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기도회

[누가복음] 19장 삭개오와 므나 비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025-10-15 13:20:17

본문

<이미지출처, https://otfreak.tistory.com/939>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2)

 

 여리고는 요단 나루터와 사해 북단,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어 동서·남북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이곳에 세관을 두어서 통행세와 관세를 거두었는데, 이곳에 삭개오가 일하고 있었지요. 여리고에 세관이 몇 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한 팀의 장이라면 삭개오 아래에 직원들이 수 명이 있었을 것이고, 그 팀들이 여러 개가 있었다면, 최소한 수십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징수, 수금, 보관원, 기록원, 경비 등) 이 여리고에 예수님께서 지나가십니다. 그리고 삭개오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시지요.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3-4)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 다가오시지만, 삭개오도 역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수하들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도 예수님을 먼 발치에서 한 번 보고 싶었지요. 그런데, 이미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많아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자기가 올라간 그 돌무화과 나무 아래에 정확히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알고 계실까요? 나무 위에 있는 사람이 삭개오인 것을 어떻게 아셨느냐 말입니다. 이전에 한 번도 삭개오를 만난 적도 없었는데… 이런 장면을 보면, 예수님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5-6)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올라간 그 나무 아래에서 삭개오를 부를 때에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오시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할까요? 그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예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나무 위에 있다가 예수님께 즉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초청하고 싶어도 이제까지 유대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을 당했고,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 사람이었는데, 가장 핫한 인싸(Insider)이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와 상대를 해 주시니 얼마나 삭개오가 기뻤는지 모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주 꺼려하던 사람, 그것도 세리 중의 세리 삭개오와 예수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시겠다니, 놀랍지 않겠습니까?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7)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예수님의 인기나 명성에 금이가기 시작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셔서 함께 교제를 나누십니다. 그리고 삭개오를 두둔하십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8)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돈과 물질을 주님을 위해서 내놓습니다. 당장 자신의 재산 절반을 주위의 가난한 이웃과 나누겠다고 예수님 앞에서 맹세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기에 삭개오가 그런 말을 할까요? 아마도 이웃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에 대한 말씀도 하셨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나름 유대 사회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다면, 4배나 갚겠다고 맹세하지요. 

 

 예수님을 만나고 이렇게 극적으로 변화하는 사람은 참 드물 것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재산이나 명예나 권력 등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이 사람인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잘못은 고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참 회개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람은 많은데,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다는 사람은 많은데, 이렇게 외적으로 변화된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삭개오를 보시고 예수님은 공언하십니다. 삭개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9)

 

 또한, 예수님께서 왜 삭개오와 같은 사람에게 찾아오셨는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0) 

 

 예수님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전제가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에 소속되었던 한 영혼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공동체에서 배제가 되었습니다. 삭개오처럼. 그런 잃어버렸던 영혼을 예수님께서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영혼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시 그 영혼을 하늘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서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보기에는 그 삭개오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기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노가 아닙니까? 그런 사람 한 사람쯤 잃어버리면 어때서? 포기를 못하시는 것일까요? 

 

 오늘날, 이런 저런 이유로 사라지는 사람, 실종되는 사람이 참 많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여행갔던 젊은 이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온 뉴스에 나오던데, 위험한 나라니까 여행가지 말라고만 하지 누가 가서 실종된 사람을 찾아옵니까? 나라도 못하는 일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삭개오 같은 사람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세상에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얼마나 감격했는지, 주님의 뜻을 당장에 실행하기로 결단합니다. 자기가 그동안에 쌓았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내어 놓는데, 또 신기한 것은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삭개오의 재물을 얻고 덕을 본 사람들은 가난한 이웃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삭개오를 미워하고 외면했던 유대 공동체입니다.  

 

 삭개오 덕에 예수님께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호화로운 옷이나 차량이나 물질을 제공받은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가 덕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어떻습니까? 우리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유익을 얻고 있습니까? 손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삭개오처럼 드러나고 외적으로 변화된 모습은 있습니까?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1)

 

 우리들은 왜 삭개오처럼 드러나는 변화가 없을까요? 예수님께서 삭개오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비유 한 가지를 더 말씀해 주십니다. 얼핏보면, 전혀 다른 내용 같지만, 계속해서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심지어 12명의 사도들도)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로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다윗의 보좌에 앉아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예수님을 그런 정치적인 메시야로 믿어서 그런 삶의 변화가 온 것이 아닙니다.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2-13)

 

 예수님께서 당시로부터 약 30년 전에 일어났던 ‘헤롯 아켈라오’의 이야기를 빗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십니다. 기원전 4년, 헤롯 대왕이 죽습니다. 그의 아들인 아켈라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의 통치권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유대 지역의 왕이나 분봉왕은 로마 황제의 승인을 받아야만 그 지위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아켈라오는 자신의 '왕위(kingship)'를 인정받기 위해 '먼 나라', 즉 로마로 가서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4)

 

 아켈라오는 아버지 헤롯 대왕 못지않게 잔인하고 포악했습니다. 그는 왕위를 승인받으러 로마로 떠나기 직전, 유월절에 성전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 약 3,000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소식이 퍼지자 유대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는데, 아켈라오가 로마로 떠나자, 유대인들은 50명으로 구성된 공식 사절단을 로마로 파견해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아켈라오의 잔혹함을 고발하며, 그의 왕위 계승을 결사반대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로마에 거주하던 8,000명의 유대인들도 이 사절단에 합세하여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15, 27)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유대 사절단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켈라오의 통치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다만 완전한 '왕(Rex)' 칭호는 유보하고, '분봉왕 혹은 족장(Ethnarch)'으로 임명하며 "통치를 잘하면 왕으로 승격시켜주겠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사실상 통치권을 허락받은 것이지요. 그는 돌아와서 자신에게 반대했던 세력에 대해 무자비한 보복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비유의 마지막에 나오는 서슬 퍼런 심판의 모습은, 청중들로 하여금 아켈라오와 같은 폭군의 귀환과 그에 따르는 피의 숙청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셨을 때에는 유대인들과 사람들이 정치적인 메시야로 삼으려고는 하지만, 마음 속의 주인으로는 모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기보다는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자유를 얻고, 권력을 얻고, 물질을 얻으려는 것 뿐이지요. 

 

 그러나, 재림주로 오실 때에는 그러한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겪은 무시무시한 아켈라오의 폭정과 보복처럼, 아주 잔인한 형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들에게 므나를 주시고 왕위를 받아오실 때까지 그 기간은 사실 우리가 다시 재림의 주님을 만날 때까지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계산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16-19)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열심히 일을 해서 불렸지만, 그것을 가지고 이웃과 나눔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므나의 비유를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을 남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과 시간과 돈을 가지고 어떻게 이웃을 살렸으며, 가치있고 보람있게 사랑하며 섬겼는 지가 주님께서 보실 때에 남긴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이를 하늘에 쌓는 보물로 표현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삭개오처럼,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집안에 쌓아둔 부귀는 하늘에 쌓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물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봉사와 섬김의 도구로 사용한 것을 주님께서 남긴 이익으로 보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즉시로 영접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 결단과 희생과 섬김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비록 삭개오처럼 권세나 부귀가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신 ‘므나’를 찾아서 주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위해 기꺼이 드리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것을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나의 생각과 기쁨과 뜻대로 쓰기보다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드리고 바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진정한 영접은 우리 속 사람이 자기나 물질이나 쾌락이나 다른 사람이 주인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고, 그 주님을 올바르게 섬기고 인정할 줄 아는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을 찾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삭개오처럼 기쁘고 즐겁게 영접하고,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아직도 우리 속에는 탐심과 욕심과 불의와 거짓이 가득찼습니다. 헛된 우상은 버리게 하시고, 주님을 위해 드리고 쓰는 바른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나라를 기다리고  기대하며, 주님 다시올 때까지 주의 잃어버린 백성들을 찾고 건져내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로그인 회원가입

방문자 집계

  • 오늘 858
  • 어제 1,084
  • 최대 3,428
  • 전체 331,685

Copyright © metabible.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