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ttps://gyusikjung.blogspot.com/2021/08/2.html>
오순절 성령 세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4)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자주 모여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오순절이라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으니 유월절이 지나고 50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500여 무리에게 보이시기까지 약 40일간 머무셨다고 했으니까, 승천 후에 제자들은 약 10일 정도 전심으로 모여서 기도한 것입니다.
놀라운 체험을 기록했는데, 첫 번째는 바람 같은 소리였습니다. 두 번째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고, 기도하는 제자들 위에 하나씩 임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불의 모양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제자들에게 동시에 임한 것이지요. 세 번째는 제자들의 입을 열어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도원에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주문같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그냥 소리가 아니라 명확히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언어들이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듣고 명확하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있게 들렸습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5-7)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어 여러 가지 다른 나라 말을 하는 가운데, 멀리 외국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해외동포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려고 머물다가 갈릴리 출신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들만 아는 외국어를 말하니까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에는 제자들과 소통을 하려면, 히브리말을 해야 했는데,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포들은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듣는 말이 더 귀에 잘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마치 우리가 외국에 나갔는데, 여기 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오면, 놀라서 쳐다보게 되듯이 그랬겠지요. ‘여기에 우리 말고 또 다른 한국 사람이 여행을 왔는가?’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주의를 집중해서 보니까,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갈릴리 토박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유창하게 외국어를 할 수 있을까요? 엊그제까지만 해도 이들과는 히브리말로 말했을 텐데…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8-11)
해외 동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교제할 때, 각자 어디 지역에서 왔는지 대화를 나눴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 각처에서 모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수많은 언어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제자들은 히브리말을 한 것이고, 성령께서 마치 동시 통역을 하듯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각자 자기 지역의 말로 들리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인류가 ‘바벨탑’을 짓다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흩어버리셨는데, 이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다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메시지를 듣는 것은 모국어를 듣듯이 됩니다. 이 말씀을 깊이 잘 들여다 보면, 성령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방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각 사람의 출신지에 따라서 모국어로 들리는 방언입니다. 그래서 진짜 방언은 ‘듣는 방언’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이 ‘듣는 방언’입니다.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2-13)
유대인 해외동포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술에 취해서’ 이렇게 말한다고 놀립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술취하면, 외국어가 튀어 나옵니까? 어떤 면에서는 ‘성령 모독죄’에 해당합니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전해지고 있는데,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다양한 외국어가 들린다고 해서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나서서, 명확하게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합니다.
이 베드로가 하는 것이 바로 ‘통역’, ‘통변’입니다. 방언이 들릴 때, 명확하게 무슨 메시지인지 교회에서는 그것을 밝히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그냥 신기한 일로 치부하고 말지요.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4-15)
때가 제 삼시, 즉 아침 9시인데, 아침부터 술퍼먹고 취한 사람이 어디있느냐면서 베드로가 설명합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6-18)
베드로는 구약의 요엘서를 인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을 육체에 부어 주시는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불의 혀 같은 것이 바로 ‘영’임을 알려 주지요. 그 영을 받은 사람은 예언을 하는데,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바가 바로 ‘예언’, 하나님께서 맡기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과거의 요엘서를 읽었던 사람들은 그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요엘서의 의미를 지금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19-21)
요엘서의 1차적인 징조와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큰 기적과 놀라운 이적(異蹟)을 행하시고, 모든 인류를 위해 자신의 피를 쏟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어둠이 임했고, 큰 지진이 있었고,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잠시 살아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 때가 되면, 수많은 박해와 전쟁과 죽음과 공포가 이 땅에 닥칠 것입니다. 그 때를 맞이하기 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받는 길이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2-24)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말한 내용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입니다. 그 의미를 좀더 자세하게 베드로가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구약의 예언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잘 모르다가 성령을 받자, 핵심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처럼, 이 사건을 담대하게 전하게 됩니다. 그저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그런 류로 한정지어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이적과 기사는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하는 증표일 뿐입니다. 말씀을 확실히 믿어지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25-29)
구약에도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았던 다윗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시편을 지은 다윗의 노래를 살펴보면, 환상 중에 하나님 보좌 앞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다윗은 자기 죽을 육체도 희망이 생기고, 영혼이 음부에 살지 않을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환상 중에 예수님이 땅에 묻혀 썩음을 당치 않는다는 것을 보았고, 예수님의 부활은 곧 자신과 같은 성도들의 부활을 의미함으로 너무 기쁜 나머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0-32)
다윗은 예수님을 환상 중에 보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실제 삶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죽음과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심지어 예수님의 몸을 만져서 확인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1명의 사도들은 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의 증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성령의 세례 후에 두드러진 사도들의 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바르게 전달하고 그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3)
지금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방언은 성령 세례를 받은 것으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4-36)
성령 받은 제자들을 조롱했던 자들에게 단호하게 베드로가 한 마디 더 하지요.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요, 하나님의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역하고 대적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떻합니까? 선택은 2가지이지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든지, 아니면 끝까지 대적하든지.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37-41)
유월절과 오순절까지 지키며 남아 있었던 경건한 유대인들은 베드로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예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른 바, 초대교회가 세워지게 되지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며, 주님의 말씀을 삶의 지침과 근본으로 삼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있는 반면, 끝까지 외면하고 듣지 않는 자들은 한 마디로 ‘패역한 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거부하고 있는데,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곧 성도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명이 함께 말하는 것보다 핵심을 요약 정리하여 베드로를 통해 주의 복음을 전하여 성령 세례 사건을 밝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셔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확실히 알게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주님의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듣는 자와 깨닫고 믿는 자가 생겨나게 하시고, 주의 교회가 흥왕하게 하옵소서!
이 패역한 세대 가운데, 우리를 불러 구원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앞으로 거역하는 세대 속에 살면서,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 증거의 사명을 우리 교회들이 맡았사오니, 저희들에게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시고, 힘차게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모두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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