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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누가복음] 14장 수종병 치유와 자리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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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2회 작성일 2025-08-20 12: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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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수종병 환자를 고치신 그리스도, 출처: 인터넷국민일보 >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1-2)

 

 예수님은 부자나 빈자나 높은 자나 낮은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십니다. 바리새인 중에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아시면서도 초대에 응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자꾸 모함하고, 고발할 조건들을 찾는 대적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식사 자리에 가셨는데, 그들 가운데 수종병 (水腫病; dropsy)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그 병은 복부에 물이 차서 심장, 신장, 간장 등을 압박하고 몸이 붓는 병이라고 합니다. 이 누가복음을 쓴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이렇게 병명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3-4) 

 

 예수님은 율법교사들, 바리새인들의 계획을 아시고 먼저 묻습니다. 안식일에 병고침이 합당한지를. 예수님께서 긍휼이 많으시기 때문에 먼저 병을 고치시면, 그것을 가지고 율법 논쟁을 하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니까,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안 된다고 해서 예수님이 병자를 안 고치면, 소송하고 논쟁할 꺼리가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 합당하다고 말하면, 예수님께서 고쳐 줘도 된다고 했으니 고쳐 주겠다고 하면 예수님께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되지요. 그러니 잠자코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의 생각을 아심에도 더 기다리지 않으시고, 그 수종병 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하시고 욕 먹고, 고난을 당하십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길을 좇아야 합니다. 손해를 보고,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위협과 보복을 당해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을 배워 선을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사상을 바로잡으려고 또한 가르치십니다. 물론, 머리가 굳어지고 탐심과 죄악이 뿌리깊게 내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듣고도 회개할 생각이 없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6-7)

 

 우리 사람들의 ‘죄’는 나와 타인을 구분해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아들이 죽어가면 안식일이라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당연히 안식일을 범할 지라도 생명을 살리려고 하겠지요. 또한 ‘소’도 얼마나 값비싼 가축입니까? 농사를 지을 때도 10 사람 몫은 하는 일꾼(?) 아닙니까? 당시 일반 가정에서 소가 있다면, 아마도 가장 비싼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소중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소를 구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자식이나 남의 소가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일 하지 말라고 그냥 죽더라도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합니까? 그런데, 유대 사회에서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한 마리로 위선자들이지요. 성경적인 용어로는 ‘외식하는 자’입니다. 원어의 뜻으로는 ‘가면을 쓴 사람’이지요. 

 

 탐욕이 가득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 마치 자신이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존귀한 듯, 죄를 짓지 않는 듯이 행동하지만, 말과 행동이 위선적이지요. 오늘날, 저나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현대적인 용어로는 ‘내로남불’이지요.  

 

 예수님은 전혀 다릅니다. 진정으로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며, 자신을 희생하시며 자비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7-9)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예수님을 청해 식사를 대접할 때, 예수님만을 초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동료 바리새인들을 초대했지요. 그 중에는 더러 제사장이나 율법학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높게 여겨서, 자리의 상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초청한 자가 예수님을 가장 높은 상석에 앉으시라고 한 것이 아닌 듯 보입니다. 예수님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곳에 당당하게 앉은 사람들. 예수님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지나쳐서 자기가 더 높은 사람인 냥 했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초청을 받아 자리에 앉을 때, 스스로 높은 자리에 가서 앉지 말라고 교훈하십니다. 단지 이 자리에 관한 교훈이 그저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라는 교훈이겠습니까? 마치 예수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가장 높은 자리에 모셔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자리, 가장 섬겨야 할 자리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부모나 형제가, 어떤 사람은 물질이 가장 귀한 것으로 대접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땅히 그 자리는 ‘예수님’을 모셔야 하는 자리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생명까지도 희생해서 바쳐야 한다면,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0)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주님의 나라로 초청하셨습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구원을 맨 나중에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자리를 위해서 다른 이들을 그 자리에 채워야 합니다. 그 초청의 자리에 여러분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부터 시작해서 먼 이웃까지 자리에 채우고, 보내고 넣고 한 뒤에 맨 마지막에 여러분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즉, 살아있는 동안 주 이름 증거하면서,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 이웃을 위해서 애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잔치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가장 귀한 자리, 예수님과 마주 대하며, 가장 상석에서 잔지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를 높여 주십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1)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누구를 초대하며, 누구를 대접해야 하는지 누구를 전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도 주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나 우리 사회나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대상들을 지목하십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12-14)

 

 우리들이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가난하고, 연약하며 힘없는 사람들, 장애인들, 내게 보답할 수 없는 사람들을 초정하고 대접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돌아보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기로 오셨을 때, 왕자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귀족 집안의 자녀로 오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실 때부터 가난하고 힘없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오셨고, 가장 시골 촌 동네 같은 나사렛에서 자라시면서, 갈릴리에서 주로 많은 사역을 하시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곳에 얼마나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들과 배고픈 사람들이 많았는지, 예수님을 쫓아다닌 사람들이 5천 명, 4천 명씩입니다. 그것도 남자들만 세었을 때 그렇고 여자들, 아이들까지 하면,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얻어 먹은 사람들만 수 만명이나 됩니다. 예수님께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병자들, 죄인들, 가난한 사람들이지요. 

 

 이렇게 지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챙긴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말과 행동이 일치하시지요. 우리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본받는다면, 진실로 예수님의 사람이 될 것이며, 주님 나라에서 아주 존귀하게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나라에서 재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참 예수님의 작은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부활 때에 아버지께 사랑 받으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정을 받고, 존귀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입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도 배에 욕심과 탐욕이 가득찼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고치실 줄 믿습니다.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물질을 주님 나라 위해, 생명을 살리는데 헌신할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을 위해서 손해를 감당케 하시고, 주님처럼 희생하여 이 땅에 주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쓰임받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 속 가장 귀한 자리는 주님이 거하셔야 합니다. 그 자리에 ‘나’나 다른 사람이나 탐욕이 자리잡게 하지 못하게 하시며,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들이 주님 나라  위해서 잔치 자리를 채우는 일꾼되기를 원합니다. 교만치 말게 하시고 낮아져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온전히 닮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잘 배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존귀케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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