데, 제자들이 과연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때에도 여전히 바른 신앙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12명의 제자들을 대표해서, 아니 온 성도들을 대표해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곧 주(큐리오스-로마 황제가 큐리오스가 아니고)시며, 그리스도(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메시야 구원자)시고, 살아 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하나님, 참 신)이십니다 라고 바른 인식과 믿음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7-18)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참 복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이렇게 알 수도 없고, 고백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신앙 고백 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이 교회가 진정한 교회이고,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어떤 지옥의 권세가 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교회의 공동체를 보호하셔서, 이 공동체의 무리 중에 한 사람도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없이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임을 예수님께서 천명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19-20)

 

 여기 천국 열쇠를 베드로에게 준 것으로 믿는 것이 ‘천주교’입니다. 우리와는 다르죠. 로만 카톨릭, 천주교가 베드로를 1대 교황이라고 하고 그 후계자들을 2대, 3대, … 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기초한 것이지, 무슨 베드로에게 단독으로 성도들을 천국에 보낼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것처럼 믿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근거는 18장 18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그러니까, 천국 열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권세를 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것이지, 베드로 개인 한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1-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 매여 있는 온 인류를 구원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탄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첫 사람 아담이 죽음을 가져온 저주와 심판의 인류의 운명을 바꾸십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왕’이 되실 줄 알았는데, 그 기대와 희망이 다 사라지게 되니까, 그렇게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안 된다고 항변합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3-24)

 

 예수님의 길을 막는 것은 ‘사탄’의 일이지요. 지금 베드로가 자신의 인간적인 바램과 소원들이 깨어지게 되자, 사탄처럼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지 않으면,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욕망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는데,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니라, 사탄이 원하는 뜻대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길을 가려면, 자기 목숨을 버릴 각오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십자가는 대체로 예수님처럼 큰 댓가를 치르는 것은 아니지요. 물론, 12 제자들이 요한 빼고는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를 합니다만, 우리들은 예수님을 전하다가 미움을 받는 정도입니다. 때로는 박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성경에 보면, 박해를 피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잡혀서 순교할 때 순교를 하게 되더라도, 일부러 악의 소굴로 들어가서 순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5)

 

  그런 박해 때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잠시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순교할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6-27)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이 아마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상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기 말씀에 따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28) 

 

 죽기 전에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신 것을 보게 될 사람은 ‘요한’일 것입니다. 그 왕권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는 요한계시록에서 자세히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상이 가득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참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맘몬과 우상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주님만을 따르며, 바른 신앙고백을 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주님의 교회 공동체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시고, 이단과 사이비 사상으로부터 진리를 수호하게 하옵소서! 우리 비봉중앙교회가 이 비봉면에서 참 주인이신 주님을 증거하며,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잘 지기 원합니다.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르며, 세상의 영광과 부귀가 없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의 눈이 떠지게 하옵소서! 훗날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할 때에, 저희들도 주님의 백성으로 천군천사들 앞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듣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감사하며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로그인 회원가입

방문자 집계

  • 오늘 26
  • 어제 230
  • 최대 1,086
  • 전체 48,928

Copyright © metabible.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