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기도회

[마태복음] 2장 예수님의 유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01회 작성일 2024-06-05 13:48:57

본문

<헤롯의 가계도>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

 

 예수님은 헤롯 대왕 때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당시 헤롯 대왕은 기원전 1세기 사람으로, 가나안 지역을 통치하였고, 헤롯 왕조의 창시자입니다. 에돔 출신으로 다윗 가문의 후손이 아니라서, 항상 유대인들의 반발을 염려하여 정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볼 때, 솔로몬 성전처럼, 화려한 성전을 유대인들에게 지어 주고 환심을 사려고 했고, 하스몬 왕가의 공주와 결혼을 함으로 유다 왕가의 정통성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4년 경에 죽었기 때문에, 사실 예수님은 AD 0년에 탄생하신 것이 아니고 BC 6년 즘에 태어났을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아무튼 예수님께서 탄생하시자 바로 동방의 박사들이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누가복음의 말씀과 마태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성극을 하는 것을 보면, 목자들이 와서 구유에 뉘이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동방 박사들이(천문학자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경배한 것으로 표현하는데,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1~2년이 지난 후에 찾아온 것이 맞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태어나시고 8일 만에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안나와 시므온 같은 사람들의 안겨 축복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한 동안 베들레헴에 머물렀는데, 그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이 계속 가축 우리에 지낸 것이 아니라 집을 구해서 거처를 옮겼을 것입니다(11). 아기 예수가 어느 정도 자라서 돌을 지났을 무렵, 동방의 천문학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오지요. 아마 왕이 태어난 곳이 왕이 살고 있는 수도의 왕궁이 아닐까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2-3) 

 

 헤롯 왕은 자신을 알현하여서 무언가 대접을 받을 줄 알았는데,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분을 뵈러 왔다고 하니,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자신이 유대의 왕인데, 자기 말고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반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탐욕스럽고 권력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 나신 왕,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물론,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유대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왕위도 내 놓을 수 있는 멋진 인품의 사람으로 포장을 하겠지만 말입니다. 

 

 헤롯은 로마 황제가 반역에 의해서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도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온갖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들이, 자기 아내가 자신을 죽이고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져서 아내와 두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잔혹함을 보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예수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심히 당황하고 소란했습니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3-5)

 

 헤롯이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가 어디에서 나올지 알아내기 위해서 성경을 아는 대제상과 서기관들을 소집합니다. 그들은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정보를 구할 때, 순순히 진실을 말합니다. 완전히 헤롯에게 충성을 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태어난 것을 이방 나라의 학자들은 알고서 이스라엘 땅으로 왔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메시야가 왔음에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또 다시 벌어질까 두렵습니다. 성경을 안다고 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세상의 권력자에게 순순히 모든 정보를 제공하면서, 다시 오실 메시야를 대적하는 일에 앞장설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다행인 것은 초림의 예수는 아주 낮고 천한 곳으로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서 누구나 볼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혁혁한 위엄과 권세로써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의 답은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는 것입니다. 예언자 미가에 의해서 수백 년 전에 예언된 것이고, 성경을 안다고 하는 당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렇게 알고 믿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한 작은 마굿간의 구유에 뉘이셨지요.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7-8)

 

 헤롯은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그 메시야를 죽이겠다는 음모가 있지만, 겉으로는 ‘나도 가서 아기에게 경배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박사들이 그 별을   발견한 것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아니라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을 준비를 하고 왕을 위한 예물도 준비하여서 수 개월을 거쳐서 찾아온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헤롯이 베들레헴 출신의 영아들을 죽이는데, 2살 밑의 아이들을 몰살하라는 아주 악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 정치인들의 말은 90%는 거짓말로 믿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릅니다. */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9-10)

 

 이방의 학자들이 예루살렘 왕궁에서 나와 베들레헴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전에 관측했던 메시야의 별이 떠오른 것입니다. 이들은 밤에 숙소에 머무를 겨를 없이 다시 여장을 꾸려서 베들레헴 쪽으로 별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갑니다. 

 

 이 별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 분명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별을 다시 등장시키셨을까요? 성경도 모르지만, 그리고 비록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진리를 찾고, 세상의 주인을 찾고 섬기려는 그 마음을 보시고, 그들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메시지를 주신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복음이, 진리가 전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놀라운 이적과 기사와 다른 수단을 통해서라도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을 누가 창조하셨는지, 누가 해와 달과 별들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지 궁금해하고 찾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위대하신 창조주를 겸허히 섬기고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히 피조물인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지각을 주시고,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언어를 주심도 그런 이유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1)

 

 동방에서부터 유대인의 왕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먼 곳을 떠나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만나게 끝까지 인도한 것도 ‘별’이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참 하나님이요 참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수단’은 다르겠지만, 그 계획과 섭리와 이끄심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그리스도께 나아가거나, 찾거나 만날 수 없을 뿐더러, 경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12)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섬김과 경배를 다른 악한 헤롯과 같은 사람이 이용하여 메시야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지시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3-15)

 

 요셉이 정확하게 언제 꿈을 꾸었는지 모르지만, 베들레헴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이집트로 아기 예수님과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떠납니다. 요셉의 직업이 목수로 알려 졌는데, ‘석수’가 더 맞다고 봅니다. 유대 땅보다는 이집트에 더 일자리도 있었겠지요. 아무튼 이것을 마태는 옛 선지자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집트에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불러 내셨다고 합니다. 원래 의미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직 나라를 이루기 전에, 해방시키시고 가나안 땅에 들이셨습니다. 그것을 언급한 말씀인데, 이중적인 의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린 시절 이집트에서 잠깐 머무르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신 것을 예언한 말씀도 된다는 것이지요. 어째든 이집트에서 얼마 동안 있다가 누가복음에 보면,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 지역으로 가게 됩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6)

 

 한 편 헤롯은 메시야로 태어난 아기를 죽이려고 동방 박사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위치를 알아서 조용히 자객을 보내서 죽이려고 했는데, 박사들이 오지 않으니까 무리수를 던집니다. 그 별이 나타난 시기를 계산해서 2살 아래 베들레헴에 있는 아기들을 전부 죽입니다.  헤롯의 잔악성과 포악함을 우리가 엿볼 수 있습니다. 

 

 /* 정확한 기사인지 알 수 없지만 깔뱅의 주석서에 보면, 이 2살 미만의 남자 아이를 죽일 때, 헤롯의 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도 죽게 되는데, 이 사건을 들은 로마 황제가 이런 유머를 했다고 합니다. “헤롯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보다 돼지로 태어나는 것이 낫지 않는가!” */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7-18)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땅인데,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도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남긴 그의 예언서 31장에 나오는 ‘통곡하는 소리’는 그 당시에는 남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게 됩니다. 그 곳이 바로 ‘라마’이지요. 그 때부터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 땅이 됩니다. 사사시대에는 거의 베냐민지파가 학살 당하여서 거의 멸절하게 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시대 조금 전에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있었고, 곧 남유다 왕국도 멸망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때에는 수많은 유다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살아 남은 자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벌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 헤롯의 잔악무도함 때문에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예언서에 나타난 ‘통곡하는 소리’에 대한 것이 시대가 흘러서 예수님 당시에도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마태가 인용합니다. 그래서 더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이미 구약에서 모형적으로 있었던 사건임을 후대에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지나간 사건이니까 오늘날에는 필요없는 것이 아닌가 하여 구약 성경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이단들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도 이 구약의 예언들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예표적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고 주의 깊게 성경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18-20)

 

 이렇게 악한 헤롯이 권좌(權座)에 오래 붙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고, 다시 요셉에게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유대 땅에 다시 들어갈 용기가 없었지요. 두려움 때문인지,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22-23)

 

 아켈라오는 헤롯의 아들입니다. 헤롯이 죽고 유대와 이두매 지역의 통치자가 됩니다. 아버지처럼 모든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지 못하고 형제들과 땅을 나눠서 다스리게 됩니다. 이 사람도 역시 헤롯처럼 악하고 잔인해서 요셉은 베들레헴 땅으로 가지 못하고 나사렛 땅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 어디에도 나사렛이란 지명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깡촌인데,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자랄 것이라고 예언되었다고 마태는 소개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나사렛’이란 지명보다 ‘나사렛 사람’, ‘나실인’ 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성별된 사람’의 뜻으로 예수님을 해석합니다. 민수기에 나실인에 대한 규레들이 자세하게 나오는데, 사실 나실인 서약을 한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삼손 정도가 모태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었다는 것이 나오지만, 진정한 나실인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분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모세 5경, 민수기에 나온 나실인 규례는 아마도 신약의 예수님을 위해서 존재한 규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구약의 많은 성경에서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실 메시야, 그리스도는 예수님인 것이 분명하다고 마태는 증거합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읽으면서, 영적인 눈이 떠져서, 예수님을 진정한 나의 주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연약할 때에 외부의 적들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이렇게 장성할 때까지 건강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들도 주님께서 보호하시어, 악한 통치자들에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과 여러 환난과 사건으로부터 안전케 하옵소서! .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말씀대로 베들레헴에 오셨고, 나실인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자라나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경배하러 온 동방의 박사들은 기쁨으로 아기 예수님을 뵈옵고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자신의 권좌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헤롯은 수많은 아이들을 죽이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헤롯과 같이 메시야를 부정하고 대적하며 겉으로는 주님을 섬기려고 한다고 거짓을 늘어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동방의 박사들처럼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주님을 높이며 주님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늘 마음에 모시며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의 구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로그인 회원가입

방문자 집계

  • 오늘 170
  • 어제 279
  • 최대 1,086
  • 전체 47,635

Copyright © metabible.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