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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사도행전] 6장 7명의 일꾼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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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026-02-25 16: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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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1)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존의 유대인들은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과부나 고아들을 잘 돌보지 않습니다. 반면, 유대교로부터 배척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도 궁핍하면서도 어려운 이웃을 잘 도왔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으로 사람들이 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가 나음을 얻고, 귀신들린 사람들이 온전해집니다. 

 

 오늘날에도 대형병원에 가 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교회로 가면 돈도 들지 않고 고침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니 물밀듯이 사람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그 수가 수천 이 넘습니다. 그런데, 사역이 커질 수록 문제도 발생합니다. 애당초 사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된 일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웃들을 챙기다가 보니까 정작 자기들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더러, 가난한 사람들이 라고 해서 욕심이나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내가 받는 빵의 양보다는 다른 이들이 받는 것이 더 많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다 보니까, 예루살렘 밖에서 들어온 유대계 과부들이 구제 물품을 받는 데서 몇 이 소외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불만과 불평을 늘어 놓으니, 공동체가 술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이주되어서 팔레스타인 밖에서 살지만 절기나 명절을 지키러 고국에 방문하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우리식으로 해외동포 또는 교포 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주로 이들은 헬라어(그리스어)를 잘 쓰고,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아람어나 히브리어를 사용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2-4)

 

 사도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7명을 세우자고 제안을 합니다. 성경에는 ‘집사’란 말이 없는데, 후대에는 이들을 7집사라고 부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여러 가지 구제사역이나 교회의 일을 위해 쓰는 재정을 관리하게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여러 직분자들을 세우는데, 이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 사역이 커져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이 7명의 일꾼을 세울 때, 사도들과 교회 성도들이 의논해서 이 일을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무슨 음성을 들려 주어서 7명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공동체가 주의 복음을 더 잘 선포하고 교회의 덕을 위해서 세우기 위해서 일꾼을 세운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마음을 합해서 주님의 사역을 함께 협력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세운 사람들이 결코 실력이나 신앙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재정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실력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실, 목회자는 성경에 조금 특화되었을 뿐이지, 다른 영역들은 잘 모릅니다. 무지한 가운데서 일하는 것이 자기 역할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공동체 안에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들이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 재능들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잘못된 것들은 고쳐 나가고, 교회는 더 복음을 위한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능한 한 복음 외에는 세상의 원망이나 원성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구주는 오직 예수님 뿐이라는 것 때문에 배타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욕먹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윤리.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안됩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5-6) 

 

 최소한 5천 명에서 만 명 사이에서 7명을 택했으니, 이들이 얼마나 실력이 출중하고 일을 잘 하겠습니까? 실제로 스데반은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에 초대교회의 최초 순교자가 됩니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성경에 대해서도 능통합니다. 결코 사도들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빌립도 사마리아 성을 선교할 만큼 뛰어납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니골라’라고 하는 사람은 훗날 ‘니골라 당’을 세울 정도로 언변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다가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자, 이단의 교주가 되어 버립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없지만, 훗날 교회는 이들을 집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최초의 직분자들이 되는데,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자들이 아니지만, 교회의 권위로 세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교회의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7-8)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교회는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사람들도 꽤 모이고, 큰 건물과 주차장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가 된 교회도 있습니다. 찬양팀도 멋지고, 무대가 아주 좋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농촌에서 작은 교회지만, 성도들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깊이 알아서, 대화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결국에는 우리들을 통해서 주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배운 대로 제자 삼아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래서 내세우거나 자랑할 것은 없지만, 말씀대로 순종하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가장 많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데반이 단지 교회의 재정만 관리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일꾼으로서 사도들처럼, 만나는 자마다 복음을 전했고, 그 말씀이 확실히 증거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표적들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를 통해 병고침을 받는 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가 교회 안에서만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도 행했다고 하니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표적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9-11)

 

 스데반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다가 원치 않게 논쟁에 빠지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전할 때마다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게 되고, 그에 따라 혹시라도 권력을 잃게 될까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감옥에 가두었는데, 스데반이 사도들만큼이나 열심히 회당을 다니면서, 유대인들을 설득하니 스데반까지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거했던 방식으로 자기들의 종교법을 가지고 사형집행을 하려고 합니다. 그 죄명은 ‘신성 모독죄’이지요. 

 

 스데반이 하나님과 모세를 모독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없는 일이고 다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높이기 때문에 이단 사이비로 몰아갑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니까,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면서, 이것으로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걸었을 것입니다. 또, 모세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강조하니까, 상대적으로 모세가 격하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2-13)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 증인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산헤드린 공회 앞에 스데반을 세웁니다. 스데반을 본보기로 죽여서 더 이상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사법 기관이 불의로 재판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박해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은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입니다. 그러나 당장은 자기들이 권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14-15)

 

 이 악한 자들은 짜집기를 해서 의도적으로 스데반이 전한 복음을 왜곡시켜 자신들의 법에 저촉된 것처럼 일을 꾸밉니다. 예수님이 헤롯 성전을 헐어 버리고 새 성전을 짓겠다고 하신 것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말씀한 것입니다. 참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가 그 안에서 새로운 마음과 생각과 받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단지 율법에 적힌 문자 그대로의 실행 자체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 또는 제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헤롯 성전은 인간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 거짓된 의식과 예식은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잘못 이해된 율법의 말씀을 바르게 고치셨습니다. 그 진의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사들, 사도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워진 스데반도 그 사역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주님의 뜻은 교회공동체를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성령과 지혜를 받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찾고 함께 협력하여 주님을 높이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들이 많아지게 하시고, 여러 가지 주신 재능대로 기뻐하며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를 시기하고 미워하고 여러 가지로 도전을 주는 악한 세력들이 있지만, 믿음을 가지고 이기게 하시고 언제나 온유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케 하옵소서! 

 

 세상의 권력자들이 교회를 위협하고 박해한다고 할지라도 담대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듯이 우리들도 승리하게 도와주옵소서! 바른 진리의 말씀이 전파되고 선포되길 원합니다. 성령께서 늘 함께 하여 주셔서, 우리의 가정과 사회와 이웃에게 참된 것을 말하며, 주님의 나라와 영원하신 주님의 통치를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을 이기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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