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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사무엘상] 25장 나발과 아비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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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38회 작성일 2024-06-17 09: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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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1)

 

 사무엘의 죽음은 아주 큰 사건인데, 단 한 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무엘서를 읽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무엘이 죽은 후에도 계속 성경이 기록되어 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사무엘서를 사무엘이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분량이 많이 남아 있는데, 주인공이 이렇게 일찍 죽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면, 사무엘이란 이름으로 이 성경이 기록이 되었지만, 주인공은 아닌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사무엘상, 하서가 한 권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분량이 많으니까 나눈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마음 속으로 의지하던 영적 지도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는데, 앞으로도 계속 넘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다윗이 아마도 사무엘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식이 하루 이틀 만에 전해지지는 않았겠지만, 다윗은 조문(弔問)을 갈 수 없습니다. 아마 사울 왕이 국장(國葬)으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다윗이 소식을 듣고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울이 군사를 풀어서 잠복해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다윗은 어떤 이유인지, 에브라임 산지 라마 쪽(북쪽)이 아니라 숨어 지내던 엔게디에서 더 남쪽인 바란 광야로 이동을 합니다. 아마도 각처에서 사무엘의 장례를 위해 이동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 눈에 띄게 될까 염려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더 없는 쪽, 남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쫓기고, 두려움에 떠는 것이 유추가 됩니다. 그냥 있던 곳에서는 불안해서 더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했던 것이지요.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2)

 

 바란 광야를 기준으로 정북쪽에 마온이란 지역이 있습니다. 그 땅에 나발이란 사람이 있는데, 목축을 하고 심히 부자였습니다. 양이 삼천 마리, 염소가 천 마리가 있으니까 당대에는 굉장한 부자였고, 그 사람 밑에는 고용된 수많은 목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참 안 좋습니다. 나발, ‘어리석은 자’란 뜻인데, 학자들 가운데는 이것이 실제 이름이 아니라 사무엘 저자가 다윗에게 했던 배은망덕한 일을 가지고 이름을 그렇게 붙여 기록했다고  하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이제 양털을 깎게 되었습니다. 농사로 말하면, 추수 때가 된 것입니다. 수많은 양털을 얻게 되면,  한 해 동안 수고한 목자들을 위해서 잔치를 벌이고 또 품삯을 결산하게 되지요. 다윗에게는 수백이 넘는 식솔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합니다. 이런 때에 양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3) 

 

 나발이 갈렙 족속이라고 나옵니다. 갈렙 족속은 원래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데,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나온 갈렙의 후예들입니다. 이스라엘 12명의 정탐꾼 중에 한 사람이었고, 유다 지파를 대표하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이스라엘에 편입된 유다지파로 볼 수 있는데,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또 훌륭한 아내가 있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다윗이 나발이 자기 양 털을 깎는다 함을 광야에서 들은지라.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4-5)

 

 다윗이 바란 광야에 있으면서, 이 나발의 목자들을 보호해 주었고, 억지로 양이나 염소나 빼앗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바란 광야에서 일정부분 기여한 바가 있으니까 다윗은 나발에게 사람을 보내어, 먹을 것과 약간의 돈이나 물품 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7-8)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그런 좋은 날에는 객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베푸는 것이 이스라엘 문화입니다. 또 율법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다윗도 다른 날에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동안 보니까, 평상시에 나발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좀 도와 주면, 다윗의 형편을 살펴서, 충분히 도울 수 있을 만한 데도 전혀 모른 채합니다. 다윗이 염치 불구하고, 자기에게 딸린 식구가 많으니까 구체적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9-11)

 

 다윗이 심부름꾼을 보내서 뭔가 얻을 것을 좀 얻기를 바랬는데, 나발은 거절합니다. 단순히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모욕하고, 그동안 받은 호의와 은혜를 무시합니다. 나발이 정말 다윗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다윗을 ‘이새의 아들’ 이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주인(사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하면서, 다윗을 좇는 사람들에게도 치욕을 줍니다. 이 사람들을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12-13)

 

 다윗이 이 소리를 듣고, 크게 분노합니다. 그리고 나발의 일가를 모조리 도륙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400명이 칼을 차고, 잔칫날을 제삿날롤 바꾸려고 급하게 나발의 집을 치려고 준비합니다. 그리고 나발의 집으로 출발하지요.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4-16)

 

 다윗의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고 쫓아낸 모습을 나발의 하인들이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지혜로운 사람이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양들을 비롯한 가축들을 돌볼 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자기들에게 해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별로 중요하지도 주목을 받지도 않았던 한 사람이 나발의 집안에 닥칠 재앙을 피하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7)

 

 이 하인이 직접적으로 “다윗에게 필요한 양식을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비가일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준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이 말을 들은 아비가일은 급하게 다윗에게 필요한 양식을 준비시킵니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18-19)

 

 아비가일이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서둘러서 다윗에게 양식을 보낸 것은 참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남편에게 말했으면, 종들에게 양식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인이 주인은 불량해서 말이 안 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아비가일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기쁨’ 인데, 영어권 국가에서 ‘애비게일’이란 이름을 딸에게 많이 짓습니다. 바로 성경의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서 온 것이지요. 

 

 이 아비가일 같은 사람은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해서 다윗의 분노를 잠재웁니다. 이름대로 하나님의 기쁨이요, 다윗에게도 기쁨이요, 종들과 다윗의 사람들에게도 기쁨이 됩니다.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0)

 

 다윗이 산골짜기로 내려오면서, 나발의 가족들은 씨를 말리겠다고 씩씩대면서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때 아비가일의 종들과 예물,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비가일을 만나지요.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3-24)

 

 아비가일이 어떻게 다윗을 알아보았을까요? 수 백의 군사들을 보았겠지요? 다윗의 무리를 보자마다, 나귀에서 내려 절을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하고 문화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게 합니다.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5-26)

 

 아비가일은 자신을 ‘여종’으로 낮춥니다. 다윗은 반면에 ‘주’로 높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주의 종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응당 대접을 받지 못하였고, 그 모든 잘못 자기에게 있다고 합니다. ‘나발’은 미련한 사람이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합니다. 다윗이 피를 흘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셨다고 합니다. 다윗의 신앙을 아는 것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비가일이 다윗의 복수를 막았는데,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합니다.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7-28)

 

 나발은 다윗을 폄하하고 주인(사울)을 배반했다고 하는데, 아비가일은 다윗을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선한 분이고, 앞으로 장차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위를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아비가일은 굉장히 세상 돌아가는 정세도 꿰뚫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29-31)

 

 아비가일이 볼 때, 다윗의 원수는 현재 ‘사울’이고 하나님께서 원수에 대해서 보복하실 것이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즉 왕이 될 것인데, 왕으로 즉위할 때에 ‘나발’ 같은 사람을 죽였다는 악한 소문이 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합니다. 그리고 왕이 되면 자기를 좀 생각해 달라고 청탁도 합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32-34)

 

 다윗이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분노가 다 사그라졌고, 예물을 받았으니까 곱게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35)

 

 이렇게 다윗은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바란 광야의 피난처로 향합니다. 한 편 그날 나발은 술에 잔뜩 취해서 하루 종일 즐기고 자빠져 잡니다. 그 다음날에 아비가일이 어제 있었던 일, 다윗이 나발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왔었다고 전해 줍니다. 나발이 그 이야기를 듣고, 언제 다시 다윗의 군사들이 들이닥칠지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몸에 마비가 와서 10일 정도 있다가 죽게 됩니다.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39)

 

 다윗이 복수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보시고 다윗 대신에 나발을 죽이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런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다가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고, 억울한 일은 하나님께 호소하고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 지자, 다윗은 그 아비가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람을 보내 청혼을 하지요. 그래서 나발의 모든 재산과 재물과 종들이 다 다윗의 것이 됩니다.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그를 뒤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41-42)

 

 다윗은 아비가일 외에도 이스르엘 출신의 아히노암을 또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처였던 미갈은 사울이 다른 사람(발디)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기도) 하나님! 다윗의 기도의 후원자요, 다윗을 영적 멘토였던 사무엘이 죽자, 다윗은 심히 흔들리고 불안에 떨었습니다. 사울을 용서하고 살려 돌려 보낼 정도로 신앙이 깊었던 다윗이, 나발에게는 복수의 칼을 들었습니다. 

 

 주님! 저희들도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흔들리고, 범죄하기 쉬우니 항상 내주하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을 붙드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다윗 같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발의 집안의 한 이름 모를 슬기로운 종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나발의 가족들을 살리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큰 데,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우리의 가족, 친지, 이웃이 있다면, 바른 진리와 복음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저희들은 슬기롭게 지혜롭게 이 진리를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가정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지만, 벌 받을 자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보응하시고 보복하십니다. 우리들도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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