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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누가복음] 21장 과부의 헌금과 성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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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025-11-05 12: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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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헌금, 프랑수아 조제프 나베 作 (1840년)>

 

 

* 과부의 헌금 (1-8)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1-2)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과 복음만을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관찰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어떻게 드러내고 증명할까요? 가장 쉽게 생각하면,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것을 바치느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경제활동이고, 돈이지요. 그래서 자기 목숨을 내놓고 돈을 법니다. 노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수고가 필요한 지, 인간의 수명을 갈아넣고 겨우 약간의 푼돈을 만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헌금함 옆에서 여러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십니다. 부자가 드리는 헌금도 보고, 가난한 과부가 드리는 헌금도 봅니다. 그리고 나서 둘 사이에 비교를 하시면서 과부가 부자보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3-4)

 

 그런데,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두 렙돈은 우리 시대로 보면, 고작 3천 원 정도 쯤 되는 것입니다. 만 원도 되지 않는 가치인데, 부자가 내는 돈보다 더 많이 냈다고 평가하실까요? 예수님께서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시는 것이 아닐까요? 정말 부자는 은전 한 개를 넣었는데, 과부는 2개 동전을 넣었으니 갯수가 많아서 더 많이 냈다고 하신 걸까요? 

 

 예수님은 각 사람의 형편에 따른 마음의 부담 정도를 가지고 평가하신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유럽 국가는 교통 법규를 위반했을 때, 범칙금이 각 개인의 소득에 따라서 다르게 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딱 맞는 예시는 아니겠지만, 소득의 3%를 낸다고 하면, 월급 돈 100만원 받는 사람은 3만원의 범칙금을 냅니다. 그러나 월 1억을 버는 사람은 900만원의 벌금을 내야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각 사람의 소득을 판별하고 나서 벌금 고지서가 각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부자들에게는 3천 원이란 돈이 그야말로, 정말 하찮은 돈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너무나도 어려운 살림에 하루 생활비가 고작 3천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그 돈은 자신에게 있던 전부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이 과부는 1렙돈만 넣을 수도 있고 나머지 1렙돈은 자신을 위하거나 가족들을 위해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을 모두 넣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의 신학자들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억지로 내게 한 두 렙돈이 최소한의 헌금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과부의 이야기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시지만, 부자보다 이 과부에게 점수를 더 주신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는 부자들은,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금이나 섬김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반면, 억울하게 수탈을 당하고 있는 이 과부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는 선포이지요.  

 

 우리가 보통 장을 기준으로 문맥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성경은 장이나 절로 나뉘어 있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도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4절을 한 단락으로 볼 것이 아닙니다. 그 전 20장 45절부터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시 20장으로 소급해서 45절부터 봅니다.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20:45-48)

 

 그러니까 과부의 가산을 삼기는 서기관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어떻게 수탈하는지 21장에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고혈조차 빼앗아서 아름답고 화려하게 성전을 만들었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그런 성전과 거짓 종교지도자들과  거짓 교훈들을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파괴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과부는 ‘강도의 소굴’에 헌신적으로 헌금을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한 푼까지 바치게 하는 율법 교사들 때문에 강도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그들의 소굴은 번창했지요.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무조건 자기 수준에 비해서 많이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다면 예수님 당시의 저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종교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 과부를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나오는 사렙다 과부처럼, 끝까지 생활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응답을 하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바른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세상은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키는 악한 영과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진리의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있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탐욕의 눈으로 보면, 종교 사기꾼이 어리석은 가르침에 우리 영혼과 생명을 빼앗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재산을 성전에 가져다 바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팔아,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속이고 빼앗는 거짓 교사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을 달라고 항상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5-6)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AD 70년 경,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 성전파괴 징조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7-9)

 

 예수님이 함께 있을 때, 제자들은 언제 헤롯 성전이 파괴될 지 묻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성전 파괴와 함께 종말의 징조를 함께 묻는데, 누가복음에는 단지 성전 파괴에 대해서만 말씀하는 듯 보입니다. 어쨌든, 성전 파괴 때의 현상과 앞으로 예수님 재림 전에 일어날 세상 멸망의 징조도 거의 비슷하고 동일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첫 번째는 미혹하는 거짓 이단, 사이비가 횡횡할 것입니다. 아주 값비싼 보석이 점점 더 가치가 올라가면, 그에 비례해서 가짜가 점점 많아지듯이 예수님의 복음이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악한 영과 세력들은 점점 더 복음 비슷한 ‘다른 복음’을 퍼뜨릴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그리스도인이 넘어가는 ‘다른 복음’은 ‘성공 신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부자된다는 믿음이지요. ‘항상 잘되는 나’, 세상의 ‘성공학 포르노’가 그렇습니다. 

 

 제가 경험한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이 배부르고 부요해지면, 하나님을 떠날까봐 굉장히 염려가 많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부요하게 하지 않습니다. 특별하게 재정에 넘어지지 않을 몇몇만 은사로 주시지, 우리들이 연약하기 때문에 부자가 되면, 하나님 대신에 ‘돈’ 그자체를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됩니다.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신 32:15)

 

 진짜 성도는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할 줄 알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딤전 6:8).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10-11)

 

 두 번째,  국지적 혹은 국제적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며, 재난이 일어납니다. 기근, 전염병, 하늘의 천체가 우리가 봐왔던 것과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날에는 쉽게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도 지진 안전지대인 줄 알았지만 지진이 간헐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지요. 온대 기후였다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었습니다. 점점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같은 민족인데 전쟁하고 있지 않습니까? 곧 대만과 중국도 전쟁일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미 70년 전에 전쟁이 있었지요.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12-13)

 

 세 번째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희생양이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도 점점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습니까? 가짜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들이 구별되게 살지 않으면,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죄를 뒤집어 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리스도인들이 화재를 냈다고 거짓 선동해서 수많은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고 순교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비슷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어려움 당한 사람들을 돕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박해를 받는 상황 속에서 점점 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가짜들은 이 때 다 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진짜 구주로 믿는 사람들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14-19)

 

 예수님은 가장 확실하게 성전 파괴 직전의 현상을 예언해 주십니다(20). 앞에서 이야기한 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하게 먼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경각심을 갖기 어렵습니다. 눈앞에서 목도되는 것을 보아야 급하게 대비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0-22)

 

 예수님은 성전 파괴 때, 절대 예루살렘 근처에도 가면 안 되니까, 대피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던 성도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잊어버린 사람은 변을 당했겠지요.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36)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도 주님을 오해해서, 많이 바쳐야 복을 받아 누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주의 성전을 위해 받치고, 봉사한다고 했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애와 긍휼과 사랑은 버렸습니다. 잘못된 거짓 복음에 속지 않게 하시고,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하시고, 시대와 세대를 분별하게 하소서! 세상의 종말 때, 참 성도로 인정받게 하시고, 세상의 박해와 환란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굳건하게 서 있게 하소서! 진리의 복음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주님 나라의 일꾼 되게 하소서! 다시 오실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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