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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누가복음] 23장 (1) 빌라도와 헤롯 앞에 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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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25-11-26 13: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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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joyfulpca.org>

 

 

* 빌라도의 심문 (1-7)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 하더이다 하니” (1-2)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은 예수님은 억울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 백성의 장로들이 죄목으로 프레임을 씌운 것은 한 마디로 ‘반역자’입니다. 로마 황제가 있고, 유다 총독이 있음에도 유대인의 왕이라고 예수님을 고발한 것입니다. 표면상 그리고 언어상으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들어가 보면,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인정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존재하고 살아 계시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칭 왕이 아니라 진짜 왕이십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참 이 장면이 아이러니한 것이 로마 황제의 기름부음(?) 받은 총독 빌라도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예수님을 재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잠시 후면 역전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거의 100년 안에 끝이 납니다. 그 뒤에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살아서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낱낱이 드러날 텐데, 그 재판의 자리에 바로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거짓 비방을 했는데, 백성을 미혹했고, 로마에다 내는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경제활동을 하신 분이 아니라 주변의 따르는 사람들의 헌금으로 활동하셨기에 세금을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세’는 베드로를 통해서 낸 일이 있지요(마 17:27). 이런 사소한 것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연구를 해서, 예수님을 비방하지요. 우리 성도들도 이런 일들로 복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국가에 대한 세금이나 사회적 제도들을 잘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비방을 받고 괜한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3-4)

 

 빌라도는 고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심문하는데, 예수님은 진실을 말씀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생각이 다르지요. 오히려 예수님을 두둔하고 예수님께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성의없는 재판관들은 피의자가 자백을 했다고 유죄로 인정하고 쉽게 재판을 끝내려 했을 텐데, 빌라도는 왜 죄가 없다고 했을까요? /* 홈페이지 성경공부란에 빌라도 보고서를 참고하세요.*/ 학자들에 따르면, 빌라도가 예수님에 대해서 예전부터 조사를 하고 사람을 붙여서 감시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사해 보니까 그저 유대인들의 율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설교할 뿐, 어떤 무장 봉기를 위한 준비를 한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병자들은 놀라운 기적으로 고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호의적이었고, 오히려 사두개인들이나 대제사장 가문과 백성의 장로들은 유대인들을 종교권력으로 착취하는 것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호하고자 애를 썼지만, 이 유대인들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총독까지도 로마 황제를 반역하려고 한다면서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빌라도는 꾀를 내어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의 통치자인 헤롯 안티파스에게 재판을 넘기려고 했습니다.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5-7)

 

 때마침 헤롯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유다 총독과 헤롯은 껄끄러운 관계였는데, 총독이 찾습니다. 

 

* 헤롯의 심문 (8-10)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8-10)

 

 헤롯은 자기가 다스리는 갈릴리 출신 선지자가 놀라운 이적을 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체면에 예수님의 꽁무니를 쫓아다닐 수는 없었지요. 마침 예루살렘에 있었는데, 예수를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대가 크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고발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죄목을 들먹이며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지요.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11-12)

 

 헤롯은 여러 가지 마술을 볼 줄 알았는데, 아무런 저항도 변명도 하지 않는 예수님을 오히려 희롱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헤롯과 빌라도는 사이가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원수’였다가 예수님을 정죄하는 면에서 일치를 보고 힘을 합하게 되지요. 왜 빌라도와 헤롯은 사이가 안 좋았을까요? 

 

 누가복음 13장에 갈릴리 사람들은 빌라도의 군대가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cf. 누가복음 13장 (1) 설교 참조 https://metabible.or.kr/board/summon2/60)  갈릴리 사람들은 엄연히 헤롯 안티파스의 백성입니다. 빌라도가 자신의 관할 지역인 유대(예루살렘)에서 헤롯의 허락이나 재판이나 사전 통보 없이 그의 백성들을 처형한 것은 주권 침해이자 헤롯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였습니다. 또, 유대 철학자 필론(Philo)의 기록에 따르면, 빌라도가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에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문구가 적힌 '황금 방패'를 걸어두었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유대인들을 극도로 자극하는 행위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헤롯 안티파스는 이 문제를 직접 로마 황제(티베리우스)에게 고발했습니다. 헤롯 가문은 로마 황실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정치적 로비가 가능했습니다. 황제는 빌라도에게 "당장 방패를 치우라"고 명령하며 그를 질책했습니다. 빌라도 입장에서는 헤롯 때문에 황제에게 문책을 당하고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으니, 헤롯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황금 방패 사건’으로 부릅니다. 

 

 빌라도와 헤롯은 로마 제국 아래서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는 경쟁자였습니다. 빌라도는 총독으로 로마에서 직접 파견된 군사 및 행정관으로,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며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유대 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헤롯은 분봉왕ㅇ로 로마의 허락을 받았지만 유대 혈통이 섞인 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의 종교적 감정을 대변하는 척하며 빌라도를 견제했습니다.

 

 앙숙이었던 두 사람이 예수님 재판 때,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임을 알자마자, ‘이 사람은 당신 관할이오’ 라며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이는 ‘당신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화해의 메시지였습니다. (특히 과거 갈릴리인 학살 사건에 대한 사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헤롯은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자신을 왕으로 대우해 주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세워졌고, 예수님을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냄으로써 그에게 판결의 공을 넘겼습니다. 결국 이들은 무고한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자신들의 정치적 앙금을 털어내고 야합하게 된 것입니다.

 

* 빌라도의 판결(13-25)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3-16)

 

 빌라도는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심문을 마치고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예수는 죽일 죄는 없으니, 당신네들이 미움과 원한이 있는 듯하니, 적당히 손을 봐서 채찍으로 때리는 태형으로 사건을 마무리 하자. 헤롯도 예수가 갈릴리에 있을 때, 악한 일을 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잡은 사람들은 기어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했습니다. 그것은 어둠의 영에 지배를 받는 자들의 결론입니다.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개역 성경으로 번역한 사본에는 17절이 없지만, 다른 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놓아 주더라.” (17)

 

 다른 복음서에도 유월절에는 죄수 한 명을 특별사면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빌라도는 이 점을 가지고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악질적인 죄인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고발자들은 구합니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18-19)

 

 이 바라바(아버지의 아들)는 초대 교부 오리겐에 따르면, 이 사람의 원래 이름도 ‘예수’였다고 봅니다. 빌라도는 군중에게 "예수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바라바를 지칭한 '강도'라고 표현했는데, 당시 요세푸스(Josephus)와 같은 유대 역사가들이 로마에 저항하는 '열심당원(Zealot)'이나 무력 독립운동가를 비하하여 부를 때 주로 사용했으므로, 바라바가 단순한 잡범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안에서 조직적인 봉기(민란)를 일으키고 로마 군인이나 관리를 살해한 거물급 정치범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대 군중들이 예수님 대신 그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로마에 맞서 싸운 민족주의적 영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20-25)

 

 참 놀라운 사실은 심판받아 마땅한 '진짜 죄인(바라바)'은 아무 공로 없이 풀려나고, '무죄한 예수님'은 죄인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인 "죄인인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자유를 얻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실물 예화가 바로 바라바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희생하셨기에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고 풀려났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무죄한 예수님이 죽음에 넘겨지고, 죽어야 할 진짜 죄인 바라바는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단지 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산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십자가 피로 구속하셨사오니, 우리의 남의 삶이 우리의 뜻이나 정욕이나 죄악된 사람들에게 이끌리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게 도와주옵소서! 

 

 영원히 주님을 찬양합니다. 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죄와 사망으로 죽어가는 우리의 이웃들을 구원하는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여론과 거짓에 이끌리지 않게 하시고, 담대한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진리를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를 대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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