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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사무엘상] 29-30장 다윗의 위기와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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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13회 작성일 2024-07-07 11: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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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J. 티소(James J. Tissot), '포로로 잡혀간 시글락의 여성들' (1896-1902)>

 

 다윗이 블레셋의 아기스 왕에게 망명한 것이 큰 잘못임을 알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아기스의 요청에 의해서 이스라엘과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1-2)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자주 전쟁을 하는 곳이 ‘아벡’이란 곳입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곳에서 엘리 대제사장 말기에 전쟁이 있었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되는 곳이 아닙니까? 역시 사무엘상 31장에는 사울 왕과 이스라엘이 여기서부터 시작된 전쟁에서 패하여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참 묘하게 하나님의 심판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다윗도 이곳에서 전쟁을 했다면, 아마도 죽음을 면하지 못할 텐데, 다윗은 이 전쟁에서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현장에 있으면, 죄인들은 모두 심판을 받을 텐데, 이곳에 있지 않도록 다른 길을 열어 주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3-4)

 

 아기스 왕은 다윗을 자기의 충성스러운 부하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블레셋의 왕들은 이 전쟁에서 다윗이 반드시 자기들을 죽이고 사울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옆에서 보는 아기스는 다윗을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데, 먼 곳에 다른 사람들은 다윗이 어떻게 나올지를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참 신기하게도 오늘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재현됩니다. 가까운 곳은 못 보고 멀리는 봅니다. 비슷한 우리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그 육신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야고보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믿게 되었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십니다. 또, 예수님과 한 동네 살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다른 마을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유숙하기를 청합니다. 

 

 다윗이 아벡에서의 전쟁에 참여하면, 반드시 아기스나 그 블레셋의 왕들의 목을 베어서 사울에게 가져갔을 것이고, 가져갔다 한들, 다윗도 사울에게 붙잡혀서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영원히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께도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아기스를 위해 싸운다면,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5-7)

 

 아기스는 다른 블레셋의 왕들 때문에 다윗을 시글락으로 돌려 보냅니다. 성경에는 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곳에서 피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아기스의 명령을 따를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서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8-10)

 

 다윗이 ‘돌아가라’는 아기스의 말에 기뻐하는 얼굴낯을 하면 안 되겠지요. 마음은 쾌재를 부르지만, 겉으로는 아기스 왕의 원수를 제가 죽여야 하는데, 왜 기회를 안 주시냐면서 성을 냅니다. 그래야 아기스가 다윗을 더 신임할 것 아닙니까? 이런 것을 보면, 다윗이 굉장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렇게 생각과 행동을 다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로 ‘포커 페이스’ 라고 합니까? 남을 속이는 표정. 우리 같은 사람은 얼굴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금방 드러나니까 속이기도 쉽지 않지요?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되고, 그저 성실하게 주님의 일에나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11)

 

 이렇게 다윗은 다시 시글락으로 향하는데,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할 동안, 시글락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30장에 나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0:1-2) 

 

 다윗이 600명의 군사들과 아벡으로 향할 때,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에 쳐들어 옵니다. 왜 쳐들어 올까요? 다윗이 아기스에 잘 보이려고 아말렉 사람들을 비롯해서 그술 사람이라든지 가나안 사람들을 죽이고 노략하지 않았습니까? 아말렉 사람들이 다시 되찾아 오려고 마을에는 불을 지르지만,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서 데려갑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 중에는 아말렉 출신 사람들이 섞여 있을 것으로 알고 사로잡아 가서 자기들 본거지에서 이제 죽일 사람을 죽이고 살릴 사람은 살리려고 했겠지요. 

 

 네겝은 다윗 때문에 억울하게 침략을 당한 것입니다. 다윗이 유대 사람이니까 혹시 네겝에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침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아말렉은 약한 민족이나 여성들, 어린 아이들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통해 살아가는 민족이거든요. 그러니까 다윗과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보고, 가장 약할 때에 침략해 와서 싹 다 잡아갑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30:3-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시글락에 돌아와보니, 성읍은 불에 타서 쑥대밭이 되었고 아내와 자식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모두 울고 불고, 아내와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방을 뛰어 다녔겠지요. 속된 말로, ‘멘붕’이 왔는데, 이 모든 책임을 다윗이 져야 합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다윗을 죽이려고 덤벼듭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6)

 

 만약에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계속 싸웠다면, 아내와 자식들은 모두 아말렉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갔을 것이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다 쳐도 그동안의 일이 탄로가 나지 않겠습니까? 다윗의 부하들에게 암살을 당하든지 어떻든 끝장이 났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고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 주시려는 것이라고 믿으면,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이 소리쳤겠지요. 

 “지금 나를 죽이기 전에 아말렉에게 가서 복수를 하고 나를 죽이라. 우리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지 않게 막아 주신 하나님께서 혹시 우리의 모든 자식들을 되찾을 수 있게 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다윗을 죽이는 일은 뒤로 하고 우선, 아말렉을 쫓아가서 그들을 따라잡고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아비아달 제사장의 에봇을 통해 하나님께 묻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30:7-8)

 

 다윗이 그의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서두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이요, 회복입니다.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30:9-10)

 

 쉬지도 않고 계속 추격합니다. 그런데, 울고 불고 정신을 잃고 했던 사람들이 200명이 그만 지쳐서 더 이상 그들은 추격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어렵고 위기가 닥쳐도, 체력관리를 해야 합니다. 먹을 것을 먹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길이 있다.’ 하는 속담처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치진 200명은 브솔 시내에 놔두고, 다윗은 400명만 시내를 건너서 아말렉을 추격합니다.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30:11-12)

 

 추격하다가 길에 버려진 이집트 사람 하나를 만납니다. 다윗이 그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아말렉 사람들에 대해 묻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30:13-14)

 

 그는 시글락을 침략했던 아말렉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말렉 주인을 따라서 같이 노략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들어 죽게 되니까 길에서 맹수의 밥이나 되라면서 버리고 떠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을 잘 읽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죄’의 노예가 되어서 온갖 악행을 다하면, 그 당시에는 여러 가지 재물을 얻어서 좋았다고 할지 모르나, 병들거나 다치거나 죽게 되면,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온 세상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이나 사탄이나 죄를 쫓으면 멸망할 것입니다. 

 

  다윗에게 제안을 합니다. 이번 전쟁에 참전해서 공로를 세우면, 영원히 내 곁에서 경호대장으로 삼아서 존귀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군사들도 이 전쟁에 모두 참여하라는 것이지요.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30:15-16)

 

 이 이집트 종이 다윗과 그의 군사를 인도해서 아말렉 사람들이 있는 진영에 도달합니다. 가서 보니까, 아말렉이 자기 집에 가지도 않았는데, 길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노략물로 인해서 매우 기뻐하면서, 즐기고 있지요. 취해서 싸울 수 없고 도망을 갈 수도 없을 때, 다윗이 급습합니다.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30:17-20)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위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도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살면서 이런 저런 위기가 닥칩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내 생각과 내 판단대로 행동하고 말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면 안 됩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지난 날의 잘못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에게 닥친 이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시글락에 아무 일이 없으면, 다윗은 그대로 눌러 앉아 살게 될 것입니다. 시글락이 불타고 그 근거지가 사라져 버리니까 이 사람들이 다시 어디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까? 고향 땅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 것이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모든 것이 불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말 것들입니다. 수많은 재산과 재물을 쌓아 놓는다 해도 좀 있으면 다 흩어져서 없어져 버릴 것이고, 노력도 하지 않고 차지하는 사람이 가져갑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이 땅의 세상을 불로써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30:21-22)

 

 하나님의 은혜로 빼앗겼던 사람들,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거기에 재물도 되찾았습니다. 그러면 감사할 것 뿐인데, 되찾아올 때, 끝까지 가서 술취한 적군을 죽이고 노략하지 않고 빠진 사람들은 사람만 돌려 주자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하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성도들이 그곳에서 자기의 공로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자기들이 가서 행한 것이 있지 않냐면서 동일한 대접을 받게 하면 안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런 것은 우리가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여기 다윗은 어떻게 자기 공동체를 다독이는지 봅시다.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30:23-25)

 

 다윗이 먼저 하는 말은 모든 공로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인데, 우리가 서로 다투고 욕심을 부릴 것이 무엇이냐며 사이좋게 나누자고 합니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했던 군사들이나 뒤에서 지킨 사람이나 똑같이 나눕니다. 그 전까지는 율법에 명시가 되어 있어도, 전쟁 분깃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잘 적용을 못했는데, 다윗 시대에 와서는 이것이 전통이 된 것이지요. 좋은 전통은 본받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 아로엘에 있는 자와 십못에 있는 자와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와 라갈에 있는 자와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겐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30:26-31)

 

 다윗이 자기들의 군사들에게만 전리품을 나눈 것이 아니라, 아말렉에게서 빼앗은 것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많은 지역에 이 전리품을 보냅니다. 왜 보냈을까요? 다윗이 계속 블레셋의 가드에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지 자기들을 맞아 줄 곳을 찾은 것이지요. 

 

 곧 다음 장에서는 사울과 그 아들과 군사들이 전쟁에서 패해서 죽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써 다윗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열리게 됩니다. 성경에는 정확하게 해설하고 있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는데,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훈련을 시킨 다음에는 적절한 때에 왕으로 등극하게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도 때로는 여러 가지 환난이나 위기가 닥치면, 너무 좌절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다 포기하고 낙심했으면 자기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져서 망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죄를 짓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을까요? 다 아십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것을 알지만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자기나 주변 사람만을 볼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택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이제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다윗도 실수 연발을 하지만, 기가막힐 웅덩이에서 건지셨는데, 우리를 왜 못 도우시겠습니까?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오늘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잘못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며, 우리의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이 자기 민족이나 하나님을 배반할 절대 위기의 순간에 개입하셔서, 죄를 범치 않게 빼내어 주시고, 가족과 재물을 잃을 위기에서도 건져 주심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일이 죄악으로 치닫고 범죄하는 길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에도 역사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으며, 우리의 인생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을 항상 기억하며, 오늘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항상 감사하게 하옵소서!  

 

 주님!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들의 공로로 바꾸려는 자들이 있음을 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형제들에게는 사랑과 나눔과 섬김으로 대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항상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며,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고, 서고 돕고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온 세상에 전하며 나누기를 원하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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