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1-2)
예수님께서 마지막 대업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점점 더 시험거리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대적들은 예수님과 당시 정치 지배층과 원수 관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자기들의 손을 대지 않고 예수님을 제거하면 최고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당시 헤롯 안디바는 자기 아내를 버리고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취했습니다. 그 때문에 세례 요한도 죽임을 당했는데, 비슷하게 예수님도 엮어서 죽이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 문화를 보면, 이혼은 여성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생존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용어도 ‘버린다’고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린다’라고 표현합니다. 오늘날은 ‘헤어진다’, ‘이별한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요. 그 당시는 여성들이 사회진출이 쉽지 않았고, 남편에게 버림(?)을 당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해 집니다. 하루 아침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집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특유의 화법으로 질문을 통해서 바리새인들과 율법을 알고 있던 유대 백성들에게 정답을 제시하시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3-9)
예수님은 즉답을 피하시고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유대 백성들이 최고로 권위를 두고 있는 모세의 율법에는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 묻지요. 그래서 율법에는 이혼증서를 써 주고 버리기를 허락했다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권위가 있는 메시야, 하나님으로서 다시 율법을 고쳐 주십니다. 단순히 그 문장에 매이지 않고, 본래 그 율법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모세가 그렇게 명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에 아내를 때리거나 못살게 굴어서 죽이는 것보다 살려서 보내 주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남편이 아내에게 맞고 사는 시대가 되어서 그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지만, 아내가 완악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헤로디아를 보세요. 요한이 비판을 한다고 그 딸을 시켜서 남편이 살인을 저지르게 합니다. 아마, 남편 빌립보다 헤롯 안디바가 더 큰 나라를 차지할 것 같으니까 헤로디아가 오히려 남편을 버리고 형부를 유혹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예수님은 부부는 한 몸이 되었는데, 어떻게 나눌 수 있겠느냐며,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나눌 수 없고, 나눈다면 간음한 것으로 계명을 어긴 것이 되니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십니다.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래서 이혼을 하더라도 생전에는 다른 이성이 그 언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육체가 둘이고, 여전히 둘로 돌아다니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안에서는 한 몸으로 보십니다.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10-12)
예수님과 제자들만 다시 있을 때, 제자들이 아까 대답을 다시 묻습니다. 전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내나 자식이나 부모나 버리면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던 예수님이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하시니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내를 버리는 이유는 다른 이성 때문이고, 즉 욕망과 간음의 죄 때문에 이혼하는 것을 다시 설명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13-16)
개인적으로 그냥 지역교회를 하기보다는 ‘아이들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이 아이들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사람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와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간접적으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그런 교회. 다툼과 시기 질투가 가득한 위계가 있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교회가 아니라, 정말 단순하게 예배하고, 친교하고 함께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는 ‘아이들교회’.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17-19)
이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서 부자이면서 관원이고 젊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물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 예수님 앞에 꿇어 앉아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 참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꿰뚫어 보십니다. 이 청년은 매우 율법적으로 생활을 해서, 모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영생’을 얻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가 있었지요. 젊어서 건강과 부귀 영화까지 모두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란 것이 아쉬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마지막 퍼즐과도 같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방법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율법을 매우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한 가지만 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있게 이 모든 것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왔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0-22)
예수님은 마지막 10번째 계명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너무나 가진 것이 많아서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놀라서 예수님께 묻지요. 그 당시 부자나 높은 지위를 얻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젊은 시기에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그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3-26)
예수님의 본의는 사람의 무슨 행위나 착한 행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정할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아직 세상에 오시기 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가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지, 사람의 의지나 무슨 행동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27-30)
영생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때로는 물질적인 손해, 인간관계의 단절, 여러 가지 환란과 고난을 겪을지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확실히 약속하십니다.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전혀 복음에 대해서 들어본 일이 없고 고립되어서 살다가 죽은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혹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드물고 거의 없는 일이고, 예수님 이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자로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고, 자녀삼으셔서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31)
누가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될지 모르고, 또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지위를 가질 누릴 지는 하나님 앞에 서 봐야 알게 될 것입니다. 주를 위해 희생하고 충성한 사람들이 천국에서 영광을 받고 더 많은 것을 누릴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2-34)
예수님께서 점점 더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고난을 당하고 죽을 지 알려 주십니다. 제자들은 애써 외면하지요. 아마도 ‘설마~.’ 하면서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두 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계속 말씀하시니까, 훗날 제자들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자꾸 반복하고 읽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도우셔서, 생각나고 기억나게 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도록 도우십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35-45)
제자들 중에는 곧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단도직입적으로 큰 자리를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지요. 여기에 베드로도 껴서 항상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곧 고난을 받고 죽으신다고 하는데, 이들의 머릿 속에는 자기들의 바램들이 가득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형제들의 요구에도 분노하시거나 짜증내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을 얻을 수 있도록 정답을 알려 주시지요. 예수님처럼 영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다 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지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자가 됩니다. 그 동생인 요한은 순교하지 않고 끝까지 초대교회를 돌보며, 마지막 하나님의 말씀인 요한 계시록을 남기게 됩니다.
시각장애인 바디매오를 고치심(42-52)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46-52)
예수님과 제자들은 여리고까지 오셨습니다. 갈릴리로부터 사마리아 지역도 지나 요단 동편쪽도 들렀다가 여리고에 오게 되는데, 마지막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오시면서도,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말씀을 내게 유리하게 해석하여서 나의 죄와 욕망을 합리화하려는 악한 수단으로 적용하려는 욕심을 버리게 하옵소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주님의 말씀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과 용납하는 마음을 닮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죄를 담당하시려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하며,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주님을 따라가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받은 구원을 늘 기뻐하며,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복음을 위해 살게 하시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갖지 못했을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그것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거룩한 성도로서 살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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