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8세기 중반 시리아-팔레스타인 ⓒ위키피디아
* 아람 나라의 시작
아람 나라가 도시 국가에서 왕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쇠퇴할 때입니다. 솔로몬 왕의 통치 말기이지요. 이 때에 다메섹과 수리아의 왕, 르손이 즉위합니다. 아람 왕국의 시작이지요. 르손은 아람 소바의 왕 하닷에셀을 섬기는 신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맛에셀을 버리고 다메섹으로 가서 그곳에서 왕이 되어 다메섹을 수도로 하는 아람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자기에게 모으고 그 무리의 괴수가 되어 다메섹으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왕상11:23-25)
르손에 의해 시작된 아람 나라는 성장하여 B.C. 9세기 경에는 바벨론으로부터 지중해 해안에 이르기까지 메소포타미안 전 지역이 아람인들의 수중에 넘어가게 됩니다. 이 때부터 아람은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앗시리아를 아람이 삼킬 듯이 거의 포위할 정도로 아람은 국력은 강했습니다. 이 때의 아람 왕의 이름이 벤 하닷(1세)입니다. 벤-하닷(Ben hadad)은 ‘하닷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이후 다메섹 아람 왕을 일컫는 고유 명사가 됩니다. 그리고 하닷은 ‘우뢰의 신’입니다. 즉, ‘벤 하닷’은 ‘우뢰 신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강한 왕권을 가진 왕국의 왕명으로는 적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람 나라에 대한 문헌 기록은 성경 외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아람은 아람 나라가 멸망한 후 앗시리아의 민족 말살 정책에 의해 정체성을 잃어 버렸기에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경에 모두 3명의 벤 하닷이 등장합니다. 벤 하닷 1, 2, 3세로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세습으로 왕위를 이은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기록에 없는 또 다른 왕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성경을 토대로 아람 왕조의 왕들의 이름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르손 -> ② 벤하닷 1세 (B.C. 874~853) -> ③ 벤하닷 2세 (B.C. 853~841)->
④ 하사엘 (B.C. 840~797) -> ⑤ 벤하닷 3세 (B.C. 796~770) -> ...
*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전쟁사
1) 벤 하닷 1세의 이스라엘 침공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왕상 15:18-20)
벤 하닷1세는 르손의 아들은 아닙니다. 벤 하닷의 아버지는 다브림몬이고 다브림몬의 아버지는 헤시온인데, 르손 왕과 일치되지 않습니다. 벤 하닷 1세는 르손과 약 60년의 시간 간격이 존재합니다. 르손은 솔로몬 왕 통치 후기인 B.C. 930년 이전의 사람이고, 벤 하닷 1세는 아사 왕 36년, 곧 874년에 그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르손과 벤 하닷은 부계로 이어지는 왕위 세습이 아니며 르손과 벤 하닷1세 사이에 적어도 한 두 명의 왕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이 벤 하닷의 아버지 헤시온과 할아버지 다브림몬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벤 하닷은 북 이스라엘 바아사 왕과 동맹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아사가 많은 재물을 보내어 자신의 편에 서 줄 것을 요청하자, 그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배신하고 이스라엘의 북쪽 성읍들을 공격합니다.
2) 벤 하닷 2세의 이스라엘 침공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 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보내 이르기를 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사신들이 다시 와서 이르되 벤하닷이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게 넘기라 하였거니와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왕상 20:1-6)
벤 하닷 2세는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B.C. 874~853)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벤 하닷 1세와 벤 하닷 2세가 같은 인물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벤 하닷 2세는 아합 왕과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으며, 군대를 거느리고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가 거절당합니다.
그리고 벤 하닷의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와 2번의 전투를 치루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객관적인 전력과 달리 벤 하닷은 이스라엘에게 패하였고, 그는 결국 아합 왕에게 쫒겨 생명을 구걸하는 신세로 역전됩니다. 아합은 벤 하닷을 사로잡았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그를 놓아 주고 아람 나라로 돌려 보냅니다. 벤 하닷2세는 다메섹에 아합 왕을 위한 거리를 만들며, 벤하닷 1세가 빼았었던 사마리아 성읍들을 돌려 주겠다고 약속을 하지요.
그 후 이스라엘과 아람은 3년 동안 전쟁 없이 지내게 되었고, B.C. 853년 공동의 적인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가 침략하게 되었을 때 이집트를 포함하여 모두 12개국으로 구성된 서부연합군이 앗수르에 대적하게 됩니다. 이 전투가 카르카르(Qurqur) 전투이지이요. 이 때 이스라엘과 아람이 주도적인 역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전투가 있은 후 얼마 안되어 아합 왕과 길르앗 라못에서 3번 째의 전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때 아합 왕은 전사하지요.
열왕기하 6~7장에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 왕(B.C. 852~841년) 때에 벤하닷 2세의 아람 군대와 엘리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때에도 아람과 이스라엘은 전쟁 중에 있었고, 엘리사는 벤하닷이 하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여호람 왕에게 그의 모든 작전 계획을 알려줍니다. 그러자 벤하닷 2세는 엘리사를 제거할 작전을 세우고 엘리사의 집을 포위하는데, 이 때에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엘리사의 사환의 눈을 열어 엘리사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아람 군대를 또 다시 둘러싼 하늘의 군대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는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피해 사마리아로 엘리사와 사환을 인도하게 하시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일으키시지요.
이 후 벤하닷 2세는 군대를 모아 사마리아 성을 포위합니다. 이때 사마리아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도 되고, 모든 물자가 바닥이 나게 되자 서로의 아이들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아람 군대를 쫓아내셨는데, 이 역시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서지요. 이와 같은 사건이 있은 후 벤하닷 2세는 병이 들게 되고, 하사엘에 의해 암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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