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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사도행전] 9장 (1) 사울의 회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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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26-03-18 13: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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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1-2)

 

 사울은 우리 식으로 말해서, 경찰이나 검사 같은 사법권을 가진 공무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의 대리인을 자처합니다. 당시 유대교의 최고 의결 기구이자 사법 기관인 '산헤드린'은 로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종교적 재판권과 체포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산헤드린(혹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체포 영장)'을 받아 다메섹으로 파견된 특사(Special Envoy)에 가깝습니다. 정식 수사관은 아니었지만, 당대 최고의 종교적 사법 권력을 등에 업은 '집행관' 역할을 자처한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울은 왜 이렇게 열심을 내어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했을까요? 사울 스스로는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했다고 고백합니다. (빌 3:5-6) 사울에게 기독교는 단순히 '다른 종교'가 아니라, 유대교의 정통성을 파괴하는 신성모독적 이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을 뿌리 뽑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방 신을 섬기거나 율법을 어기는 자들을 공동체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이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제2의 '비느하스'(민 25장)가 되어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을 것입니다. 또, 당시 유대 지도층은 기독교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로마 당국과의 마찰을 일으켜 유대교 전체에 피해를 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은 이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여 공동체를 보호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메섹은 당시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여기서 기독교가 퍼지는 것을 막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3-4)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도시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에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렀습니다. 빛 가운데 소리가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고,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한 것처럼, 사울이 그러한 체험을 합니다. 이 말씀도 성자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보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조직신학에서 보면, 성경말씀에 ‘삼위일체’란 용어는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 소리에 대해서 사울은 반응합니다. 놀랍게도 주변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만은 정확하게 들립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 는 주님의 질문에 사울은 놀라서 되묻습니다.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5-7)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십니다.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이 아프면, 자기가 아픈 것처럼 노심초사하듯이 예수님께서 그렇게 반응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면, 사울이 할 일을 알려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 전에 다른 장에 보면, 사울이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다시 묻는 장면이 여기서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박해하는 사울을 주님께서는 바로 심판하여 하늘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미션을 주십니다. 주님의 자비와 은혜이지요. 죄인을 당장에 보응하시지 않고, 기회를 주십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8-9)

 

 사울에게는 주님을 만난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실명이 되었고, 정신적으로는 충격 때문에 3일동안이나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는데, 그동안 자신이 행했던 일들에 대해서,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제까지 배워왔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열심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임을 깨닫게 되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유명한 무신론자 미국 언론인은 리 스트로벨(Lee Strobel)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로 살면서, 그리스도교를 부정하기 위해 철저히 조사하다가 오히려 예수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후, "무신론에 속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며 회심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회심 과정을 담은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0-11)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름은 ‘여호와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다메섹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직가라고 하는 거리에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만나라는 주님의 환상을 봅니다.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2)

 

 사울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는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와서 사울을 다시 보게 할 것이란 내용입니다. 동시에 주님께서는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십니다. 그러니까 사울과 아나니아의 만남에는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우리 성도들의 만남도 주님께서 역사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전도자와 사명자를 주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3-14) 

 

 아나니아도 사울에 대해서 소문으로 들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로 사울이 다메섹으로 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를 찾아가 만나라고 하니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사울이 적이고 실명상태에서 회복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은 단호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5-16)

 

 기독교 공동체에 해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사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사울은 훗날,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받아주신 그 주님의 은혜 때문에 박해를 받아도 달게 받고, 주님을 위해 죽는데까지 나아갑니다. 주님의 계획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가장 대척점에 있는 그를 변화시켜 자기 사람으로 만드시니까 참 기묘합니다. 누가 사울이 주님의 택한 , 주께서 쓰시는 위대한 사도가 될 지 꿈을 꾸기라도 했을까요?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17-19)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서 사울을 찾아갑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주님의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다시 보게 되고, 유대교를 벗어나, 세례를 받고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이 아나니아는 이후에 무슨 선교를 떠났다든지, 교회를 세웠다든지 무슨 큰 일을 했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도 모두 사도 바울처럼, 무슨 대단한 사역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 영혼을 사랑해서 주님의 뜻대로 이끌면, 그 사람이 훗날 사도 바울처럼 위대하게 쓰임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늘 경건에 힘쓰며, 주님의 뜻대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며칠 있었다고 기록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하루 이틀, 3~4일이 아닙니다. 몇 년 간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아라비아로 갔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최소 3년 간 자기 자신이 알고 있던 구약의 말씀들이 바르게 알고 있었는지 점검하며 새롭게 배우고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하여 결론이 나지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는 곧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우리들도 성경을 수없이 읽지만, 바르게 정립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새롭게 성경을 배우게 됩니다. 지식적으로, 머리로만 알았던 예수님이 하나님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그리고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릴 것입니다. 그런 복이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 전도자 사울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0-22)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사울이 확신의 찬 목소리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온 유대인들은 크게 놀랍니다. 시력을 잃어 회당을 떠났더니, 몇 년이 지나 자신들의 곁을 돌아오더니 예수를 증거합니다. 원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던 사람이 오히려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고 있으니까 유대교 유대인들이 정말 곤혹스러워진 것입니다. 

 

 박해자가 도리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전하니, 믿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지 않겠습니까? 사울도 나름 가말리엘 밑에서 배운 젊은 랍비였는데, 그의 따르던 제자들도 사울을 따라 개종했을 것입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다메섹의 사울의 이야기가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유대교 사람들은 사울이 배신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3-25

 

 배신자부터 처단하려고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수를 쓰겠지요. 그래서 다메섹 성문 곁에 사람을 심어 놓고, 사울을 찾아 잡으려고 했습니다. 사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사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울을 다메섹을 벗어나게 합니다. 성문으로 나갈 수 없어서, 성벽 근처에 집이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탈출을 하게 됩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6-27)

 

 사울이 위험하지만, 예루살렘으로 가서 초대교회의 사도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자신은 주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전도자로서 공식적으로 인준을 받기 위함이지요. 그러나 사도들이 거짓으로 예수님을 믿는 체하며, 사도들을 잡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이때, 바나바라고 불리는 사람이 사도들과 사울 사이에 중재를 잘 하여서, 오해를 풀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계획을 알게 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나바’ 같은 사람, ‘아나니아’ 같은 사람이 도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만나 주시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이지만, 사람은 홀로 설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화평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교회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할지라도, 그들이 정말 바른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화해의 중재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도 있습니다. 성경도 성령도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신실하신 주님을 바르게 알고, 교제하며, 세상에 소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28-30)

 

 사울은 자신이 원래 소속해 있던 유대교 사람들을 만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갖은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간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배신자의 낙인으로 인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암살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울을 보고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하도록 합니다. 가이사랴로 갔다가 고향 땅으로 가게 됩니다. 아마 사울은 자신의 고향에 가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예수님을 만난 사건에 대해서 전하며,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고향에서도 사울은 배척받게 되지요. 그러나, 주님의 복음은 이렇게 사울처럼 수많은 대적자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변화시키며, 주님의 나라를 세워갑니다.  

 

 지금 사울은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더 크게 쓰시려고 준비시키십니다. 우리들도 작은 실수와 실패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쇠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우리도 주님 안에서 새롭게 준비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메섹으로 향하는 사울을 만나주시고, 변화시켜 주님의 제자로 삼으신 것을 봅니다. 주님은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의 고난과 박해를 수수방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원수를 갚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어 주의 백성, 주의 일꾼 삼으신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 우리들도 원수들을 미워하고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더 크고 빠르게 세워지게 인도하옵소서!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큰 일은 하지 못해도, 아나니아처럼 한 영혼을 품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바나바처럼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하여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입도록 하길 원합니다.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주 안에서 거룩한 성도로 준비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참 성도가 되게 도와 주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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