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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사무엘상] 24장 사울을 살려주는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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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86회 작성일 2024-06-10 0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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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살려 주는 다윗>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1)

 

 블레셋의 침공을 막으러 갔던 사울이 전쟁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다윗을 잡으려고 군사 3,000명을 모집합니다.  사울의 관심은 블레셋이 아닙니다. 오직 다윗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블레셋이 침공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준비하고 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제거하는 데 관심이 온통 쏠려 있습니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2)

 

 지명이 참 재미있습니다. ‘들염소 바위’ 아마도 들염소들이 그 바위 곁에 자주 출몰했든지, 아니면 바위 생김새가 염소모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들염소 바위로 이름짓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지명을 공유했겠지요. 어째든, 우리 같으면, 무언가 표지판을 세워서라도 지명을 불렀을 텐데, 그냥 자연환경 속에서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이름을 붙였습니다.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3) 

 

 이스라엘은 목축을 주로 하기 때문에 들판이나 산골짜기 마다 양의 우리가 있습니다. 발굴된 이미지를 보세요! 

<출처, 광림교회 성지순례 이야기 17 - 목자들의 들판 동굴.  목자들의 들판 이곳 저곳에는 이런 동굴들이 산재해 있다.
광야에 양을 치러 나간 목자들은 밤이되면 이런 자연동굴을 우리로 삼는다>

 

 그런데, 이런 동굴이 있었습니다. 왕이 체통이 있으니까,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지 않습니다. 군사들과 조금 떨어져서 동굴에 들어가 볼 일도 보고,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낮잠을 잔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그 동굴 속에 다윗과 군사들이 숨어 있었던 곳이었지요.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4)

 

 다윗의 사람들이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자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여기에 덧붙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겠다” 하신 약속을 인용합니다(시2:9). 그리고 덧붙여서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셨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득하려고 합니다. 

 

 신앙인들이 여기서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이단들이 생겨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릴 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반된 것으로 유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따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유혹했습니다. 

 

 이 때 다윗은 부하들의 바램과 자신의 원한을 갚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원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으로 인정했고, 기름 부어 세우신 왕에 대해서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부하들이 사울 왕에게 손 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다윗은 대신 사울의 겉옷 일부를 칼로 베어서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5-7a)

 

 다윗은 사울 왕의 옷을 일부 벤 것도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어쩌면, 사울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사울을 죽이지 못하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전적으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을 일부분만 알면,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적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다윗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또, 레위기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19:18)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는 원수이지만, 동포입니다. 원망하지 말고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더 우선합니다. 

 

 우리에게는 신약성경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을 읽으면, 우리의 진정한 원수는 ‘사탄’, ‘마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사울 속에 있는 악령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울은 마귀에게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란 사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역사하는 악령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것을 간파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왜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지 모르면서 악한 영에 의해 조종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스데반이 자기 동족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 하나님께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영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띄어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7b-8)

 

 사울은 자기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동굴에서 나와서 자신의 군사들에게로 돌아갑니다. 사울의 뒤로 다윗은 어느 정도 떨어져 따라 나와 사울을 부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9-10)

 

 다윗은 사울에게 어떤 악한 신하가 자신을 모함해서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서 사울과 관계가 부드럽게 해결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사실, 본질은 사울이 다윗을 정적으로 여기고 죽이려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왕의 세습을 끊고, 자신의 가문을 멸절시킬 지도 모르겠다는 근심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마음이 없음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왕의 겉옷을 벤 조각을 보이며, 자신은 무죄함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신앙 때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능력있는 사람도 많고, 백성들의 인기를 끌어모을 수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이끌 사람,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사로운 감정보다 하나님의 명령과 뜻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일,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1-12)

 

 그리고 다윗은 사울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친아버지는 아닐지라도 사울은 다윗의 장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윤리.도덕적으로도 자신은 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물으실 것이라고 경고를 합니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3)

 

 다윗의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자기는 악인이 아니니까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자꾸 악을 행하려고 하면, 사울은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진리는 아닙니다. 다윗은 훗날 범죄하지 않습니까? 다윗의 이 말이 진리라면, 다윗도 악인이지요. 성경에서 최초의 범죄자는 아담과 하와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서 악을 행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악한 것보다 어리석음이 더 치명적일 수가 있다고 합니다. 무지한 사람이 악한 사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4)

 

 다윗은 자기가 사울을 해할 만큼 그런 정적일 아님을 다른 식으로 설득합니다. 자신은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합니다. 죽은 개나 심지어 벼룩이라고 자신은 능력있고 힘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사울 왕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15)

 

 어째든,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다윗의 마지막 호소는 사울의 신앙에 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다윗을 죽이거나 사로잡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6-18)

 

 사울이 다윗의 호소와 베어진 자신의 겉옷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다윗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본정신은 얼마 못가지요. 그러니까 단단히 악령에게 씌운 것입니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19-21)

 

 사울은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될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울이 자기 아들과 가문을 위해서 다윗을 제거하려는 것이지요. 사위도 자식인데, 친자식처럼은 안 되는가 봅니다. 아무튼 사울이 다윗에게 한 가지 요구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왕이 되더라도 자기 가문에게 복수를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사울이 참 염치가 없습니다. 자기는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아히멜렉의 제사장 가문을 몰살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고서 자신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다윗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시는지 보시면 알게 됩니다. 자기 당대에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반드시 갚아주시고 보복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알면, 함부로 죄를 짓기 어려운 것이지요. 우리가 우리 후손들, 자손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잘하고, 이 땅에서 선을 베풀면, 하나님께서 당대에는 크게 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후손들이 잘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23)

 

 지금은 사울이 다윗을 잡을 수 없지요. 좀 전에 자기 목숨을 살려 주고, 놓아 준 것을 다 알게 되었고, 사울의 군사들도 알았는데 어떻게 바로 다윗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또 시간이 흐르면, 사울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성으로 바르게 잡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지요.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아직 예수님이나 다윗처럼은 하지 못하지만, 우리도 성령의 사로잡히고, 말씀 가운데 깊이 은혜를 받으면, 변하여 새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우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지들에게 손해본 것이나 마음 아픈 상처가 있어도, 용서하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조그만 실수,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며, 복수를 다짐합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 삶을 돌아봅시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용서의 사람, 화평의 사람, 하나님을 닮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울과 다윗을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지 악한 일일지라도 거침없이 하려는 사울과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죽일 수 없고, 장인 어른 이기 때문에 더욱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다윗을 봅니다. 

 주님! 예수님을 닮은 다윗처럼 우리들도 우리 손으로 내 형제, 자매, 이웃들에게 항상 선을 행할 수 있게 하옵소서! 때론 원수가 집안 사람입니다. 그러할지라도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갖고 혹여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사울은 악령에게 사로잡혀 그 이성이 마비되고, 파렴치하여서 계속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망하고 아들도 가족들도 후손들도 망하게 합니다. 우리들은 성령의 사로잡히게 하여 주옵소서! 다윗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는 인내하며, 사랑하며 용서하며 선정을 펼쳐서 훗날 위대한 임금으로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아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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