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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마가복음] 7장 정결례 논쟁,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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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40회 작성일 2025-02-19 12: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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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1-2)

 

 어디를 가나 다른 사람들을 지적하고 정죄함으로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런 부류이지요. 예수님 곁에서 무언가 흠을 잡으려고 했지만 없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서 자신들의 관습과 문화와 다른 점을 찾아내어 지적질을 하게 됩니다. 제자들의 손이 부정한 데 씻지 않은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부정하게 되는 일은 4가지 정도입니다. 시체나 죽은 동물에 접촉하면 부정하게 여겨졌고,  율법에 의해 금지된 음식을 만지거나 섭취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또 월경 중인 여성과의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특정 질병이나 피부병에 걸린 사람과의 접촉되면 부정하게 됩니다. 

 

 부정하게 되었다고 해서 계속 굶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장로들은 부정하게 된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규례를 만들었는데, 그 배경을 3,4절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3-4)

 

 혹시, 의도치 않게 부정하게 되었을 수가 있으니까 항상, 음식을 먹기 전에 물로 씻는 것입니다. 사람만 씻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담는 식기나 그릇, 컵과 수저 등도 씻은 뒤에 음식과 음료를 담는 것입니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5-7)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고 손을 씻게 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종교지도자들의 미움과 시기, 질투를 받게 되지요. 예수님은 한 말씀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사실을 지적하십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큰 문제점들을 보지 않고, 아주 사소한 문제를 걸고 넘어집니다.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 것이 대단히 거룩한 일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 위에 종교 권력을 가지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함으로 자신들의 말을 유다 백성들이 고분고분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손을 씻고 음식을 먹으면, 아무래도 질병에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육신에 유익이 있을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적 교만과 위선의 사람들을 한마디로 ‘외식’한다고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겉치레만 하나님 앞에 의인인 척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말이나 습관이나 규례를 만들어서 마치 하나님의 율법처럼  사람들이 조종하려고 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8-13)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식사할 겨를도 없이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얼마나 시장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시비를 걸면서, 드시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예를 들었지만,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계신데, 빨리 접대를 해야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방해를 합니다. 

 

 하나님께 바쳤으면, 부모님을 공궤하지 않아도 된다고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자신의 교훈으로 율법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고르반’ 문제인데, 부모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음식이나 물질 등을 하나님께 드렸으니, 부모님의 몫이나 부모님의 것일지라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비슷한 예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도 등장합니다.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자신이 부정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서 강도만나서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칩니다. 언뜻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부정한 몸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없어 그냥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최선을 다해 살려 보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묵인하는 것도 어쩌면 소극적인 살인입니다.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자신들의 전통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요.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4-16)

 

 예수님은 음식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더럽히거나 깨끗케 하거나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교훈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비유를 듣고도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는 척하면서 넘어가지 않고, 예수님께 묻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전해질 때, 알아 듣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밝히 풀어서 알게 하시니까 명확하게 우리도 알게 됩니다.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7-23)

 

 우리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럽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정말 여러 가지들이 사람을 타락시킵니다. 이런 생각을 버리려면, 좋은 생각, 밝은 생각, 아름다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되새기는 것입니다.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빈 컵을 놓고 질문합니다.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기가 들어있다. 이 컵에서 공기를 빼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조용히 답을 기다립니다. 선생님이 물을 컵에 따르면서, “이 컵의 공기를 빼내고 물을 넣으면 공기는 빠지고 물컵이 된다. 만약, 커피를 부으면, 공기는 빠지고 커피잔이 된다.” 하면서, “너희는 이 컵과 같다. 좋은 생각을 담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위대한 생각을 품으면,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24-30)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역에 가셨습니다. 수로보니게(Syro-Phenicia)는 '수리아'와 '베니게'라는 단어가 합쳐진 지명으로, 두로와 시돈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수리아 서쪽의 베니게라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가나안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은 가나안 여자이기도 하고, 그리스 사람이기도 합니다. 본래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지역에 잘 가시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여기에 나옵니다. 수로보니게 지역의 한 이름모를 그리스 여인이 나아와 간청합니다. 자기 딸이 귀신이 들려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소문을 들으니까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며, 무슨 병이든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이방인들과 잘 상종하지 않는 유대인이신 예수님께 염치불구하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방 지역에 계시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여인에게 말로 큰 모욕을 줍니다. 

 

 “개들(애완견)에게 자녀의 떡을 줄 수 없다!”

 

 얼마나 모욕적입니까? 이방인들을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개나 돼지 같이 여겼습니다. 그런 말을 예수님께서 하실 때에 제자들은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예수님의 말과 같은 생각을 품었을 것입니다. ‘자녀의 떡’은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 구원을 상징합니다. 이방 사람에게 줄 수 없다고 하시지만, 정말 예수님께서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일부러 두로 지역에 오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해 그 지역에 복음을 주시려는 계획이셨습니다. 

 

 이 여인은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예수님을 원망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맞받아 치면서 예수님을 감동시킵니다. 

 

 “주님! 옳습니다만 개들도 상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자기를 개처럼 여길지라도 자기 딸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이지요.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들여도 응답이 없고, 거절을 당한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가 모욕을 당하고, 어려움에 처할 때 원망하는 마음도 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 딸을 사랑하는 마음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계속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면서, 그 여인의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의심하지 말고, 예수님께 나아와 매어 달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부정적인 생각을 떨어 버리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다른 대안을 찾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31-37)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갈릴리 호수의 귀 먹고 말 더듬는 자 같은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들리게 하옵소서! 말씀을 읽지만, 내 뜻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며, 예수님을 전하게 하옵소서!  

 

 죄인된 우리, 용서하시고 자녀 삼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는 더럽고 추한 죄가 가득합니다. 우리 마음에 죄를 품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입으로 나오게 하시고, 읊조리는 가운데, 진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관습이나 어떤 문화나 전통보다 하나님 말씀을 우선하게 하시고, 헛된 마음으로 예배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다가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기도 드리고 감사함으로 구할 것을 아뢰게 하옵소서! 주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찬양과 경배드리게 하옵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사랑과 믿음을 닮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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