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낮설교

[사무엘하] 23장 다윗의 유언(遺言)과 공신록(功臣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3회 작성일 2024-12-15 11:52:02

본문

 

< 다윗의 죽음, 페르니난드 1643 >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 (1a)

 

 사람이 죽기 전에 하는 마지막 말을 보통 유언(遺言)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사무엘서에 나오는 다윗의 유언과 열왕기상서에 나오는 다윗의 유언이 다릅니다. 열왕기에는 솔로몬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 주면서, 대장부가 되고, 하나님의 명령에 잘 순종하라는 취지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다윗의 유언은 앞으로 자기 후손 가운데 올 메시야의 시대를 조망(眺望)하는 듯 합니다. 

 

 “ …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1b) 

 

 다윗은 자신을 여러 가지로 소개합니다. 먼저는 ‘이새의 아들’이지요. 사실, 아버지 이새는 그리 대단한 집안의 유력자가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 보통 시민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소개한 곳이 다른 예언서에도 나타나지만, 다윗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이 세워주셨다는 것을 강조하지요. 

 

 ‘높이 세워졌는데, 야곱의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세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어찌보면, 다윗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윗은 또 자신을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수많은 시편을 다윗이 지었고, 또 악기까지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며, 왕이 되어서는 여호와를 위한 ‘찬양대’를 구성하였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악령으로 괴로울 때에 다윗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면, 귀신이 떠나고 사울이 상쾌하게 되었기에 곁에 두고 자주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지금 마지막 유언을 남기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 곡조와 음이 기록되어 남아있지 않으니 그냥 가사만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2)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어떤 자신의 개인적인 언행보다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그런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보통 설교자나 목회자가 감당해야 하는데, 다윗은 1인 3역 이상을 해 냈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말씀이 늘 혀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데, 저를 비롯한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 성도라면, 복음을 전하는데, 쓰임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꼭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면서, 자녀들과 이웃들과 형제자매들에게 사랑으로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3)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도자나 왕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칭찬이지요. 바라기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정의와 공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국민들을 다스리고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자기 고집이나 욕심이나 개인적인 판단을 가지고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공의로 다스리는 '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잘못 읽으면 다윗이 하나님께 최고의 칭찬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아닙니다.

 

 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4)

 

 이 부분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다윗을 지칭해서 하는 말이라면, ‘그’가 아니고, ‘네가’ 혹은 ‘너가’ 이렇게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그’는 다윗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실 ‘그’입니다. 

 

 “돋는 해의 아침 빛과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이 말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작정하신 ‘여호와의 종’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미 눈치가 빠른 분들은 누구인지 짐작을 하시겠지요? 바로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5)

 

 여기서 ‘나’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그’에 대한 예언을 하나님께 들었습니다. 과거,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했을 때,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있습니다. 그 언약을 다윗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준비되고, 견고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다윗이 고백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다윗이 여러 가지 환란과 반란 중에 목숨을 잃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이고,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악한 일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살려 주시고 구원하셨던 것은 어떤 다윗 한 사람의 개인을 특별히 사랑하고 봐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다윗이 있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6-7)

 

 그래서 다윗의 대적이 된 자들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악한 자가 된 것이고, 다 내버려지고,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류 구원의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이 열렸는데,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 길을 따르지 않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다윗이 인생 막바지에 깨닫고,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 열왕기에 나오는 솔로몬에게 한 다윗의 유언도 중요하지만, 사무엘서에 다윗의 마지막 유언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남기는 것이 그의 마지막 사명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임금으로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기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말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대충 흘려 버리면 안 됩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를 구원한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영접하느냐에 우리의 영원이 결정이 됩니다. 구약에 아직 예수님도 알지 못할 때에 다윗은 약속의 주님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그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우리들은 무슨 말을 마지막에 남겨야 하겠습니까? 다윗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 들었으니,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자녀로, 주님의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다고 우리의 자손들과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우리의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8절부터는 다윗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수많은 장수들이 함께 하고 도왔음을 기록합니다. 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은 홀로 설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셨지만, 구체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을 굳건히 세울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분들과 잘 협력해서 이 땅에 아름다운 이야기와 역사를 남길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여기 다윗을 도운 장수들이 기록 되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함께 한 모든 일들이, 사역들이 하늘 나라 역사책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 때, 충신의 이름으로 기록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행하게 반역자나 죄인으로 기록이 되어 영원토록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고 심판을 받게 되면 안 되겠지요?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8)

 

 가장 먼저 기록된 사람이 요셉밧세벳입니다. 그의 전과는 800명의 적군을 죽인 것이지요. 역대상서에는 ‘야소브암’이라고 나오는데, 이름의 뜻이 ‘백성은 돌아오리라’ 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고라 자손의 후예로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지혜자(학몬, 다그몬)의 후손이란 의미가 있지요. 그 외에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9-10) 

 

 두 번째로 기록된 장수는 ‘엘르아살’인데, 얼마나 용사인지, 선봉장으로 주로 싸워서 강한 적군을 물리치면, 뒤따라오는 군사들은 싸울 필요도 없이 그저, 엘르아살을 뒤따라가면서 전리품만 챙겼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1-12)

 

 이 사람은 지형지물을 잘 활용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수가 많고 사기가 높아도 어떤 병목현상이 있는 밭의 입구에서 적들을 막아서 큰 승리를 얻은 전과(戰果)가 있습니다. 반면, 33절에 나오는 삼마는 같은 고향 사람이지만, 아버지가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3)

 

 다윗의 삼 십 용사가 있는데, 제일 뛰어난 사람들이 이 중에서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가 가장 첫 손에 꼽을 만한 장수들입니다.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4-16)

 

 다윗이 한 때, 블레셋과 전쟁에서 자기가 자란 베들레헴이 적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싸움을 하다가 굉장히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의 우물물이 마시고 싶다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이 세 장수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지,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적진 안으로 들어가서 적들을 죽이면서 우물물에 접근해서 물을 길어 온 것입니다. 다윗이 놀라서,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깨닫는 것이지요. 지도자는 함부로 자기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 그저 지나가는 한 마디 말로 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전에 우리 나라 노무현 대통령이 경호원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번은 청와대 뜰을 거닐다가 나무 이름이 궁금해서 옆에 있던 경호실장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이 나무가 무슨 나무요?” 했는데, 경호실장이 자기도 모르니까 그 날은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날이 되니까, 청와대 나무마다 명찰이 다 달렸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소나무’, 저 나무는 ‘잣나무’, ‘밤나무’ 등등. 그래서 그 뒤로는 노 대통령이 궁금해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도자가 될 사람들은 입을 가볍게 놀리면 안 됩니다. 다윗도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맹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더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 대장을 삼았더라.” (18-23)

 

 다윗의 두 번째 그룹의 3인 용사가 있는데, 요압, 아비새, 브나야입니다. 아마도 첫 삼인의 용사는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 쯤에는 은퇴를 했던지, 아니면 전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첫 그룹의 3인이 중요 요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을 보니까 그렇고. 요압이나 아비새나 이제까지 많이 등장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끝까지 다윗을 보필하고 나중에 아도니야의 반역에도 가담하지 않은 브나야가 솔로몬 왕이 즉위해서 다스릴 때까지 충신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4-25)

 

 아사헬은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을 쫓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주 날쌔고, 빠른 사람이었는데, 아브넬을 죽이고 전공을 세우려다가 그만 과욕으로 백전노장에게 당했지요. 그 외에 다윗의 나머지 용사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윗의 책사 아히도벨 아들 엘리암과 엘리암의 사위 헷 사람 우리아가 장인과 사위로 다윗의 부하였고, 실력이 출중하고 충성심이 강한 장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아스마웨ㅅ)과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소바 사람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26-39)

 

 우리가 다윗의 장수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여기 엘리암과 헷사람 우리아는 장인과 사위 관계입니다. 또, 다윗의 장수들이 꼭 유대나 이스라엘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암몬 사람도 있었고, 헷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능력 위주로 다윗이 선출했고, 군대 장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을 도와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데,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여러 나라와 민족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대한 사랑과 충성으로 섬기는 일군들이 하나님 나라 공신록에 기록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다윗도 이렇게 기록에 남겼는데, 하나님께서 그냥 잊으실까요? 전혀 잊지 않으시고, 그 행위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는 하늘나라의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다리며,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들을 충심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믿고 따르게 하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주님의 공의와 정의를 따라 행하게 하옵소서! 주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게 하시고, 주님 나라에 이르는 날, 주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는 주님의 일꾼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오며, 존귀하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로그인 회원가입

방문자 집계

  • 오늘 275
  • 어제 456
  • 최대 1,725
  • 전체 67,268

Copyright © metabible.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