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쉐마교육연구원>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1-52)
복음서의 대부분의 기록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누가복음도 9장 51절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조명합니다. 예수님은 거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지경을 피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것은 사마리아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종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마15:24)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하신 것일 뿐, 이방인은 상대하기도 싫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찾아가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동일하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마도 야고보와 요한을 먼저 사마리아의 한 마을로 보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을 상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도 배척을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3)
누가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배척한 이유가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자신들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심산이지요. 모세 시대에 이곳에 제단을 만들어 축복을 선포했던 곳입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4-56)
분노했던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달라’는 저주를 퍼부으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 꾸짖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도, 민족적인 감정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성품이 모세의 율법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 마을에서 벗어나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누가는 사마리아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생략하고 넘어가는데, 요한복음에서 살펴 보면, 수가 성의 한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를 지날 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외되고 버림 받은 한 여성을 만나 주시고, 그에게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시고, 복음을 전하셔서, 그곳 마을 사람들이 주님께 나와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쉽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척이나 안타깝게 여기셨겠지만,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당장에 심판을 받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다른 전도자를 통해서, 전도하게 하시며,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의 시간을 기다리시며 인내하십니다.
누가복음에는 또 기록이 안 되었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별명을 붙여 주십니다.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뜻인데, 얼마나 성질을 내고 욕을 했으니까 이런 별명을 주셨겠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보면, 이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완전히 성품이 변합니다. 요한은 별명이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무슨 입만 열면, ‘서로 사랑합시다.’ 하고 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제일 처음 순교한 스데반이 아마도 사마리아 출신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초대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분으로 안타깝게 가장 먼저 돌아 맞아 순교했지만, 이 분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회심하게 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원래 가장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였는데, 그도 예수님을 만나서 이방인의 사도로 가장 크게 쓰임을 받게 되지요.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7-5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당장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면, 예루살렘에서 한 자리, 아니 그보다 못할지라도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온갖 좋은 말을 하면서, 마치 충성을 다할 것처럼 말을 하지만,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오히려 헐벗음과 굶주림이 있다는 것을 돌려 말씀하지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낙심하고 예수님을 떠납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따르면 무언가 큰 재물이나 지위나 명예를 얻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신학교에 오는 사람 가운데 더러 있습니다. 대개는 큰 교회 출신입니다. 자신도 그런 큰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려는 부푼 꿈을 안고 찾아오지요. 그런데 90% 이상은 교인 30명도 되지 않는 작은 교회를 개척하거나 선교를 가거나 가정교회를 합니다. 그러다가 낙심이 되어서 목회를 그만두지요. 소명을 받지 않은 사람은 목회를 하면 안 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59-60)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한 사람에게 자신을 따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이 ‘소명’입니다. 그런데, 이 소명받은 사람이 예수님의 부름에 긍정적으로 대답은 하지만,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먼저 아버지 죽음을 장사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 조건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의 부름에는 ‘조건’이 붙으면 안 됩니다. 가장 바른 응답은 즉시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의 부름에 당장 사표를 쓰고 따르지 않습니까? 이런 결단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런데,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장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식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을 소망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여러 가지 행사나 예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61-62)
예수님은 심지어, 가족보다도 더 먼저 주님을 소중히 여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과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기 가족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최우선순위에 두면, 때로는 예수님 때문에 가족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참 제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족보다도 소중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땅에서 제 아무리 가족을 사랑한다고 한 들, 천국이 없다면 그 가족들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천국이 있고 그 다음에 이 땅이 있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다가 영원히 지옥에서 헤어져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나라에 전쟁이 났습니다. 누군가는 가족들을 대신해 총을 잡고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희생하지 않으면, 나라를 빼앗기게 되고, 가족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가족들을 사랑한다면,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도 가장 우선순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십자가의 길을 결단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길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와 이방인인 우리들에게까지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기시 위한 길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때로는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해 주님을 배척하고 대적하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우리들이 중간에서 역할을 잘 하게 하시고, 우리들로 인해서 가족과 이웃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주님의 온유한 성품과 자비와 긍휼을 닮게 하시고, 우리들도 야고보와 요한같이 변화되어 사랑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들도, 주님을 따르도록 부르셨사오니, 아멘으로 응답하며, 신실하게 주님을 모시고 살게 하시고, 이 복음의 여정에 우리를 사용하시되, 많은 열매를 얻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을 최고로 모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군사로 사용하옵소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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