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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누가복음] 3장 세례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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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3회 작성일 2025-05-21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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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C. 4 레반트 지역의 분할 통치, 출처: 나무위키 사이트>

 

 

  • 세례 요한의 등장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1-2)

 

 세례 요한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를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치하 15년이라고 먼저 언급한다는 것은 누가복음을 듣는 대상이 우선 로마인들과 이방인들에게 확장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목적이면,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던 때라고 간략하게 언급할 수 있을 텐데, 총독과 로마 황제를 언급한 것은 이미 이 누가복음은 주로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이방인을 대상으로 여김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로 원래는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 드루실라가 황제와 결혼하게 되어서 양자(B.C. 4)로 되었다가 황제가 된(AD 14) 사람이지요. 티베리우스 황제 제15년이면 AD 28년이 됩니다. 이때 유대 총독이 빌라도(Pontius Pilatus, 폰티우스 필라투스) 였고, 유대인들의 기준으로는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갈릴리의 영주로 헤롯이 나오는데, 헤롯 안디바(안티파스)이고 헤롯 대왕의 아들입니다. 위 지도를 참조하면, 예수님 당시의 분봉 왕의 통치 지역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지역은 원래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AD 6년 그의 폭정으로 총독이 다스리도록 교체가 됩니다. 유대 속주보다 시리아 속주가 더 커서, 엄밀하게 따지면 빌라도가 총독으로 직위를 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기도 하는데, 아무튼 시리아의 총독이 더 지위가 높은 것입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3-6)

 

 요한이 요단 강 부근에서 활동합니다.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는 강이 필요한데, 요단 강이 그 쓰임에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물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옛날에는 강가에서 빨래하거나 가축을 먹이기 위해서 목자들이 많이 이용을 했겠지요. 아무튼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요한의 외침은 ‘메시야’를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죄를 자복하고 버리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맞을 준비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한 데는 요한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심판의 주로서, 죄인들을 벌주고, 심판하여 죽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상태에서는 로마를 심판할 때, 함께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게 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지요. 

 

 예언서 이사야의 예언에는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자가 있을 것인데, ‘소리’라고 단순히 비유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이지요. 광야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씀을 전하는데, 핵심은 ‘회개’입니다. 그런데, 골짜기와 산들의 비유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입니다. 높은 산은 지위나 명예나 권력을 가진 고위층을 의미하고, 골짜기는 하층 계급을 의미합니다. 고관대작이나 저 밑의 노예나 종이나 하나님의 메시야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동등하고 평등한 사람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메시야가 오면, 모든 백성은 평등해지고, 오직 메시야만 높이고 경배를 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본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오셨지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바르게 인지할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천사에 의해 혹은 환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와 같은 한 사람,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소개받게 됩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7-8)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들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닌, 요식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저 물세례를 받았다고 회개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에 상응하는 말과 행동과 삶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지요.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으면서 회개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선민 사상에 사로잡혀 있는데, 요한은 하나님의 교회를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보존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우실 것을 강조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9-10)

 

 요한의 외침을 듣고,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회개하는 방법을 묻습니다. 무엇이 구체적으로 잘못인지 잘 모르면, 이렇게 정직하게 묻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제대로 된 회개가 되지 않지요.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1)

 

 요한은 이웃의 대한 사랑을 예로 듭니다.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서 나눌 수 있으면 나누는 태도입니다. 없는 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 중에 더 가까이는 형제 중에 누가 곤궁한지 잘 살피는 것이 진정한 회개의 열매입니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2-13)

 

 요한의 가르침은 세리들에게도 지침을 줍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를 대신헤서 일정량의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식으로 입찰 경쟁을 통해서 더 많은 세금을 바칠 수 있는 유대인 중에서 세리를 뽑아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주로써, 세금을 바쳐야 하는데, 식민지 백성으로 감당해야 할 세금만 거두라고 합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요. 세리들은 더 많이 거두어서 일정부분 자신들의 소득으로 삼아야 하는데, 동포들의 고혈을 짜내지 말고, 바칠 것만 부과하라고 하니 힘든 결단을 해야 합니다. 

 

 공무(公務)를 위해서 세금을 거두는 것은 정당하지만, 정복국가 로마를 위해서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요한이 친로마주의자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국가나 사회 정치적인 면으로 다스려지는 것 또한 하나님의 손 안에서 허락된 것입니다. 

 

 복음이 반국가적이거나 반사회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각자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면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4-15)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 중에는 군인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방 사람인 로마 군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군인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군대 조직의 힘이나, 살상 무기를 가지고 위협해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는 짓을 하지 말고 받는 월급에 만족하고 일하라는 것이 군인들에게 전하는 요한의 메시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이런 가르침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율법에 타당하기 때문에 요한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리스도인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가 계시받은 내용을 전합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16-20)

 

 요한을 사람들이 많이 따르자, 정치적으로도 요주의 인물이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그리스도로 옹립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면 어찌하나 하는 염려가 권력자들에게 있겠지요.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하여 아내를 삼습니다. 오늘날에도 구설수에 오를 불륜인데,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희생되는데, 그렇게 잡혀서 죽기 전에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으심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1-22)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묘사합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강림했다고 합니다. 누가는 ‘기도’를 강조하지요.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제자들도 오로지 기도에 전념했을 때, 약속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 예수님의 족보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3)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과는 다르게 요셉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상향식 족보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시작되는 것과 달리, 육신의 아버지 요셉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헬리는 실제로 요셉이 아니라 어머니 마리아의 부친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약간은 선민 의식을 가지고 아브라함부터 언급됩니다. 그러나 누가는 마지막에 하나님까지 조상이 올라가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아버지까지 도달하여 예수님의 족보는 온 인류의 구원자로서 어떤 혈통의 문제를 따지지 않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래에서 모든 인류는 형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 구원의 역사와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강조한 반면, 누가는 구속사의 모든 계획을 설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 출처: 낮은교회>

 

 왜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마태복음과 다르게 했을까요? 예레미야서의 말씀 중에 솔로몬의 후손인 여고니야에 대한 예언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고니야가 대가 끊어지고 평생동안 형통하지 못할 것이며 그의 자손 중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없을 것이라 말씀했습니다(렘 22:30). 따라서 누가는 솔로몬의 후손인 요셉의 족보가 아닌 나단의 후손인 마리아(창3:15, 여자의 후손)의 족보로 예수님의 탄생을 소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게 이어져 내려와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섣불리 판단하여 불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하는 것이 요한의 사명이었지만 악한 통치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명은 멈추지 않습니다.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증거해야 할 사명은 오늘날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사명을 감당케 하옵소서!

 

 요한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 잘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복음은 반사회적이거나 반체제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복음을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답게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 맡긴 일을 담당하며, 직업과 업무에 맞게 이웃을 섬기게 하옵소서! 

 

 주님의 족보를 통해서 신실하신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셨고, 이루신 분임을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이뤄짐을 믿고 신실하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저희들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명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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