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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사도행전] 17장 제 2차 전도 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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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026-05-20 16: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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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supax/220133302943>

 

 

  •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16:35-36)

 

 바울과 실라는 하룻밤 사이에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낮에는 복음 때문에 매맞고 감옥에 갇히고, 밤중에는 찬양과 기도하는 가운데, 지진으로 차꼬가 풀렸습니다. 간수가 자결하려는 것을 막고, 그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식사도 하고 매맞은 상처에 약도 바르고 그렇게 밤이 지나서 아침이 되었는데, 그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교도소장(?)에게 보고가 들어가지 않았겠습니까? 죄가 있다면, 차꼬가 풀렸을 때, 간수가 죽던 말던 도망쳤겠지요. 죄가 없다고 판단되니, 조용히 사도들을 내보내려 했을 것입니다. 

 

 재판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감옥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바울과 실라는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합니다. 도대체 무슨 잘못으로 로마사람을 재판도 열지 않고, 태형을 집행하고 마음대로 감옥에 하룻밤을 지내게 했는지 따지는 것이지요. 바울과 실라가 이 죄를 가지고 소장(?)을 손해배상을 받거나 골탕먹이려고 했다기보다 그 재판을 통해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16:37-39)

 

 고위 간부들이 직접 바울과 실라에게 미안하다는 몇 마디 말로 상황을 수습하지요. 그리고 빌립보 성을 떠나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들의 체면도 있고, 고발하는 사람들과 바울과 실라를 법정에 다시 세우면, 크게 잘못한 것이 자기들의 책임이 되기에 면피하려고 그런 양해(諒解)를 구하는 것이지요. 바울과 실라는 더 이상 문제삼지 않고, 사과(謝過)를 받고  떠납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16:40)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있을 때, 루디아도 소식을 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선교지를 떠나기 전에 작별인사를 하고 갑니다. 후일에 또 다시 만날 일을 기약하는 것이지요.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았기에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상처를 보고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과 새로 믿게 된 형제자매들이 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잘못한 것 없이,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다가 이런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2차 선교여행에 동행하게 된 의사 누가의 치료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앞부분으로 좀 소급해서 보면, 사도행전 15장까지는 잘 안 나오는 표현이 중간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11절에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하는 부분인데, 어떤 학자들은 ‘우리’ 문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때부터는 확실하게 누가가 바울 곁에서 함께 활동했던 것이지요. 언제부터 누가가 사도 바울과 함께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에베소와 드로아 중간 지역에 ‘버가모’라는 곳이 있습니다. 당시 이곳에 우리식으로 치면, ‘의과대학’이 있어서, 세계 유수의 학생들이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 이곳에 모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곳을 지나다가 ‘누가’를 만나 바울이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서 이분들을 만나뵙게 되면, 알 수 있겠지요.  

 

  • 데살로니가 선교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7:1-3)

 

 

 

 

 바울 사도가 선교했던 지역 모두에서 큰 역사가 일어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짧게 지명만 언급하고 넘어간 곳도 있습니다. 지금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네인데, 암비볼리나 아볼로니아는 바울 시대에는 상당히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지역은 쇠퇴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를 지나 데살로니가에 역시 유대인들이 모여서 회당예배를 드리는 곳에 찾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세 안식일 동안 전했으니까, 기껏해야 3주입니다. 그 3주 만에 구약성경을 훑었다는 것이 참 대단합니다. 우리는 수년 동안 성경을 배우고 읽어도 잘 모르는데 말이지요. 아무튼, 핵심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으나 부활하셨음도 증언합니다.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17:4)

 

 참 안타까운 것은 일부는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나머지는 오히려 바울과 전도팀을 박해합니다. 바울 사도가 가장 가슴 아픈 것이 이방인이 배척하는 것보다 자기 동족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5-9)

 

 데살로니가 회당의 회당장이 야손인 것 같습니다. 그가 바울을 들여 복음을 전하게 해서, 일부는 복음을 믿었지만, 나머지는 바울을 불러들인 야손을 잡아 감옥에 집어 넣습니다. 믿게 된 성도들은 바울 일행을 숨기고 그곳에서 박해를 받지 않도록 피신 시킵니다. 감옥에 있던 야손은 보석금을 내고 감옥에서 놓이게 됩니다. 바울과 전도팀을 잡으려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엮어서 죽였듯이, 바울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을 역시 로마 황제를 거역하는 반역자 프레임으로 고소, 고발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역시 세상의 정치적인 이유를 가지고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우리는 지혜롭게 성경을 읽으면서, 잘 준비하여 복음의 진리가 더 퍼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베뢰아 선교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0-12)

 

 바울 사도가 선교하면서 참 신사적인 사람들을 만납니다. 바로 베뢰아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그냥 덮어놓고 믿는다든지, 아예 무시하고 관심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말 바울이 전한 말씀이 진실인지 스스로 살폈습니다. 구약성경을 찾아 읽어보고, 성경과 예수님의 사역이 일치하는지 잘 따져보고 확신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까지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선교를 방해하던 세력들이 나타나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3-14)

 

 베뢰아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과 일부의 선교팀이 우선적으로 바울을 피하게 합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서 좀더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과 합류하게 되지요.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5)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도착하여서 자기 팀원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사람을 돌려 보내고, 홀로 아덴 지역을 돌아다니며, 선교에 대한 방향을 잡습니다. 이 아테네는 수많은 신전이 있고, 여러 우상을 위한 제단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격분하여 큰 광장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 아덴(아테네) 선교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6-18)

 

 바울이 다른 팀원들이 오기까지 유대 회당을 찾아서 복음을 선포하기도 하고, 시장이나 장터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시장 같은 곳에서 떠들어 봐야 누구 하나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없지만, 이 당시의 사람들은 그래도 지혜를 얻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새로운 소식이나 웅변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던 것을 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자 합니다.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19-21)

 

 그렇게 해서 사도 바울은 철학적으로 복음을 변증합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22-31)

 

 그리스 철학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을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신의 심판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사람들은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지 않아서, 재앙과 죽음이 닥칠까봐 이름 모를 신에 대한 제단도 만들어 놓았지요. 

 

 바울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심판이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창조주께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과 화해가 되어야 진정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바울을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초대했던 또 다른 철학자들은 스토아 학파입니다. 이 광장에서 세기의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학설을 설파하고 논쟁하곤 했습니다. 이 자리에까지 바울이 초대된 것은 그의 설교가 대단히 그들에게 새로운 것이었고, 매력적인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이 스토아 학파의 핵심적인 사상은 로고스(이성) 사상인데, 우주를 지배하는 로고스에 따라서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로고스(말씀)을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 치환하여 대입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존재하고 모든 인류를 심판할 심판주임을 주장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 바울의 설교에 대해서 ‘십자가와 예수님의 보혈’이 없기 때문에 대단히 잘못된 설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는 견해는 앞에서 중복된 예수님의 핵심 사역에 대해서는 지면상 생략한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그리스의 철학을 ‘복음’으로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어떤 설교자보다 복음의 정수에 대단히 해박하고, 세상의 어떤 사상이나 철학도 깨뜨리는 실력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논리나 지혜와 지식으로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복음’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호령하는 지혜자들도, 이 복음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철학은 인간의 시작과 끝,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만이 우리 삶의 목적과 방향을 이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32-34)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복음의 기쁜 소식이 전파될 때, 수많은 주의 종들이 고난과 고통 가운데 전했습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도 전해져, 믿음의 백성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셨사오니, 이 말씀을 신실하게 배우고, 잘 알아서, 우리의 자녀들과 형제, 자매, 이웃들에게 증거하게 하옵소서!

 

 모든 선교지가 베뢰아 성도들처럼, 진리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진리를 탐구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마음밭이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열매맺기에 아름다운 옥토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이웃과 선교지가 그런 환경이 되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세상의 학문도 복음을 위해서 잘 알기를 원합니다.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바울 사도처럼, 말씀으로 세상의 거짓과 속임수를 깨뜨리고 진리를 바르게 선포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함께 하시고 선교사님들과 복음 전도자에게 성령께서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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