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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마가복음] 4장 예부님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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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025-02-03 10: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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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로 만든 이미지 >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1)

 

 마가복음 4장에는 예수님의 비유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비유로 하셨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들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해석을 해 주시고 풀이를 해 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알아들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비유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왜곡하여서 수많은 이단들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진실로 예수님을 따르고 순종하기로 결단하면 그 수많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돕기 때문입니다. 

 

 1)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2-9)

 

 이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처음 들었을 때는 상식적이지 않은 농부의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귀한 씨를 길 가에 뿌릴 수가 있을까?’ 납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비유를 하시는 예수님이 정말 너무하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무런 딴지를 걸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상했습니다. 하다못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같은 대적들이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시오?”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논쟁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길 가에 씨를 뿌리거나 돌밭에 씨를 뿌리거나 ‘가시떨기’가 있는 곳에 씨를 뿌리는 것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면, 대체로 하우스와 같은 온실을 만들어서 정말 비료를 아낌없이 주고, 애지중지 키우는 농부들의 땀과 수고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씨가 얼나마 귀하고 비싼데 그렇게 허비하고 낭비되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고고학이나 문화사 같은 학문이 발전하면서, 당시 유대인들의 농사법은 오늘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선 비가 잘 내리지 않는 팔레스타인 땅은 매우 딱딱한 상태에서 밭을 갈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밭에 미리 씨를 뿌려 놓고, 비가 내리면 그제서야 흙을 잘 덮어 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러니까 밭의 일부분은 농부가 걸어다니는 길이 되고, 일부 돌이나 자갈을 한쪽에 모아놓으면 돌밭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싹보다 먼저 잡초가 자라면 가시떨기가 있는 밭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농사모습이 당시의 풍경이었으니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하셨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듣고 잊어버리고 넘어간 것이지요.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비유의 속뜻을 알려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이런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찾아보지도 않고, 생각없이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배의 자리에까지 나왔지만, 딴 생각이나 하고 집중하지 못하여 설교를 듣고도 아무 생각없이 사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간구하고 묻고, 바르게 알 때까지 찾고 두드리고 간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10-12)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또 읽으면서 우리도 외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죄 사함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3-15)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다. 참 안타깝지요. 이 사탄이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밭이 굳어져서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씨앗을 뺏어가 버립니다.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참 완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무시하고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밭이 되지 말도록 기경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는 ‘농부’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잘 심겨져서 열매를 맺도록.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6-17)

 

  환난과 박해는 어떤 면에서는 돌과 같습니다. 돌이 흙을 짓누르고 있으면, 싹을 틔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큰 환난과 박해의 때에는 정말 그리스도인이 소수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오늘날은 큰 환난이나 박해가 그리 많지 않은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신앙이 자라야 하겠습니다. 때가 되면, 더 이상 열매를 맺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가 닥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18-19)

 

 우리 옆에 자라나는 세상 사람들을 보면, 아주 탐스럽고 싱싱하고 줄기도 굵고 강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하여,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게 됩니다. 전혀 걱정할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좀더 좋은 옷, 좋은 집, 맛 있는 음식, 다른 사람들의 시선 등을 신경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관심에서 예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오직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염려와 물질의 유혹과 기타 욕심으로 인해서 열매는 못 맺게 되지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20)

 

 그러나, 좋은 땅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좋은 땅이 되어, 많은 성령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등불 비유 (21-22)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1-22)

 

 이 등불은 상징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지요. 공생애 마지막에 예루살렘 성 밖의 골고다 언덕에 높이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달리시는데, 마치 등경(燈檠)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구원의 빛’이십니다. 마지막 때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데, 못 보는 곳이 없을 정도로 밝히 빛을 비추어서 모든 죄악들을 낱낱이 드러내실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적용하면, 모든 교회들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을 선포하며 주님을 드러낼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핑계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만 교회가 5만개가 있는데, 세계의 곳곳에 교회들이 있었고, 복음을 들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부인할 수도 없고, 복음을 못 들어봤다고 핑계댈 수도 없을 것입니다. 

 

 3) 자라나는 씨의 비유 (26-29)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26-29)

 

 예수님께서 복음의 ‘씨’를 이 세상에 뿌렸는데, 얼마 안 가서 12명의 제자들이 생기더니, 70명, 120명 점점 늘어나고, 사도들의 시대에는 3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들이 생깁니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아프리카나 외딴 섬에 복음이 들어가서 믿는 사람들이 생겼는지 잘 압니까? 모르지요. 우리 나라도 성경책이 먼저 전해졌는데,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들어와보니, 믿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신부도 세우고 세례도 주고 하는 일을 알게 됩니다. 교회사에 보면, 너무도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그 과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성령으로 일하셔서 믿는 자들이 세워집니다. 이 자라나는 씨의 비유가 꼭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거두시는 것은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4) 겨자씨 비유 (30-32)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0-32)

 

 겨자씨 비유는 좀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겨자씨가 굉장히 작은 데, 아마 제가 본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심겨져서 싹이 트고 자라면, 상당히 큰 나무가 됩니다. 2미터가 넘게 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미약한 복음 같지만, 그 씨 안에 생명력이 있으니까 자라고 성장하고 결국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원래 새들은 이 씨앗을 찾아서 쪼아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겨자나무가 되면, 오히려 그런 새들도 그 겨자나무의 혜택을 봅니다. 그래서, 원수도 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빗대기도 합니다. 원수가 사실 우리들이지요.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원수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이시니 얼마나 큰 은혜요 사랑입니까! 

 

 팔레스타인 지역은 상당히 많은 광야가 있는데, 그 광야 같은 곳에서 잠시 쉬어갈 그늘이 필요한데, 새들도 이런 나무 그늘이 필요하지요. 복음은 우리 영혼에게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이 안식처가 없으면 영이 죽습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길을 잃고 해메는 이들에게 참 복음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33-34)

 

 사람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표면적인 내용은 잘 알아들었지만, 비유 속에 감추어진 깊은 하나님의 뜻은 바르게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로부터 이 비유의 해석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적 : 풍랑이는 갈릴리 바다를 잠잠케 하심 (35-41)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5-37)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다른 곳으로 전도하시기 위해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38-39) 

 

 얼마나 사역에 피곤 하셨는지, 배를 타시고 예수님은 주무십니다. 배가 흔들리고, 어부출신 제자들이 아무리 풍랑을 이겨내려 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다급하면 예수님을 깨우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바람을 향해 꾸짖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잠잠해집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람이 무슨 인격체도 아니고, 동식물도 아닌 데,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움직임이 멈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이 창조세계가 있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40-41)

 

 예수님은 자신이 함께 있는데, 제자들이 바람 앞에 두려워 떠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이 분이 누구이시기에 바람도 바다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가!” 하면서 놀라지요. 우리들도 직접 경험하면, 제자들처럼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무생물 같은 존재도 예수님의 명령 앞에 굴복하고 순종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불순종하고, 자기 의지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할 뿐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바르게 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해석해 주신 말씀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만이 온 세상의 빛이요, 구원자심을 알아 주님을 전하고 증거하며, 주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창조주십니다. 바람과 바다까지도 순종하는데, 만물의 영장으로 삼으신 인간이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듣지 않는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말씀 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가짐이 바르게 변화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순종하는 저희들과 모든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참 진리요, 빛이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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