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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3장 번성하는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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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024-08-11 11: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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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압과 아브넬 사이에 원한 관계가 맺어져서, 유다와 베냐민 지파사이에 전투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 때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지요. 원래 사울의 가문은 그리 큰 가문이 아니었지만, 다른 10지파가 함께 했기 때문에 많은 군사를 보충할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가운데 내전이 벌어지면, 점점 발을 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 군사들은 점점 줄어들고, 다윗의 군대는 점점 늘어나게 되지요.

 

 3장을 읽어가다 보면, 아브넬조차도 더 이상 다투었다가는 모든 권력을 다 잃겠다고 판단되니까, 자기가 세운 이스보셋을 배반하려고 다윗을 찾아가게 됩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1)

 

 다윗은 점점 세력을 얻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강하여 간다고 성경 기자가 말하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다윗이 자녀들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가 쇠퇴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자녀를 낳지 않아서 입니다. 다른 이슬람교의 여성들은 아주 많은 자녀들을 낳아서 점점 무슬림의 인구가 많아집니다. 

 

 유럽은 이미 수많은 무슬림 이민자들이 들어가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유럽을 정복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한 무슬림 대통령이 자기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백성들이 유럽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유럽을 정복하러 간다!” 

 

 이슬람을 철저하게 믿고 따르는 한 아프리카의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서구 기독교 사회를 이뤘던 유럽국가들이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서 떠나고 철학과 이성을 따르다가 이슬람 세력에게 점점 점령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게 더 나가면, 대한민국이 소멸되고, 전혀 다른 민족들이 이 땅에 와서 땅을 차지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기독교  여성들이 세상 기준으로 남편을 고르지 말고, 믿음을 따라서 자녀를 많이 낳고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잘 되는 길도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고, 우리 교회가 잘 되는 길도 자녀를 많이 낳아서 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일찍 결혼을 해야 합니다. 20대 초반부터 일찍 결혼을 해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처럼, 6~8명 씩은 낳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최소한 배가 운동은 해서 4명 이상은 낳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 세대가 더 먹을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도 낳아서 길렀는데, 나라가 망했습니까? 오히려 더 경제가 부흥하지 않았습니까? 훨씬 더 좋은 조건에 있으면서도 자기 한 몸 더 편하고 즐기면서 살려니까 애를 낳지 않는 것이지요.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2-5)

 

 여기서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이 언급되지만, 역대상에 가면, 예루살렘에서 또 낳은 아들들이 나옵니다. 다윗 왕가가 번성하는 것이 점점 강해지는 비결입니다. 이 당시에는 왕이 아내를 한 명만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여러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도망자 생활을 할 때, 아히노암과 아비가일이라는 아내를 얻었는데, 유다 왕이 되니까 그술 땅의 왕이 자기 딸을 다윗에게 시집을 보내서 동맹을 맺게 합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생기면,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 여성편력(遍歷)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여기에만 나오는 다윗의 아내가 6명 아닙니까? 원래 첫 아내 미갈이 있었는데, 사울 왕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으니까 지금은 없지만, 다윗이 그 미갈을 다시 아내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여러 여성을 통해서도 그 첫 사랑을 잊지 못합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6-8)

 

 다시 사울 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소개됩니다. 아브넬이 지켜주지 않으면 이스보셋은 왕위를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아브넬에게 모든 일을 맡기게 되는데, 이 아브넬이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왕이 한 마디 하는 것이지요. 아브넬이 실질적으로 상왕(上王)처럼 행동합니다. 

 

 반면, 아브넬 입장에서는 이스보셋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아브넬에게 잘못을 지적하니까, 아브넬이 분노해서 다윗에게 이스보셋을 넘겨주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니라.” (9-11)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자기 말을 들을 신하들이 없는 것이지요. 실질적으로 모든 권력은 아브넬이 쥐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허수아비 왕입니다. 이렇게 될 바에야 이스보셋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나라의 왕위를 물려 주고 ‘하야’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게는 또 안하지요. 왜 그렇습니까? 허수아비라도 그 조그만 권력을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설사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다윗에게 왕위를 넘기려는 시도를 했다가 아브넬에게 발각이 되면,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꼴이 꼭 북한의 김정은이의 꼴입니다.)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을 맺거니와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올 때에 우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12-14)

 

 아브넬이 리스바의 일 때문에 다윗에게 전령을 보냈는지, 아니면 이제 대세가 기울었으니까 마지막에 줄을 갈아타기 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윗에게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갖다 바치려고 합니다. 이 편지를 다윗이 받고서, 요구조건을 하나 겁니다. 그것은 예전에 자기 아내였던 미갈을 내게로 돌려 보내라는 것이지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서 살고 있는 미갈을 왜 다시 부를까요? 정말 첫 사랑을 잊지 못해서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전체의 왕은 이스보셋입니다. 합법적으로 왕위를 넘겨 받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전쟁의 방식으로 하면 안 되고, 예전 사울 왕의 전통성을 받기 위해서는 사울의 딸 미갈과 재결합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아마도 미갈이 이스보셋보다는 더 나이가 많았던 것 같고, 요나단이 죽었기 때문에 다음 승계가 미갈이나 다윗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왕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고, 공주의 남편인 부마가 왕이 되면 가장 좋은 그림이 되겠지요. 

 

 그래서, 정치라는 것이 명분도 필요하고, 어떤 절차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분열된 이스라엘을 통합하려면, 미갈을 다시 왕비로 맞이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식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는 것이 꼭 다윗의 생각이나 계획에서 나왔다기 보다, 그렇게 이끌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 그의 남편이 그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그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15-16)

 

 여기 다윗이 이스보셋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아브넬에게 편지를 보냈을 것이고, 미갈을 데려오는 것을 이스보셋이 했다기보다는 아브넬이 했을 텐데, 이렇게 앞뒤가 좀 맞지 않는 본문이 성경에 좀 있긴 합니다. 이스보셋이 원한 그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튼 제일 불쌍한 사람이 미갈을 아내로 맞이했던 ‘발디엘’입니다. 왕의 사위가 된다고 좋다고 결혼했을 텐데, 남의 마누라를 왜 아내로 맞아들여서 정들었는데, 빼앗기니 이 사람은 참 불쌍합니다. 그래서, 어지간 하면, 처녀와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타락을 해서 이혼과 결혼을 밥먹듯이 하고, 애들 장난처럼 되었지만.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17-18)

 

 그동안 이스라엘 장로들이 아브넬에게 다윗과 싸우지 말고 잘 합하여서 나라를 평안하게 해 보자고 여러 번 요구했던 일이 드러납니다. 그동안에는 아브넬이 그런 의견들을 무시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이스보셋이 자기의 치부를 장로들에게 말하기 전에 미리 아브넬이 손을 쓰는 것입니다. 더 이상 뒤에서 권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보이니까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지요. 

 

 앞으로 다윗이 왕이 되면, 이스라엘 장로들이 아브넬의 공로를 다윗에게 말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이 정치입니다. 사실, 아브넬이 참 영악한 사람이지요.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정치인들 중에는 이렇게 신앙을 팔아서 권력을 얻으려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악한 사람은 더 악한 사람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보면 알게 됩니다.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아브넬이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말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아브넬이 부하 이십 명과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19-20)

 

 아브넬과 다윗이 함께 만나서 앞으로 이스라엘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밀담을 나눴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회를 베풀고 잔치를 벌입니다. 이제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롭게 정권만 이양하면 됩니다. 다윗도 미갈을 다시 얻게 될 것이고 곧 기브아 땅에서 베냐민 지파와도 화해를 하고 왕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1-22)

 

 다윗과 아브넬이 회담을 할 때에는 요압 장군이 없었습니다. 전장에 있었던 모양인데, 어느 나라와 전쟁을 했는지 자세히 나와있지는 않고 ‘적군’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블레셋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다윗은 아브넬을 평안히 보냈지만, 요압은 아브넬을 그냥 보낼 수 없지요. 동생을 죽인 원수가 아닙니까?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의 대사로 온 것인데, 자기의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서 요압이 다윗의 명령이라면서 아브넬에게 급하게 전령을 보냅니다.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3-26)

 

 요압은 다윗에게 아브넬이 온 것은 헤브론을 염탐해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최고 지략가를 죽일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냥 돌려보냈다고 왕을 책망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요압도 ‘아브넬’ 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왕의 부하가 왕의 이름으로 왕 모르게 한 나라의 대사를 오라가라 합니다. 아브넬은 이것도 모르고, 다윗의 명령인 줄 알고 다시 돌아옵니다.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27-29)

 

 마치 다윗 왕의 은밀한 부탁을 전하려는 것처럼 해서, 단칼로 아브넬의 배를 찔러 죽입니다. 자기 동생이 배에 창끝으로 뚤려서 죽임을 당했지 않습니까? 비슷하게 복수를 하는 것이지요. 다윗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얼마나 크게 상심이 되었겠습니까? 다윗이 제멋대로 하는 요압을 어쩌지 못합니다. 이것은 군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하는데, 요압이 군사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고, 전장에서 그처럼 용맹하게 잘 싸우는 장수들이 많지 않으니까 어정쩡하게 일이 수습됩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위해서 장례를 거대하게 치러줍니다. 그래야 자기가 한 일이 아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납득을 시킬 것 아닙니까? 다행히 요압의 짓이란 것을 알고 다른 이스라엘 지파에서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믿게 되면, 다윗을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보셋을 중심으로 더 뭉치게 되지요.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그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30)

 

 요압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자기 원한도 있겠지만, 차후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가 되었을 때에 군대에 지휘관이 누가 될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즉, 아브넬이 자기 상관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도 있습니다.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가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이르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31-34)

 

 왕이 상복을 입고, 애도하면서 시를 짓고 노래하니까 백성들이 처음에는 암살해 놓고 저런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행하는 것을 보니까, 음식도 입에 대지 않고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를 하니까, 이 모든 짓이 요압 때문이지 다윗이 의도한 바가 아님을 믿게 됩니다.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이르되 만일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모든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 (35-37)

 

  다윗은 아브넬이 죽어서 슬픈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마구 범죄를 하는 ‘요압’을 견제 하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까울지도 모릅니다. 요압은 이종사촌간입니다. 친척이기 때문에 다윗을 곁에서 목숨바쳐서 지키고 보필을 하기도 하지만, 그 친밀함을 이용해서 제멋대로 왕의 명령을 어기고 단독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왕이 그의 신복에게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38-39)

 

 다윗은 어쩌면, 아브넬을 이용해서 자신의 친족, ‘스루야의 아들들’을 견제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요압을 깊이 묵상하면서,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굉장히 악을 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은사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고,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과 가까울수록, 더 겸손하고 주님께서 주신 능력이 있다면, 더 조심하고 세심하게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님처럼, 성품과 인격까지도 변화되기를 소원하고 기대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을 점점 강하게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릴 왕으로 세워가심을 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브넬’이 나서서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한 것도 주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저희들도 주님 나라를 위해서 복음으로 많은 생명을 낳고 기르게 하시고, 전쟁과 다투기 보다는 예수님처럼 화평하고 평화롭게 복음으로 정복하는 주님의 일군이 되게 하옵소서! 사사로운 감정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때로는 우리가 요압처럼 주님의 이름을 남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항상 주님을 가까이하며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참 성도로 변화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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