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힘 (안드레아 만떼냐, 1457–1459)>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1-2)
예수님께서 불법한 재판을 받고, 이방 사람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집니다. 보통 새벽에 재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텐데, 밤중에 붙잡아서 새벽까지 심문하고 때리고 나서, 마지막에는 이방 사람 손에 넘겨 죽이려고 합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하나님께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의 가장 우두머리가 주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도 이에 동조하고 가담했습니다.
아마, 마지막 때에도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로만 카톨릭 교황이나 기독교 교단의 총회장이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일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교황은 이미 사탄에 넘어간 것 같고,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개혁교단도 돈과 권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3-5)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어떤 학자들에 따르면, 옛날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셨기 때문에, 유다가 자기 스승을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으면 실력발휘(?)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추정(推定)합니다. 예수님께서 예전에 천군천사를 12군단도 더 되게 불러올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군사들에게 포위를 당하면 그런 일을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하늘 군대로 심판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순히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 것과 같이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 같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점점 다가가십니다. 유다는 자신이 받았던 돈을 돌려 주면서, 바로잡아 보려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유다는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 자결합니다.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6-8)
유다가 던진 그 은 30세겔로 대제사장들은 ‘아겔다마’라 하는 공동묘지를 만듭니다. 그곳은 유다가 죽은 장소일 뿐만 아니라, 과거 예레미야 예언자가 활동했던 시대에는 ‘힌놈의 골짜기’로 불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고 남은 재를 버리던 곳으로 항상 짐승의 사체가 타고 썪는 고약한 냄새가 올라와서 점차 지옥의 장소로 비유되었습니다. 이곳이 지옥의 의미로 헬라어로 '게헨나'가 되고 유다가 죽어 가는 곳이 '지옥'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9-10)
관주에 보시면, 은 30세겔 이야기는 예레미야가 아니라 스가랴 책에 나옵니다(슥 11:12-13). 목자로서 양을 돌본 비용을 30세겔 밖에 쳐주지 않은 내용인데, 마태는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성인 노예 한 사람 몫을 받은 것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1-14)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예수님과 나눈 심문의 대화는 요한복음에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에만 인정을 하실 뿐, 스스로에 대한 변론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나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빌라도가 예수님의 그동안의 행적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특별히 로마제국에 대해서 반기를 들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때문에 예수님이 잡히신 것을 알고, 적당히 채찍질하여서 풀어 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어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5-18)
유월절 기간에 총독은 이스라엘 죄인 가운데 한 사람을 사면(赦免)시키는 관례를 했습니다. 피지배층인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 관대한 로마의 통치에 잘 협조를 얻기 위함이었지요. 악한 유대 출신의 통치자보다는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지요. 그전에 헤롯 대왕에게 지배를 당한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자기 아들까지 죽이는 폭군의 지배보다는 그래도 로마 총독이 낫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 때에 ‘바라바’라고 하는 살인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냥 살인자가 아니라, 우리 식으로 말하면, 독립운동가이면서 로마에 협력하는 매국노를 암살하는 그런 자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고, 오히려 병든 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려내니, 예수님을 풀어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19)
빌라도의 아내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 모르지만, 남편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죄도 뒤집어 씌우면 안 된다고 했지만, 빌라도는 여론 선동에 무너지게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0-2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도신경을 외웁니다. 그 신조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에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역사의 죄인이 된 것입니다. 차라리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지 않았다면, 그런 판결을 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높은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여론이나 다수의 군중에 떠밀려서 ‘죄’를 짓고 그 책임을 지게 되지 않으니까요. 재판이나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진리’ 편에 서야지, 두려움과 압박에 못 이겨서, 다수를 따라 죄를 지으면, 그 다수를 따라 함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할 때, 처절하게 심판을 받습니다. 약 10만 정도 거주하는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맞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까지 약 100만 명의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봉헌하고 있을 기간에 로마의 군대에 의해서 처절하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불과 40년 만에 이뤄집니다. 예수님을 죽인 그 피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는 그 무식하고 오만한 죄 때문에 당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항상 진리 편에 서도록 기도하고, 무리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지도자들도 여론이나 선전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항상 정의와 진리 편에 서서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7-31)
정말 성경에 기록되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조롱을 받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2)
보통 십자가는 못 박혀 죽을 사람이 지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시몬이라는 사람이 짊어졌을까요? 예수님은 평소 고된 사역과 잘 못 드셨는데다가 체포당하셔서 전날부터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뜰에서, 빌라도의 관정에서 예수님은 매질을 당해 몸이 무척 약해져 있어서 그런지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짊어질 수 없었습니다. 로마병정이 키레네(구레네) 북아프리카 북부 해안도시 출신 시몬을 붙잡아 도우라고 명령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의 부역은 어느 정도 강제력이 있어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시몬과 그 가정에 구원의 은혜가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억지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그 가정의 믿음의 뿌리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속담이 생겼습니다.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도 은혜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3-37)
쓸개 탄 포도주는 당시 진통제의 역할을 했습니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것인데, 십자가 사형수에게 당시에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전히 고통을 다 당하시고 이런 진통제(?) 같은 약은 거부하셨지요. 예수님의 죄명은 ‘유대인의 왕’으로 로마 속국에 대한 반역죄로 다스린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38-44)
예수님과 함께 달렸던 강도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욕하고 거부했지만, 그 중에 한 오른편 강도는 회개하고 예수님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기록이 되어 있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45-50)
낮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약 3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어둠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절규 후에 운명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외면하시고,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켜서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1-53)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있던 담을 예수님의 육체로 허무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
일시적으로 죽었던 많은 사람들이 잠시 부활해서, 종말에 있을 육체의 부활 사건을 보여 주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하늘의 나팔 소리가 울리고,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4)
수많은 사람을 십자가에 달려 죽였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도 예수님의 죽음을 곁에서 보면서, 고백한 것이 정말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5-57)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이제까지 숨어서 예수님을 믿었던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을 장례할 수 있도록 시체를 내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이사야의 예언자가 말한 대로 부자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게 되지요(사 53:9).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58-61)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나는 예수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요셉도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62-66)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거짓말에 속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그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믿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거짓을 위해서 예수의 제자들이 순교를 했을까요? 성경은 이른 바 ‘시체 도둑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피와 살을 내어 주시며, 사랑하셨고,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공중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세상의 권력과 부귀를 위해서 주님을 팔아먹지 않게 하시고, 어리석게도 유다처럼 주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압력에 못 이겨, 믿음을 버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어쩌다가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었지만, 주님의 백성이 되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십자가와 어려운 일들을 당할 때에, 구레네 시몬의 일을 생각하고 우리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가게 도와주옵소서! 또 성도로서 각자 져야하는 자기 십자가를 외면하지 말게 하시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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