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선교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1-2)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옵니다. 전도 여행은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굴라’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본도(폰토스-위 그림참조, 녹색지역) 출신인데, 폰토스는 흑해 연안 아나톨리아 지방 북동부에 있던 옛 지명으로, 헬라시대 잠시 폰토스 왕국이 되었다가 로마의 점령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튀르키예의 흑해 지역의 일부입니다.
그는 로마에서 사업을 했었는데,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재위41-54)가 유대인들 추방명령을 내리자, 고린도로 이주하였던 것입니다. 그 황제의 명령을 ‘크레스투스 추방령’이라고 하는데,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가리키던 이름인 '크리스투스(Christus, 그리스도)'의 발음이 잘못 전달된 것으로, 유대인 회당 내에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과 이를 거부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일어난 심각한 종교 분쟁으로 촉발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초기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보았습니다. 로마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유대인들과 전통 유대교를 고수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사도 바울 선교팀은 박해를 받으면 피하다가 매맞고 쫓겨나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지만, 다른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강경하게 대치하고 다투다가 유혈충돌이 심하게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다문화 사회인 로마 제국 내의 평화와 공공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유대인 공동체 내부의 이러한 신학적·사상적 충돌이 폭동으로 번져 제국의 수도인 로마의 치안을 위협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소란의 근원인 유대인 전체를 로마에서 추방하는 강경책을 시행한 것입니다.
이 아굴라(아내 브리스길라)가 고린도에서 바울과 만났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3-4)
바울이 선교팀이 오기 전에 생활비와 선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때 만난 것이 아굴라 부부인데, 함께 일하면서 안식일에는 복음을 전하게 되고,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게 됩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5)
바울이 홀로 있을 때, 고린도의 사역이 그리 잘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돌아와 합류하니까, 바울 사도가 선교를 더 잘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박해하고 심지어 바울을 죽이려고 달려 들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담대하게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홀로는 설 수 없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중보하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교회다운 사역을 감당하고, 파송된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더 잘 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6)
고린도에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더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옷을 털면서, ‘나는 깨끗하고, 너희 피가 너희 머리에게 돌아간다’고 선언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에스겔서에 보면, 파수꾼의 사명이 나옵니다. 악한 자가 악한 일을 할 때, 그것을 보면서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죄로부터 돌이키게 할 수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악한 자가 멸망할 때, 그 심판을 파수꾼도 함께 받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시대로 바꾸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서 회개케 할 수 있었는데, 전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하나님께서는 함께 묻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이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셔도,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의미로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우리들이 입었습니다. 성도된 우리가 우리 이웃과 가족, 친지들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전하지 않으면, 우리의 형제 자매가 복음을 듣지 못해 망할 때, 우리들도 연대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성실하게 전해도 마음이 완악해서 듣지 않으면, 이후의 심판에서는 우리가 책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득불(不得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의무입니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7-8)
고린도 지역도 상당히 넓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 체념하고 낙심치 않고 옆동네로 옮겨 복음을 전합니다. ‘디도 유스도’란 사람을 만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할례를 받지 않아 정식 유대인은 아니지만, 유대 회당예배에 참여하는 경건한 구도자였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본명이 ‘가이오 디도 유스도(Gauus Tiitus Justus)’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는 유대교 회당 옆집에 살았습니다. 그가 바울 전도팀을 받아들여 장소를 제공했으니, 회당 옆에 ‘기독교 선교 본부’가 세워진 것이지요.
또, 회당장 ‘그리스보’도 바울을 영접하게 되어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유대 회당조차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높지요. 군선교를 가보면, 천주교, 기독교, 불당이 나란히 있는 곳이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건물들이 다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예배당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나라 땅에 산속이나 도시나 수많은 사찰과 성당과 모스크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문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지요. 그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종교집단도 온 세계 종교가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고 하는데, 모든 이단, 다른 종교는 무너지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는 기독교만 남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9-11)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서 고린도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으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 지역이 섬이다 보니까 각종 미신과 어둠의 영이 판치는 곳이 아닙니까? 바울도 상당히 힘들어 했던 곳인데, 뜻밖에 이곳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은 인간의 판단과 생각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가장 긴 시간 1년 6개월을 머물며 복음을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후서를 보면, 이 교회 구성원들이 상당히 문제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죄악이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칩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갈리오 총독 시대에 소송을 당한 바울
복음이 들어오고 교회가 번성한다고 해서, 박해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난관을 만났습니다. 고린도지역이 포함된 로마의 아가야 주에 총독이 교체되었습니다. 갈리오 총독(재위AD 51-52)입니다. 유대인들이 뇌물을 썼는지, 바울 전도팀을 정식으로 재판에 고발합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2-17)
갈리오가 재판을 기각해 버립니다. 유대인들 사이의 종교적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바울을 풀어줍니다. 이 일을 통해서 기독교 선교가 정치적 탄압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교가 합법적인 종교활동으로 보호를 받는 효과를 거둔 것입니다. 이렇게 일을 진행하신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는 역사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음해과 공격을 받았지만, 주님께서 로마의 관대하고 관용적인 총독이 아가야 주, 고린도에 부임하게 해서, 기독교 선교를 위한 좋은 판례를 남기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상당한 기간동안 자유롭게 선교가 가능해졌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18-22)
옛날의 선조들의 스케일이 참 큽니다. 1년 반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한 것을 ‘여러 날 머물다가’ 이 짧은 한 구절에 담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서원 때문에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의 지병으로 인해서, 주변 지역에 구석구석 다니면서 복음 전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온전한 몸을 주시면 더 충성하겠다고 서원을 드린 것 같은데, 그 육체의 가시도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언가 완벽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온전하게 잘 알지 못해도 우리가 조금 아는 것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재정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재능이 없어도 우리에게 주신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높이며, 잠잠히 주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목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를 쓰셔서, 주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아멘,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의 복음 선교의 여정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바울이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하셔서 고린도 지역에 선교를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우리들도 서로 좋은 동역자가 되게 하시고, 기도하고 함께 일하며 복음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먼저 복음을 받은 것은 우리를 통해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그 피값을 우리에게서 찾겠다고 경고하셨으니, 부득불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들도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유대인들의 음해와 방해와 공작을 물리쳐 주신 것을 봅니다. 아가야 주, 고린도 총독을 갈리오란 사람을 세우셔서, 복음의 장애를 제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셔서, 큰 정치적 박해나 방해 없이 담대하게 선교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우리 나라도 복음에 합당한 법률과 행정이 이뤄지게 도와주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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