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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마태복음] 21장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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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08회 작성일 2024-11-07 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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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1-2)

 

 이제 거의 예수님의 일행은 예루살렘 성 근처에 왔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참조하시면,

 

 

벳바게에서 성전까지는 약 2km 정도 남았습니다. 성인 걸음으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데, 제자들을 보내시며 어린 나귀 새끼 한 마리를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나귀 주인과 약속된 것도 아닌 데, 어떻게 순순히 주인이 내 줄주 알고 이렇게 하신 것일까요?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3)

 

 만약 나귀 주인이,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하고 믿으면, 내어 드리겠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일까지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4-5)

 

 그러니까 제자들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자기를 ‘주’라고 인정하고 믿음으로 나귀를 내어 드릴 사람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거나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듯이 보이지만,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있고, 주님은 그들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진실로 ‘주’로 믿고, 주님께서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달라고 할 때에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마음과 자세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가랴 9장 9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렇게 예언이 되어 있고, 예수님은 그대로 순종하십니다. 사실, 왕이라면, ‘주’라면 당시의 로마 황제들은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입성을 했을 것입니다. 말도 아니요, 나귀는 보통 짐꾼처럼 쓰이던 것인데, 예수님이 이 부정한 동물 위에 타시는 것도 뜻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같지 않은 부정한 동물에게도 섬김을 받으시는 모습이 아닙니까? 저는 우리 같은 이방인도 곧 예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살게 될 것이란 어떤 메시지로 생각됩니다. 또, 어차피 말도 아니고 나귀라면, 우리 같으면 차라리 걸어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자고 했을 텐데,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과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니다 .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6-8)

 

 제자들이 예수님의 심부름을 잘 하고서, 보니까 안장이 없습니다. 사실 안장은 말에게나 있는 것이고, 보통 나귀면 멍에를 씌울 텐데, 아직 새끼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 하나가 자기 겉옷을 나귀새끼 등에 씌웁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앉으시도록.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위에 앉으셔서 오시는 모습을 보고, 백성들이 따라합니다. 나귀새끼 등은 좁으니까, 길바닥에 나귀가 지나가는 길에 자기 겉옷을 펴서, 레드 카펫(?)처럼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 센스가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나 감람나무 가지를 잘라서 길에 펴지요. 종려나무 가지는 당대 로마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신(Nike), 니케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잎은 평화의 신(Pax), 팍스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이 바로 승리의 주요, 평화의 왕임을 암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지요.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9)

 

 무리들이 예수님을 외칩니다. “호쉬~ 아나!” , ‘여호와여 이제 구하옵나니, 구원하여 주옵소서!’ 합니다.  로마의 압제에 시달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침입니다. ‘다윗의 자손’ 하는 것은 그 옛날 다윗 시대처럼, 온 세상을 이스라엘이 호령하던 옛 역사를 이뤄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외치니, 예루살렘의 많은 종교지도자와 관리들이 소동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에 누가 들어오길래,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열광을 하는지 묻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10-11)

 

 창세 이후로 선지자가 이렇게 환영을 받은 일이 없거든요. 성전에 들어오셔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장사꾼들의 상을 둘러 엎으신 일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2-13)

 

 성전에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정말 과격하게 행동하십니다. 정말 개혁이 필요한 곳은 성전이었지요. 세상의 정치나 경제가 잘못되어도 큰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영혼이 잘못되면 영원히 지옥에 가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성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변질되어 있거나 타락되면, 거기서부터 개혁이 필요합니다. 

 

 제사장은 일반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여러 가지 흠이 있다고 돌려 보내고, 자기와 거래한 곳의 상인들에게서 양과 비둘기 같은 제물을 사게 만듭니다. 일반 시장이나 자기 집에서 길렀던 제물들은 헐값에 이 상인들에게 넘기고 이 상인들은 다른 백성에게 2~3배의 비싸게 되팔게 됩니다. 일부의 커미션을 제사장과 나누고, 이렇게 종교가 타락해 있었던 것이 예수님 당시의 문제였습니다. 

 

 그런 자들을 예수님께서 ‘강도’라고 비유하셨고, 소나 양이나 비둘기 같은 제물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회개하는 심령과 겸손하게 자복하는 영혼입니다. 그래서 이런 제물이 없더라도 주님의 전에 와서 진심을 담아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4)

 

  맹인과 지체 장애인들이 돈이 없이 성전에 나와도 예수님은 고쳐 주시고 긍휼을 베푸십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재물이 있고, 마땅히 감사의 예물을 주님께 드려야 하겠지만, 없어도 주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있으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 하면 안 되겠지만, 없다고 해서 주님께 나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나 성전의 상인들처럼 중간에 가로채는 이런 강도들이 문제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5-17)

 

 대제사장들 하니까 ‘안나스’ 하고 ‘가야바’를 말합니다. 사위와 장인 관계이지요. 원래 대제사장은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원래 사독의 후손 가운데 나와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서 로마 황제가 세운 대제사장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종신으로 임직하는 것이 아니라 임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 또 다른 대제사장을 세우는데, 안나스가 자기 사위를 세운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시기, 질투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심령이 깨끗해서 그런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 지르는데, 그 소리가 못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보고, 아이들의 입을 닫게 하라는 투로 이야기 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시편의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아이들이 바르게 보고 있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다시 예루살렘 성 밖에 베다니에 가십니다. 거기에 누가 있습니까?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지요? 나사로도 있고 거기서 하룻밤을 주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침도 못 드시고 일찍 나오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아침을 신세지지 않으려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18-19)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에서 먼저 열리는 무화과 열매(‘파게’라고 함)를 기대하셨는데, 이 나무가 그런 열매가 없습니다. 봄에 열리는 이 열매를 따고 좀 시간이 지나 가을에 제대로 된 열매가 열리는데, 상품성 있는 나중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처음 무화과 열매를 따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화과 주인들이 노동자를 구해서 첫 열매를 따게 하는 것보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 열매를 따 먹게 하는 것이 돈도 절약되기 때문에 허락합니다. 속담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서 아침도 못 드시고 나와서 작은 무화과 열매를 따서 먹으려고 해도 그런 열매도 없으시니 이 무화과 나무를 예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이나 사역을 하셨지만, 그렇게 의미있는 회개와 순종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는 보지 못했고, 오히려 이방인 중에 몇이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지요.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0-22)

 

 예수님은 이 말라 죽은 무화과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기도의 교훈’을 주십니다.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을 것이니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본질적으로 열매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참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산 옮기기를 예로 드신 것을 보고, ‘임야’를 사서 토지 투기로 대박을 바라고 기도하는 분이 있는데, 그런 의미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을 바르게 적용해야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생명의 열매와 간구하는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열매 맺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심판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3-26)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선포하시니까,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붙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권위로 이렇게 말씀을 선포하는지 말입니다. 자기들 외에는 성전에서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른 바, 권위 논쟁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것을 반문하시며 그들은 어떻게 보는 지 묻습니다. 대제사장들이나 백성의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백성들의 여론을 의식하면서, 자기들의 권세와 권력만을 탐하는 악한 자들임을 드러내십니다. 꼭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이지요.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28-32)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백성의 장로들을 불순종한 맏아들에 비유하면서, 오히려 회개하고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을 따른 둘째 아들, 세리와 창녀 같은 죄인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종교 세력들이 더욱 예수님에 대해서 악감정을 품게 됩니다.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33-40)

 

 예수님은 이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세력들을 악한 포도밭 소작농으로 비유하면서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끔찍한 십자가 사건을 예언(豫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예수님을 존대하고 그리스도로 영접하기) 넌지시 알려 주시지만, 그들의 눈이 이미 어두워져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게 되지요.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1)

 

 하나님께서 악한 소작농들에게 어떻게 심판하실 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지만, 정작 이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실 지 본인들이 고백하면서, 그렇게 밖에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도 알면서 죄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끝을, 불행을 알면서 늘 그렇게 밖에 행동을 못하는 지.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와 함께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42-46)

 

 아직 더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말씀이 있어서 당장 붙잡혀서 고초를 당하지 않지만,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뤄집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열매맺는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주님 안에 머물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은혜로 아름다운 열매들을 많이 맺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자신의 나귀지만 주께서 쓰시겠다고 했을 때에 기꺼이 내어 드린 나귀 주인처럼,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마땅히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고 승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을 우리 모두가 따르게 하옵소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 주님 앞에 칭찬받는 신실한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혹여라도 악한 종이 되지 않게 하시고, 권면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서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소망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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