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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사도행전] 3장 예수 이름으로 고침받은 앉은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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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6회 작성일 2026-01-21 13: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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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ggnews.co.kr/84958>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1)

 

 사도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제 9시면 우리 시각으로 오후 3시입니다. 점심을 먹고 참 졸린 시간일 수도 있는데, 이때 성전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들도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한낮에는 보통 일하느라 바쁜 시간이니까, 새벽 시간에 오늘날 교회들은 모여서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도 오전 5시 30분이지요) 저녁형의 사람들이 많아 참 모이기 쉽지 않지만, 꼭 새벽기도회가 없어도 개인적으로도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2)

 

 점심 먹이고 지체장애인(앉은 뱅이)을 성전 미문이란 곳에 사람들이 데려옵니다. 이곳에서 구걸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라고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렇게 도와 주는 사람들도 참 귀합니다. 그리고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이 가난한 장애인에게 돈을 주는 자비로운 행위도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 누구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한 상황인데, 두 사도에게 성령께서 역사합니다. 그 장애인이 하루 이틀 이 성전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두 사도가 이 지체장애인을 주목합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5)

 

 그날따라 베드로와 요한이 그 장애인을 주목하여 봅니다. 뚫어져라 그 사람을 보니까 이 장애인은 뭔가 돈을 좀 챙겨줄 것 같아서 사도들을 쳐다보지요.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6-7)

 

 베드로 사도는 그 장애인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일어나 걸으라!” 

 

 그러자, 이 지체장애인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수십 년동안 자기 힘으로는 일어서 보지 못했던 그가 갑자기 걷고 뜁니다. 그리고 할렐루야! 외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지요. 이 모든 것이 누구의 능력입니까? 베드로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치유의 은사가 생겼습니다. 

 

 은과 금은 없지만, 그 장애인이 간절히 소원하고 원하던 회복이 이뤄졌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 모든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실 메시야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이룹니다. 모든 병자가 다 성전에서 고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의 뜻대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쩌면 영적으로 앉은 뱅이와 같은 우리에게도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와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을 잃어버린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하루 하루 좌절과 절망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 온 성도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일어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8-10)

 

 이 장애인은 성전에 앉아 있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포기할 법도 한데, 항상 자리를 지켰습니다. 때로는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 제목을 위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전을 잠시 거쳐가고 지나갈 뿐인데, 이 사람은 항상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믿음과 정성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할 수 있으면, 새벽마다 자리를 지키십시오. 주일마다 자지를 지키십시오. 수요 예배 때마다 자리를 지키십시오. 언제 하나님의 응답이 이뤄질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은혜가 임하면, 그 모든 기다림과 수고가 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찬송으로 바뀔 것입니다. 

 

 자리를 지킨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그렇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은 남의 은혜를 구경만 하고, 부러워만 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경탄할 뿐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이 받는 은혜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구경꾼이 되면 안 됩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1-12)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장애인 사이에 일어난 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이 기적과 기사가 왜 일어났을까요? 단지 한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와 제사하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성전에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데 동참했고, 전혀 엉뚱한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바로 잡기 위해서 성령께서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선택하여 큰 이적을 베푼 것입니다. 그냥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기도드리고 자리를 뜨면, 그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다시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기회와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시기 위해, 이런 기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잘 읽어보면, 여러 기사와 이적이 나타난 뒤에는 반드시 사도들이나 주님의 제자들이 ‘복음’에 대해서 선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되고 신실함을 증명하고 증거하기 위해서 때로는 인간이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과 이사가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일어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베드로와 요한은 이 기적은 자신들의 경건 때문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대단한 사람, 유명한 선지자처럼 대우하려 하자, 오직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3-15)

 

 사도들은 이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뤄진 것임을 말하고, 예수님은 누구신지 증거합니다. 얼마 전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로마 총독에 넘겨 죽인 예수가 곧 생명의 주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증거합니다. 그 예수님이 이 장애인을 고친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6-17)

 

 참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이 이 장애인을 낫게 했는데, 예수님께서 주신 믿음입니다. 어떻게 이 장애인에게 이 믿음이 들어왔는지 몰라도 예수님께서 지금 눈앞에는 보이지 않지만,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관리가 실수를 했지만, 그것까지도 예수님은 ‘관용’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사도(증인)들로부터 보고 알게 되었으니, 이후에는 더 이상 거역하거나 대적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18-21)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을 통해서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약속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그 모든 약속을 성취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모든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과 계획을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롭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앉은 뱅이가 벌떡 일어나 자유하게 다니고 뛰며 기뻐하듯이, 새 세상이 열립니다. 그러나 그 일은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지고, 그 때까지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십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2-23)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제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세도 신명기 18장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남겼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선지자의 말을 듣고 순종하라고 했지요.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24-26)

 

 유대인들은 모세 다음으로 사무엘을 언급할 정도로 크게 생각하는 선지자가 사무엘입니다. 사무엘도 역시 메시야에 대해서 예언했는데, 그 메시야가 예수라고 선포합니다. 아브라함도 ‘선지자’로 믿는데, 물론 믿음의 조상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씨(단수)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그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베드로가 이 설교에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언급했는데,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약에 약속한 언약의 성취를 하신 분이요. 믿고 회개함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과 복이 되십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과 이웃들이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말씀을 믿고, 주님의 명령대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기도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 기도로 인해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사역에 동역하며, 주님의 은혜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기도가 생활화 되게 하시고,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를 끈기있게 지키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선포하는 주님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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