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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마태복음] 10장 12제자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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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81회 작성일 2024-08-08 07: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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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1)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갈릴리에서 7명을 뽑았습니다. 이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거의 한 동네에 사람들을 부르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처럼, 무슨 대학입시처럼 시험이나 고등학교 내신자료를 보시며 제자를 선발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점은 보통 사람들을 뽑아서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많은 학교나 직장에서 우수한 학생이나 직원을 뽑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서 뛰어난 사람을 뽑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시키면 누구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제자를 삼아서,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을 만큼의 열정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사도들로 만드셨다는 점이 위대하지요. 

 

 이 12명의 제자들의 이름이 여기에 나옵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2-4)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베드로’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면 ‘베드로’를 뽑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반석’인데, 원래 이름은 ‘시므온’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새로 붙여 주신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의 친동생 ‘안드레’이지요. 요한복음에는 이 안드레가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자기 친 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를 시킵니다. 즉, 안드레는 크게 무슨 사도의 역할을 했다기보다 자기 형을 주님께로 인도해서 큰 일군을 만든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많은데,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별합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2사람이 있는데, ‘세배대’라는 아버지를 둔 야고보와 알패오라고 하는 아버지를 둔 야고보가 있습니다. 이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히브리어로 ‘야곱’을 헬라말로 음사(音寫)한 것)는 요한이라는 동생이 있습니다. 이 형제가 함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제자 그룹 중에 핵심인물들입니다. 요한(요안네스)은 히브리어 이름 ‘요하난’ 또는 ‘예호하난’에서 유래했습니다. 예호바(여호와)와 하난(은총을 베풀다, 간청하다)이 합쳐져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빌립은 베드로와 한 동네인 벳새다에 살던 사람입니다(요1:44). 빌립은 ‘말(馬)을 사랑하는 자’ 라는 뜻으로 헬라 이름입니다. 빌립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유대식 이름이 있었을 텐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의 유대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나다나엘에게 소개시켰고, 계산이 빠르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사에 따르면, 소아시아 브루기아에서 선교를 하다가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바돌로매(돌로매의 아들)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다나엘'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명단에 들어있지만, 그의 행적이 복음서에는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인도와 아르메니아 지방에서 전도하였고, 피부가 벗겨지며 순교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마태는 지난 9장에서 살펴 보았고, 원래 히브리식 이름은 ‘레위’(연합이란 뜻) 인데, 자신은 계속해서 ‘세리 마태’라고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스스로 ‘레위’라고 부르기에는 이전의 삶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스스로를 낮추어서 그리스식 이름을 쓰고, 유대인을 위한 복음을 쓰지만 자신을 이방인처럼 소개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마태의 동생인 것 같습니다. (막2:14)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서 ‘작은 야고보’라고 불립니다. 그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람이 열심당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교회 역사가에 따르면, 이 사람이 기도를 무릎꿇고 많이 해서 낙타무릎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시리아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돌아 맞고 톱으로 켜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다대오(타대오)는 ‘마음이 크고 넓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는 ‘유다’라고도 불렸습니다. 유다가 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판 유다를 ‘가룟 유다’로 부르지요.  성경에는 그의 행적이 잘 나타나 있지 않은데, 외경 중에 다대오의 일대기를 기술한 “다대오전” 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는 시리아, 아라비아와 페르시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아르메니아의 에뎃사에서 바돌로매와 더불어 선교했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에 관해 칼에 맞아 죽었다는 설과 에뎃사에서 십자가 형을 받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순교했습니다. 

 

 가나나인 시몬은 아람어 ‘칸안’ 시몬으로 직역하면 열심있는 시몬이 됩니다. 그리스식으로 젤롯 시몬인데, 당시에 로마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만든 이스라엘 조직이 있습니다. ‘젤롯당’ 우리식으로 ‘열심당’으로 표현하는데, 이 사람이 아마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애국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로 열심을 내야하고, 나라가 잘 되는 길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환경을 만들어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좋은 세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사회 운동도 좋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을 참 구주로 믿게하고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따르도록 이끄는 것이 최고의 나라 사랑이요, 이웃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마태는 딱 한 마디로 잘라 버립니다. ‘예수를 판 자’ 한 때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하나로 재정을 담당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결국에는 배신자로 낙인 찍히는 그런 비참한 인생이 안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5-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권능을 주시면서 선교의 우선 대상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다른 곳보다 먼저 복음을 전파하게 하십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듣고 배우고 믿게 되면, 가장 먼저 가정과 친지들과 이웃들에게 가야 합니다. 물론, 이방 나라까지 복음을 전하면 좋겠지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가지고 무슨 장사치들처럼 ‘돈’을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변질이 되어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쓰는데,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복음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우리가 전달을 받았는데, 우리가 노력한 것 없이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와서 예배 드리고 헌금하는 것은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예물인데, 너무 강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알고 영접을 할 때까지는 그냥 편하게 와서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헌금바구니를 돌렸는데, 지금은 그냥 뒤편 한 쪽에 헌금함을 둔 것은 자율적으로 드리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만, 예배당 시절을 유지하고,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자기 몫을 드리는 것은 우리 교우들 사이에서 필요하지요. 그 정도도 부담이 되어서 못 나오겠다고 생각이 들면, 나라에 바치는 ‘세금’도 내지 말아야 하지요.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9-10)

 

 예수님께 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필요한 재정이나 어떤 것이든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공급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정말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최소한의 필요들은 공급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부자를 만들어 주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하늘 나라에서 받는 것이고,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채우십니다.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1-13)

 

 사역자들이 좀더 좋은 대접을 한다고 해서 자리를 옮기지요. 선교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좀더 편안한 잠자리, 좋은 식사, 풍성한 연보 때문에 옮겨 다닌다고 하면, 누가 그 복음을 진실된 것으로 믿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돈 때문에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복음의 진리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4-15)

 

 옛날 예수님 당시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주 소수였고, 다녀야 할 곳은 넓고 사람이 많아서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면서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씀을 하는데, 우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수 십년 동안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신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6-18)

 

 복음을 전하는 일꾼들이 세상에서 박해나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그래도 종교의 자유가 허락이 되어서 포교도 할 수 있고 하지만 이슬람권에서는 공개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은밀하게 해야 되는데, 친분을 쌓고 상대에게 개종을 권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드는지 모릅니다. 성인인 경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합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19-20)

 

 우리가 진심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말씀으로 충만해 져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말씀이 나올 정도로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복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생활하고 예수님처럼 말씀이 육신이 될 만큼, 그렇게 은혜 안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냉수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였고, 또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늘의 보화는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항상 하늘나라를 기대하며,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고, 주님께 파송을 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12제자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만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도 주님께 보냄을 받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말씀이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참 제자로 복음을 증거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능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귀신과 사탄 마귀의 역사가 사라지고, 참 복음의 자유가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게 하옵소서! 때로는 오해와 핍박과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겨내게 하시고, 끝까지 견디며,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와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복음을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흘려 보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믿고, 세상의 것에 연연하여 살지 않도록 큰 믿음을 주옵소서! 세상의 가치관과 향락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참으로 변화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혼란스럽고 탐욕스러운 세상에서 슬기롭고 지혜롭게 행하며, 거룩하고 성결하게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고, 가정과 사회와 나라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주님의 백성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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